축제에도 뿌리가 필요하다 — 재원 다각화, 축제가 땅에 뿌리내리는 법
비 오는 날, 사무실로 나가는 길에 문득 축제의 재원을 생각했다. 오래전 한국을 찾았던 아비뇽 페스티벌 예술감독(베르나르 페브르 다르시에)의 이야기가 떠올랐다. 축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그는 첫째도 돈, 둘째도 예산, 셋째도 재원이라고 청중의 웃음이 무색할 만큼 진지하게 답했다. 유럽 최고의 예술축제를 이끌고 있는 감독의 머릿속 대부분이 축제 살림을 어떻게 꾸릴 것인가 하는 고민으로 가득 차 있다는 사실에 나는 놀랐었다. 게다가 프랑스가 예술축제 지원에 앞장서던 시절이었다. 그때는 그가 왜 저렇게 심각하게 돈 문제에 집중하는지 몰랐다. 이후 알게되었지만, 정부에서 상당 부분(70% 내외)을 지원받고도 나머지 30%이상의 예산은 티켓 수입과 축제 사무국이 감당해야 하는 몫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우리 축제는 대부분의 재원을 국가나 지자체에서 책임지고 있다. 민간이 재원을 주도하는 축제는 3%도 안 된다. 그 마저도 온전히 민간의 힘만은 아니다. 반면 선진국에서는 축제 재원의 절반 이상을 민간이 조달하고, 민간이 주도하는 축제가 전체의 80%를 넘는다.
왜 우리는 이렇게 되었을까? 축제가 오랜 단절기를 겪은 탓에 정부가 팔을 걷고 나설 수밖에 없었다는 견해도 있다. 하지만 그것 만으로는 부족하다. 중앙집권적 행정 시스템, 행정력에 대한 과도한 의존, 모든 것을 정부나 행정의 관리하에 두려는 관료적 관성이 반영된 것은 아닐까. 이렇게 관 주도의 축제가 대부분의 축제 생태계를 경직시켜 온 사이에, 스스로 축제를 만들려는 민간의 의지는 자꾸 약해졌고 씨앗마저 말라버린 것이다. 잘 자라고 있던 농촌지역의 축제들마저 공공의 개입으로 오히려 사라져 버린 사례도 많다.
여기에 더해 축제가 정치의 도구가 되어왔다는 지적은 오래된 사실이다. 단체장이 축제를 키우면 재선에 도움이 되고, 상대편은 그 축제를 흠집 내고 감시한다. 권력을 잡게 되면 제일 먼저 축제를 감사하고 예산을 삭감하고 없애버린다. 이 악순환이 반복되니, 축제에 민간 돈이 들어오는 일조차 색안경을 쓰고 보게 된다. 그러니 재원을 다양하게 만드는 시도조차 마치 불법을 자행하는 것처럼 오해받기 일쑤다. 결국 축제 담당자들은 그 일 자체를 아예 피하게 된다.
이 고리를 끊어야 한다. 축제는 정치의 도구가 아니라 지역을 살리는 가장 강력한 매체이자 인류가 지켜온 가장 오래된 문화적 제도다. 누군가 개인의 영달을 위한 수단으로 삼으려는 행사는 '축제'라 부르는 것 자체를 금지해야 한다. 주민과 예술가, 축제의 고관여자가 축제의 주인이 되어 축제를 함께 키워가는 '과정이 있는 축제'와 주민도 모르는 사이에 대행사와 공공의 관리만을 통해 만들어지는 인스턴트 축제를 분명히 구분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축제 문제 해결의 실마리가 보인다.
그럼 재원은 왜 다각화해야 하나. 돈을 더 벌기 위해서가 아니다. 축제 기획 단계 이전에 확보하는 조성 예산, 현장에서 축제를 통해 벌어들이는 운영 예산은 각각 열 가지가 넘는 다양한 출처로 나눌 수 있다. 물론 그 돈을 출처에 맞게 관리하고 정산하는 일은 여간 까다롭지 않다. 그런데도 애써야 할 이유는 분명하다. 여러 곳에서 재원을 모으는 그 과정 자체가 축제의 생존력을 높이고 건강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지금 우리 축제는 뿌리 없이 땅에 꽂아 놓은 꼬챙이 같은 마른 나무, 공공예산이라는 영양제 수액을 맞으며 버티고 있는 죽은 가로수 같다. 큰 바람 한 번에 쓰러진다. 재원이 다양해질수록 축제라는 나무는 숲속 생태계에서 땅속 깊이 뿌리를 내린다. 바람에 흔들려도 뽑히지는 않는다. 한 곳이 막혀도 다른 뿌리가 축제를 붙든다. 재원 다각화는 결국 축제가 스스로 서는 힘을 키우는 출발이다.
사실 우리 안에도 씨앗은 있다. 자라섬 재즈페스티벌, DMZ 피스트레인, 춘천마임축제, 목포마당페스티벌 등이 그렇다. 이들은 민간 재원을 모으며 제 힘으로 서려 애써왔다. 쉽지 않은 길이지만, 이런 시도가 하나둘 쌓여야 판이 바뀐다. 이미 뿌린 씨앗부터 잘 키우고 잘 커가는 민간축제를 모델로 하는 축제가 하나 둘 늘어나야 한다.
해외를 보면 길이 더 분명해진다. 에든버러국제페스티벌은 입장권 수입이 전체의 25%도 안 된다. 회원과 후원자, 기업, 해외 파트너, 공공 지원이 고르게 떠받친다. 유럽 5대 음악축제의 하나인 덴마크 로스킬레는 100% 비영리다. 2만 7천 명의 자원봉사자가 만들고, 수익은 전액 기부한다. 오스트리아 잘츠부르크에서는 '축제의 친구들'이라는 후원 회원과 기업 후원이 예술을 지탱한다. 돈의 출처가 여럿이라, 어느 한 손도 축제를 함부로 좌우하지 못한다. 이들에게 펀드레이징은 돈벌이가 아니라 예술의 독립을 지키는 방어벽이다. 그래서, 유럽에서는 이러한 공익적 민간 주도 축제들을 독립축제(Indie Festival)라 부른다.
물론 우리의 현실은 팍팍하다. 개별 축제 조직은 인력이 늘 모자란다. 발등의 불을 끄기도 바쁜데 펀드레이징 전문가를 키우는 건 어불성설이다. 그래서 여러 축제가 손잡고 공동으로 펀드레이징을 맡는 길을 찾거나, 전문가들이 도와야 한다. 기업의 ESG·CSR 예산을 축제와 잇는 일에 적극적으로 도전해야 한다. 꼭 현금이 아니어도 좋다. 민간 협력 프로젝트를 유치하여 현금 지출을 줄이는 것도 훌륭한 재원 조성이다. 무엇보다 이 일을 오래 붙들고 노하우를 쌓을 사람이나 조직이 만들어져야 하고, 이를 위한 공공의 지원 노력이 덧붙여져야 한다.
펀드레이징은 단순히 돈을 구하는 일이 아니다. 축제의 예술적 독립과 지속가능성을 지키는 뿌리다. 이제 축제 전문가들이 목소리를 내야 한다. 공익적 민간 축제에는 장소를 내주고, 간접 지원을 넓히자. 그리고 재원을 만드는 전문 인력을 함께 키우자.
뿌리 깊은 축제라야, 어떤 바람에도 흔들리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