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핵심 — THIS WEEK POINT
- 후원이 '이름을 거는 일'에서 '함께 운영하는 일'로 넘어갔다. 영국의 한 중형 축제는 앰프 브랜드에 무대 하나와 아티스트 라운지 전체를 내줬고, 덴마크에서는 1980년 첫 회부터 이어온 음료 회사와의 관계가 46년째 연장되면서 축제 앱 기능과 새 무대 구역까지 함께 만드는 형태로 바뀌었다. 스웨덴에서는 후원사 수가 줄어드는 국면에서 축제 총감독이 "지금 기업이 원하는 것은 노출이 아니라 참여"라고 정리했다.
- 축제의 회계가 두 방향으로 동시에 벌어지고 있다. 한쪽에서는 영국 콘월의 한 축제가 개최 한 달 만에 파산해 프리랜서 스태프와 공급사가 수만 파운드를 떼였고, 다른 한쪽에서는 런던의 영화제가 1만 파운드 규모의 자체 제작 펀드를 열고 각본 개발 도구까지 쥐었다. 같은 산업 안에서 바닥이 꺼지는 곳과 자본을 직접 만드는 곳이 갈리는 중이다.
- 축제가 완성품을 파는 자리에서 과정을 여는 자리로 옮겨가고 있다. 미국 허드슨밸리에서 처음 열리는 뮤지컬 축제는 아직 무대에 오르지 않은 신작 일곱 편을 관객 앞에 꺼내 놓고, 인도네시아 젬버의 26년 된 카니발은 몇 달에 걸쳐 주민이 직접 만든 의상으로 3.6킬로미터를 걷는다. 대전에서는 시민 연주자 130명이 축제의 마지막 무대를 채운다. 완성된 것을 사 오는 편성은 비용이 매년 오르고 어디서나 복제되지만, 과정을 여는 편성은 그 축제에만 남는다.
- 한국에서도 '누가 그 자리를 갖는가'가 표면으로 올라왔다. 서울은 2027년부터 시·자치구 축제장 푸드트럭의 주류 판매를 허용하기로 했고, 같은 시기 경기도의 한 대표 축제는 푸드트럭 40개 자리를 두고 134개 업체가 몰린 선발 기준이 지역 주민을 걸러내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았다. 이런 논의가 전국 축제 실무의 기본값이 되기까지는 대체로 12~18개월쯤 걸린다 — 지금 기준을 손보면 그 시차만큼 앞선다.
이번 호 핵심 트렌드
후원사가 간판을 떼고 살림에 들어왔다 — 46년짜리 계약과 이름을 바꾼 무대
글로스터셔의 중형 축제 2000trees와 앰프 브랜드 마셜의 관계는 2000년대 중반 이동식 가건물 하나에서 시작했다. 브랜드가 그 안에 악기를 들여놓고 출연진이 장비를 시험해 보게 한 것이 전부였고, 옆에서 인터뷰를 하던 기자들과 소음 문제로 다투기도 했다. 20년이 지난 올해 이 관계는 축제의 지형 자체를 바꿨다. 무대 뒤 아티스트 공간이 확장돼 축제의 중심이 됐고, 신인 무대의 이름이 브랜드 이름으로 바뀌었으며, 올해는 모든 무대의 백라인 장비를 이 브랜드가 댔다. 축제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는 지난 20년 동안 해온 모든 브랜드 활동을 다 합친 것보다 이번 한 번이 더 크고 복잡하다고 말한다. 라운지 안에는 영국의 기타 제작사와 인이어 제작사가 함께 들어와, 출연자가 공연 전후로 줄을 갈고 귀 본을 뜬다. 브랜드 쪽 마케팅 책임자는 자기 회사를 알리는 것보다 영국에서 제조하는 작은 회사들에게 사람들 앞에 설 자리를 주는 것이 목적이라고 설명했다.
같은 주 덴마크에서는 1980년 첫 회부터 이어져 온 축제와 음료 회사의 파트너십이 46년째 연장됐다. 양측은 이 관계가 고전적인 납품 계약에서 폭넓은 마케팅·운영 협업으로 바뀌었다고 정리했다. 올해는 축제 앱에 함께 공연을 볼 사람을 찾아주는 기능이 붙고, 회사의 한 브랜드가 새로 만든 일렉트로닉 무대 구역의 중심에 들어간다. 생맥주가 1리터 팔릴 때마다 2크로네가 축제 재단으로 넘어가고, 2024년부터는 양측이 함께 개발한 재사용 컵을 쓴다. 계약서에 적힌 것이 로고 노출이 아니라 기능과 구역과 단가라는 뜻이다. 이런 항목은 대개 개최 6~12개월 전에 확정된다.
이 축제는 영국의 축제 시상식에서 중형 축제 부문을 네 차례 받았다. 매년 라인업과 상관없이 오는 관객이 있고, 물건을 주고받는 관객들만의 관습과 오래된 농담이 축제 안에 쌓여 있다. 브랜드가 20년 전에는 할 수 없었던 규모의 협업을 지금 할 수 있게 된 배경에는 그렇게 쌓인 공동체가 있다. 브랜드 쪽도 축제 안에 정신건강을 다루는 비영리 단체의 공간을 따로 마련했고, 자사 제품 판매액의 일부를 풀뿌리 음악 현장에 돌리는 프로그램을 함께 알렸다.
스웨덴에서는 같은 문장이 반대편에서 들렸다. 스톡홀름 프라이드는 지난해 결산이 160만 크로나 적자였고 후원사 수가 해마다 줄었다. 새 축제 총감독은 기업들이 등을 돌린 것이 아니라 여름이라는 시기와 예산 사정 때문에 빠진 것이라고 설명하면서, 지금 기업에게 중요한 것은 노출이 아니라 참여라고 못 박았다. 실제로 한 화장품 유통사는 처음에는 행진 출발점에 천막 하나를 세우는 방식이었지만, 지금은 축제장 안에서 자기 프로그램을 직접 운영한다. 올해 이 축제는 공적 자금으로 처음 상근 사무국장을 뒀고, 그 자리가 하는 일의 절반이 파트너와의 대화다.
현장에 주는 함의 — 한국 축제의 협찬 제안서는 대부분 노출 단가표다. 무대 뒤 배너 몇 개, 리플릿 로고, 부스 몇 평이 얼마인지를 표로 만들고 그 합계를 협찬금이라고 부른다. 위 세 장면이 공통으로 말하는 것은 그 표가 점점 팔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기업이 사고 싶어 하는 것은 사람들이 그 앞에 서서 무언가를 하는 시간이지, 사진에 찍히는 면적이 아니다. 실행 순서는 이렇게 잡을 수 있다. 첫째, 우리 축제 안에서 기업이 '운영할 수 있는 것'의 목록을 만들 것. 대기 공간, 충전소, 물품 보관, 아이 동반 관객 쉼터처럼 축제가 어차피 해야 하는데 예산이 모자라는 자리가 후보다. 둘째, 계약서를 노출 단가가 아니라 운영 범위와 기간으로 쓸 것. 셋째, 판매량 연동 기부처럼 금액이 자동으로 커지는 조항을 하나 넣을 것. 이런 조항은 재계약 협상의 근거가 된다. 넷째, 후원사 수가 줄어드는 국면을 전제로 3년 이상 갈 파트너 두세 곳에 집중할 것. 이 계약 문법이 한국 지역 축제 실무에 닿기까지는 12~18개월쯤 걸린다고 본다.
한 축제가 문을 닫자 남은 것은 청구서였다 — 콘월에서 벌어진 일
영국 콘월에서 6월 말에 열린 모발라 페스티벌의 운영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축제가 끝난 지 한 달 만이다. 같은 회사가 9월 초에 열기로 했던 다른 축제도 취소됐고, 두 축제의 소셜 계정은 비공개로 돌아갔으며 홈페이지는 사라졌다. 남은 것은 정산되지 않은 청구서다. 개최 6개월 전부터 쌓인 비용이 한꺼번에 미수금이 된 것이다. 현장 운영을 총괄했던 한 프리랜서는 자기 몫만 1만 파운드, 함께 일한 현장 크루 전체로는 2만 파운드까지 떼일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는 프리랜서 크루가 축제가 약속을 지킬 것이라는 전제에 100퍼센트 의존하고 있으며, 그 전제가 무너지면 사실상 되찾을 방법이 없다고 덧붙였다. 티켓을 산 관객에게도 운영사는 직접 환불할 재정 여력이 없다고 통보했다. 운영사는 아티스트, 공급사, 하청, 프리랜서, 스태프, 자원봉사자 모두에게 사과문을 냈지만 사과문으로 갚을 수 있는 것은 없다.
사과문에는 많은 사람이 자신들을 믿었고 몇 달의 노동과 자기 시간과 자기 돈을 넣었다는 문장이 들어 있다. 축제 산업에서 이 문장은 수사가 아니라 사실 진술이다. 무대 설치, 전기, 화장실, 음향, 의료, 보안은 대부분 개별 사업자가 자기 장비와 인력을 먼저 투입한 뒤 행사가 끝난 다음에 대금을 받는다. 그 사이의 몇 주 동안 이들은 사실상 축제의 채권자가 되는데, 그 채권에는 담보도 순위도 없다.
이 사건이 개별 사고로 끝나지 않는 이유는 자금 흐름의 구조 때문이다. 티켓 수입은 개최 직전에 몰리고 비용은 몇 달에 걸쳐 먼저 나가므로, 후불 관행은 사실상 축제에 무이자로 돈을 빌려주는 일이 된다. 축제가 잘될 때는 아무도 이 구조를 문제 삼지 않지만, 한 번 무너지면 손실은 가장 힘이 약한 쪽에 그대로 쌓인다. 올해 유럽 곳곳에서 중소 규모 축제의 취소·연기 소식이 이어지는 국면이라, 이 구조를 그대로 두면 같은 장면이 반복될 수밖에 없다.
현장에 주는 함의 — 한국 축제의 대금 흐름은 이보다 나아 보이지만 위험의 위치가 다를 뿐이다. 공공 축제는 정산이 늦고, 민간 축제는 정산이 불확실하다. 지자체 축제에서 대행사가 받는 대금은 행사 종료 후 정산 서류가 통과돼야 나가고, 그 아래 협력업체와 프리랜서는 다시 그 뒤에 줄을 선다. 중간에 한 곳이 무너지면 아래쪽이 전부 물린다. 준비할 일은 세 가지다. 첫째, 위탁 계약서에 하도급 대금 직불 조항이나 지급 확인 조항을 넣을 것. 공공 발주에서는 이미 쓰이는 장치인데 축제 계약서에는 빠져 있는 경우가 많다. 둘째, 개최 전에 인건비와 소액 공급 대금만이라도 선지급 구간을 만들 것. 전체 예산의 10퍼센트만 앞당겨도 가장 취약한 쪽의 위험이 크게 줄어든다. 셋째, 프리랜서 스태프의 계약을 구두가 아니라 문서로 남기는 것을 주최 측 의무로 규정할 것. 유럽에서 논의되기 시작한 이 안전장치가 한국 실무 문서에 나타나기까지는 18~24개월쯤 걸릴 것으로 본다.
영화제가 개발 자금을 직접 쥐었다 — 런던에서 열린 1만 파운드짜리 실험
런던에서 34회째 열린 레인댄스 영화제가 창작 개발 플랫폼을 운영하는 이스라엘 회사와 손잡고 1만 파운드 규모의 제작 펀드를 만들었다. 금액만 보면 크지 않지만 구조가 새롭다. 이 펀드는 2027년 각본 공모와 한 몸으로 묶인다. 공모에 지원한 작가 가운데 선발된 이들은 그 플랫폼의 도구로 각본을 다듬고, 비주얼 자료와 인물 설정과 피치덱을 만들고, 그렇게 만든 자료를 공모 출품물의 일부로 낸다. 그리고 그 과정을 거친 프로젝트만 펀드의 심사 대상이 된다. 축제가 상영관이 아니라 개발 단계의 입구가 되는 셈이다. 공모부터 자금 집행까지 12~18개월이 하나의 흐름으로 묶인다.
논쟁적인 지점은 그 도구가 인공지능 기반이라는 것이다. 영화제 총괄은 이 프로그램이 각본 자체를 바꾸는 것이 아니라 제작 계획과 작업 흐름을 돕는 데 초점이 있다고 선을 그었다. 도구를 쓰고 싶지 않은 작가는 쓰지 않아도 공모 자격에는 아무 영향이 없고, 다만 펀드 심사 대상에서 빠질 뿐이다. 창립자는 축제가 원래 독립 영화인에게 집이 되어주려고 만들어졌다고 말하면서, 그 지원을 가장 이른 단계인 각본으로 끌어내린 것이라고 설명했다. 올해 이 축제에서는 편집 앱 회사와 함께 만든 인공지능 단편 열 편도 상영됐고 제작 마스터클래스도 함께 열렸다.
금액의 크기보다 눈여겨볼 것은 심사의 위치다. 이 구조에서 축제는 완성된 작품을 골라 상영하는 마지막 관문이 아니라, 작품이 아직 문서 상태일 때 개입하는 첫 관문이 된다. 창작자 입장에서 축제의 의미도 달라진다. 상영 기회를 얻으러 가는 곳이 아니라 개발 단계에서 도구와 돈과 조언을 얻으러 가는 곳이 되기 때문이다. 축제가 산업 안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뒤에서 앞으로 옮겨가는 것이다.
지난 호에서 우리는 맨체스터의 애니메이션 축제가 일곱 달짜리 장편 개발 과정을 열면서 참가자에게 교육 시간만큼 시급을 지급하기로 한 것을 다뤘다. 그 흐름은 꺾이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갔다. 그때는 축제가 사람의 시간에 돈을 붙였다면, 이번에는 돈과 도구와 심사를 하나의 통로로 묶었다. 축제가 산업의 입구를 직접 설계하는 움직임은 계속 굵어지는 중이다.
현장에 주는 함의 — 한국의 영화제·콘텐츠 축제도 이미 제작 지원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문제는 대개 그것이 축제와 분리된 별도 사업이라는 점이다. 공모는 공모대로, 상영은 상영대로, 펀드는 펀드대로 돌아가고 그 셋이 만나는 지점이 없다. 위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셋을 하나의 심사 흐름으로 묶으면 축제가 산업의 게이트가 된다는 것이다. 준비할 일은 이렇다. 첫째, 우리 축제의 공모에 '개발 단계 산출물'을 제출 항목으로 넣을 것. 완성작만 받으면 축제는 언제나 마지막 단계에만 개입하게 된다. 둘째, 지원금 규모보다 심사 이후의 동행 기간을 설계할 것. 금액이 작아도 반년 이상 붙어 있으면 창작자에게는 훨씬 큰 자산이 된다. 셋째, 도구를 쓰는 것과 쓰지 않는 것 사이에 불이익이 생기지 않도록 심사 규정을 미리 갈라 둘 것. 이 논쟁은 한국에서도 곧 시작될 텐데, 규정을 먼저 만든 축제가 논란을 통제한다. 이런 결합형 프로그램이 한국 축제에 나타나기까지는 6~12개월이면 충분하다고 본다.
일본에서는 축제가 '발주할 수 있는 상품'이 됐다 — 눈조각부터 본오도리까지
일본의 축제 지원 회사가 기업 담당자용 안내 자료를 냈는데, 읽어 보면 축제 산업의 한 단면이 그대로 드러난다. 삿포로 눈축제의 기업 눈조각은 8~9월에 발주해 12월 말에 디자인을 확정하고 1월 하순에 제작해 2월에 전시한다. 아오모리 네부타 축제에서는 소형 등롱을 3월 말에 발주해 5월 초에 디자인을 확정하고 석 달을 제작해 8월 초에 거리로 끌고 나간다. 아키타 간토 축제의 스폰서 등롱은 2월 중순 발주, 3월 초 로고 전달, 서너 달 제작을 거쳐 8월에 연무한다. 나가사키 랜턴 페스티벌의 협업 조형물은 5월에 발주해 이듬해 2월에 설치하고, 사가 열기구 대회의 형상 기구는 제작에 다섯 달에서 여섯 달이 걸리는 대신 4~5년을 다른 대회에서도 쓸 수 있다. 오리지널 본오도리를 만들어 전국의 여름 축제에서 함께 추게 하는 상품까지 있다.
여기서 읽어야 할 것은 개별 상품이 아니라 리드타임과 자산 개념이다. 축제를 브랜드 접점으로 쓰려면 6개월에서 1년 전에 발주해야 하고, 대신 만들어진 조형물은 축제가 끝난 뒤에도 기업 자산으로 남아 다른 축제에서 다시 쓰인다. 광고가 아니라 설비에 가까운 셈법이다. 안내 자료가 마지막에 지역 축제는 광고 지면이 아니라 지역 문화와 사람들의 생활 안에 있는 자리이므로 경의를 전제로 설계해야 한다고 적어 둔 것도 눈에 띈다. 상품화가 진행될수록 그 경계를 명시해야 한다는 뜻이다.
규격과 조건이 공개된 순간 그것은 협찬이 아니라 상품이 된다. 눈조각은 소형이 높이 3미터, 중형이 5미터대라는 식으로 크기가 정리돼 있고, 아키타의 등롱은 전체 280본 가운데 마을 단체가 보유한 하나를 쓴다는 조건까지 적혀 있다. 기업 담당자가 품의서에 붙일 수 있는 형태가 됐다는 뜻이다.
반대쪽에서는 브랜드가 아예 자기 축제를 만든다. 일본의 한 제과 회사는 7월 말 시부야의 한 공간에서 사탕과 젤리만 파는 여름 축제를 처음 열었다. 입장은 무료고, 키친카에서 자사 제품으로 만든 한정 메뉴 세 가지를 판다. 포장재를 업사이클한 배지를 건져 올리는 놀이와 신제품이 걸린 제비뽑기, 사진 찍기 좋은 조형물이 함께 놓였고, 사진을 올린 관객에게는 제품을 준다. 협찬을 하는 대신 축제 형식 자체를 사서 쓰는 방식이다.
현장에 주는 함의 — 한국 지역 축제의 협찬 영업은 대개 개최 두세 달 전에 시작된다. 위 리드타임 표가 알려주는 것은 그 시점에는 이미 늦었다는 것이다. 기업의 예산 편성과 제작 일정은 반년 앞에 있고, 그래서 늦게 접근한 축제는 남은 현금 협찬만 받게 된다. 준비할 일은 네 가지다. 첫째, 우리 축제의 협찬 상품에 '제작물'을 하나 만들 것. 배너가 아니라 축제가 끝난 뒤에도 남아 다음 해에 다시 쓸 수 있는 물건이어야 한다. 둘째, 그 제작물의 발주 시점을 역산해 협찬 제안 일정을 1년 주기로 앞당길 것. 셋째, 축제 고유의 형식을 기업이 사서 쓰는 상품을 정식으로 만들 것. 지역 전통 행렬이나 놀이를 기업 프로그램으로 편성하는 것은 이미 벌어지고 있는데 계약 문서가 없다. 넷째, 그 계약서에 문화적 사용 범위를 명시할 것. 상품화가 앞서고 규범이 뒤따르면 반드시 사고가 난다. 이 방식이 한국 축제의 표준 협찬 상품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12~18개월쯤 걸린다고 본다.
"2,000명이니 응급요원 4명"이 아니다 — 축제 안전 계산법의 교체
25년 넘게 행사 안전을 자문해 온 영국의 한 컨설턴트가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안전은 참가자가 2,000명이니 응급요원이 네 명 필요하다는 식으로 계산하는 일이 아니며, 그보다 훨씬 복잡하다는 것이다. 그가 가장 중요하다고 꼽은 것은 의료 제공자가 수행하는 의료 수요 위험 분석이다. 참가자 수만이 아니라 관객의 구성, 접근성, 체류 형태 같은 여러 요인을 함께 놓고 무엇이 얼마나 필요한지를 판단하는 작업이다. 그는 축제 주최자가 법적으로 지는 의무가 '합리적으로 예견 가능한' 위험을 다루는 것이라는 점도 짚었다. 관객이 술에 취할 수 있고, 처음 접하는 약물을 권유받을 수 있고, 인파에 압도될 수 있고, 폭염으로 쓰러질 수 있다는 것은 모두 예견 가능한 일이므로 계획에 들어가야 한다는 논리다.
올해 새로 드러난 위험은 날씨다. 기온이 25~30도로 이어지면 관객은 여덟 시간을 한자리에 앉아 있지 못한다. 그늘을 찾아 계속 움직이고, 그 움직임 자체가 예정에 없던 군중 이동을 만든다. 무대 편성표대로 사람이 흐르지 않는다는 뜻이다. 또 하나는 훈련의 문제다. 급성 행동 장애가 나타난 사람은 공격적이고 통증에 둔감해지는데, 훈련받지 않은 보안 인력에게는 그냥 난동으로 보인다. 탈수와 열탈진도 취기로 오인되기 쉽다. 그래서 의료가 필요한 사람이 치료 대신 퇴장 조치를 당하는 일이 벌어진다. 그는 의료 인력을 중앙 의무실에 몰아 두지 말고 사람이 모이는 지점에 분산 배치하라고 권한다. 코로나 이후 관객이 개인 공간을 더 요구하면서도 자기 안전에 대한 인식은 줄고 남이 지켜줄 것이라는 기대는 커졌다는 관찰도 덧붙였다.
역사적 배경도 함께 언급됐다. 2000년 덴마크의 한 대형 축제에서 아홉 명이 압사한 사고 이후 만들어진 공연 중단 절차는 지금 세계 여러 행사의 표준이 됐다. 2023년에는 영국의 한 대학이 음악 축제의 약물 관련 의료 사고를 국가 단위로 모으는 데이터베이스가 필요하다는 보고서를 냈다. 두 사례 모두 한 축제의 사고가 산업 전체의 규칙으로 바뀐 경로를 보여준다. 그 경로의 출발점은 언제나 같은 양식으로 남긴 기록이었다.
같은 흐름은 장비 쪽에서도 보인다. 덴마크의 13만 명 규모 축제는 방벽 공급사와 함께 세 가지 제품을 새로 만들어 올해 처음 썼다. 방벽 뒤에 서는 보안·응급 인력의 발판을 기존 1미터 깊이에서 일반 방벽과 같은 폭으로 줄여 관객 면적을 늘린 구조, 바닥판에 수평 경첩 두 개를 넣어 울퉁불퉁한 지면을 따라 휘어지는 방벽, 그리고 모서리에 틈이 생기지 않아 어디에서나 주문할 수 있게 만든 바 방벽이다. 지난 호에서 우리는 축제의 안전이 사고 대응에서 도시 운영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적었는데, 이번 호에서 그 흐름은 문서와 금속 구조물 양쪽에서 더 구체화됐다.
현장에 주는 함의 — 한국의 지역축제 안전관리계획서에는 인원 대비 요원 배치표가 들어간다. 그 표는 심의를 통과하기 위한 문서이지 현장의 위험을 계산한 결과가 아니다. 바꿔야 할 것은 표가 아니라 표를 만드는 절차다. 실행 순서는 이렇다. 첫째, 의료 배치를 인원수가 아니라 관객 구성과 체류 시간으로 산정하도록 계획서 양식을 고칠 것. 가족 단위 낮 행사와 20대 야간 공연은 같은 인원이라도 필요한 것이 전혀 다르다. 둘째, 폭염을 프로그램 변수로 다룰 것. 그늘과 급수 지점의 위치가 사실상 동선 설계이므로 무대 배치와 같은 회의에서 정해야 한다. 셋째, 보안 인력 교육에 의료 상황 식별 항목을 넣을 것. 취기로 보이는 것이 열탈진일 수 있다는 한 시간짜리 교육이 사고 하나를 막는다. 넷째, 방벽과 발판 같은 구조물을 임대 목록이 아니라 설계 대상으로 볼 것. 이 논의가 한국 축제 실무의 기본값이 되기까지는 12~18개월로 본다.
세계 현장에서 온 단서
완성되지 않은 것을 무대에 올린다 — 허드슨밸리의 첫 축제와 젬버의 빗속 행진
미국 허드슨밸리의 킹스턴에서 브로드웨이 뮤지컬을 주제로 한 야외 축제가 처음 열린다. 사흘 동안 무대 네 개가 돌아가고 유명 배우들이 이름을 올렸지만, 정작 눈에 띄는 것은 '신작 미리보기' 프로그램이다. 아직 브로드웨이에 오르지 않은 뮤지컬 일곱 편에서 곡을 뽑아 관객 앞에서 부른다. 1950년대 항공사 승무원의 실화, 호메로스의 서사시를 힙합으로 다시 짠 작품, 르네상스 축제장에서 일하는 자매 이야기, 폴란드 소녀의 일기에서 출발한 인디록 뮤지컬 같은 것들이다. 완성된 흥행작을 파는 자리가 아니라 아직 형태가 잡히지 않은 작품을 관객 앞에 꺼내 놓는 자리다. 관객은 상품이 아니라 제작 과정의 한 단계를 본다.
이 편성이 성립하는 이유는 희소성이 완성도가 아니라 시점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완성된 공연은 어디서든 볼 수 있지만 아직 무대에 오르지 않은 작품의 한 곡은 그 자리에서만 들을 수 있다. 축제는 30주년을 맞은 유명 뮤지컬의 초연 출연진이 거의 전원 모이는 자리도 함께 마련해, 새것과 오래된 것을 같은 주말에 붙여 놓았다.
인도네시아 동자바의 젬버에서는 26회째 패션 카니발이 열렸다. 3.6킬로미터 거리를 무대로 쓰는 이 행사는 2003년 지역의 작은 창작 운동으로 시작해 지금은 나라 밖에서 더 유명해졌다. 올해 주제는 인류·지구·생명이었고, 어린이 카니발과 반려동물 카니발로 문을 연 뒤 장애 예술 카니발과 창작 의상 카니발을 거쳐 마지막 대행진으로 이어졌다. 참가자들은 몇 달에 걸쳐 직접 의상을 만든다. 첫 행진을 앞둔 한 아이는 집 거실에서 부모가 장식 하나하나를 매만지는 동안 가만히 서 있었다. 올해 행진은 폭우 속에서 진행됐는데, 참가자들이 멈추지 않으면서 그 자체가 볼거리의 일부가 됐다.
현장에 주는 함의 — 두 사례의 공통점은 축제가 완성품 유통 창구가 아니라 '아직 안 된 것'을 감당하는 그릇이라는 점이다. 한국의 축제 프로그램은 대개 반대로 짜인다. 검증된 초청작을 데려오고, 지역 참여는 부대행사로 밀어 둔다. 그 편성은 실패 확률은 낮추지만 축제만의 것이 남지 않는다. 준비할 일은 세 가지다. 첫째, 우리 축제에 '미완성 무대'를 정식 프로그램으로 하나 만들 것. 개발 중인 작품을 30분씩 보여주고 관객 반응을 창작자에게 문서로 넘기는 형식이면 충분하다. 둘째, 주민 참여를 관람 뒤에 붙이지 말고 제작 단계로 끌어올릴 것. 젬버의 힘은 행진이 아니라 몇 달에 걸친 의상 제작에 있다. 셋째, 악천후를 취소 사유가 아니라 편성 변수로 계획서에 미리 넣을 것. 이런 편성이 한국 축제에서 눈에 띄게 늘어나기까지는 12~18개월쯤 걸릴 것으로 본다.
빌린 이름을 내려놓고, 버려진 발전소를 무대로 — 지역이 축제로 서사를 다시 쓴다
이탈리아 북부 트렌티노 자치주가 2027년 10월에 혁신을 주제로 한 축제를 새로 연다. 이 지역은 2023년부터 3년 동안 유명 기술 매체의 이름을 붙인 축제를 유치해 왔는데, 그 계약이 끝나자 빌린 이름을 계속 쓰는 대신 자체 축제를 만들기로 했다. 새 축제는 경제지 그룹이 기획·학술·편집 파트너로 참여하고, 지역의 대학과 연구재단, 과학관, 미술관, 학교와 기업이 함께 설계에 들어간다. 주제와 형식과 제목은 개최 8~10개월 전인 2027년 1월에 공개할 예정이다. 3년 동안 남의 브랜드로 관객과 미디어를 모으면서 축적한 것을 자기 이름으로 옮기는 과정인 셈이다.
3년이라는 기간도 우연이 아니다. 외부 브랜드를 들여오는 축제는 보통 첫해에 운영을 배우고, 둘째 해에 지역 파트너를 붙이고, 셋째 해에 관객이 생긴다. 그 시점에 계약이 끝나면 남는 것은 명단과 노하우뿐인데, 이 지역은 그것을 자기 축제의 밑천으로 썼다. 다음 축제까지 남은 시간이 1년이 넘는데도 지금 파트너 구성을 먼저 발표한 것 역시 준비 기간을 길게 쓰겠다는 뜻으로 읽힌다.
독일 동부 비터펠트볼펜에서는 격년으로 열리는 예술 축제가 폐쇄된 발전소를 무대로 삼았다. 1915년에 지어져 여러 정치 체제에 전기를 공급하다 1992년에 문을 닫은 시설이다. 관객은 옛 노선버스를 타고 갈탄 노천광이 물에 잠겨 만들어진 호수와 발전소 사택 마을을 지나 현장에 도착한다. 한 작가는 방문객에게 직접 만든 사원증을 발급해 출입증 없이는 들어갈 수 없던 공간의 규칙을 되살렸고, 다른 팀은 옛 운동기구를 악기로 개조해 관객이 몸을 움직여야 소리가 나는 공간을 만들었다. 현장에는 실제로 그 발전소에서 일했던 사람들이 나와 자기 이야기를 들려준다. 이런 구술 편성은 섭외에만 6~12개월이 걸린다. 산업이 사라진 뒤 사람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를 다루는 영상 작업도 함께 놓였다.
현장에 주는 함의 — 한국에서도 폐산업시설을 축제장으로 쓰는 사례는 이미 많다. 다만 대개 공간을 배경으로만 쓴다. 조명이 예쁘게 걸리는 벽, 사진이 잘 나오는 굴뚝으로 소비되고 그 시설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시간은 프로그램에 들어오지 않는다. 위 사례의 차이는 그 사람들을 해설자가 아니라 출연자로 세웠다는 데 있다. 준비할 일은 이렇다. 첫째, 폐시설을 쓸 때 그곳에서 일했던 사람들의 구술을 프로그램의 한 꼭지로 정식 편성할 것. 관람 동선 옆에 앉혀 놓는 것만으로도 축제의 격이 달라진다. 둘째, 외부 브랜드를 유치할 때 계약 종료 이후를 처음부터 설계할 것. 트렌티노처럼 3년을 명확한 학습 기간으로 잡으면 종료가 실패가 아니라 이관이 된다. 셋째, 지역 대학·연구기관을 후원사가 아니라 기획 참여자로 넣을 것. 이런 전환이 한국 지역 축제에 나타나기까지는 12~18개월쯤 걸린다.
축제가 '서명하는 자리'가 됐다 — 칸에서 열리는 장수 산업의 총회
9월 중순 칸의 영화제 전용 건물에서 고령화와 장수 산업을 주제로 한 국제 축제가 열린다. 50개국 넘는 곳에서 정책 담당자와 투자자, 창업가, 연구자, 돌봄·주거·기술 분야 종사자가 모이고, 이틀 동안 회의와 전시와 사전 예약제 상담과 시상식이 이어진다. 주최 측은 이 행사를 장수 분야의 다보스라고 부른다. 축제라는 이름을 달고 있지만 실제 구조는 산업 총회에 가깝다.
회의실에 앉아 발표를 듣는 시간보다 걸어 다니며 사람을 만나는 시간이 길게 설계돼 있고, 돌봄과 시민 참여를 각각 주제로 한 별도 회의도 같은 이틀 안에 함께 열린다. 참가 신청은 개최 3~6개월 전부터 받는다.
눈여겨볼 것은 이 축제에서 무엇이 벌어지는가다. 올해는 한 기업 모임과 대형 화장품 회사가 50세 이상 고용에 관한 헌장 서명식을 축제 안에서 연다. 2022년에 시작된 이 헌장에는 이미 430곳 넘는 기업과 기관이 참여했고, 채용 연령 제한 폐지부터 돌봄을 병행하는 직원 지원, 은퇴 준비와 퇴직 후 관계 유지까지 열 개 항목이 들어 있다. 함께 공개된 숫자가 이 서명식의 무게를 설명한다. 서명 기업 67곳, 64만 5천 명을 조사한 결과 50세 이상은 전체 인력의 34퍼센트였지만 채용에서는 13퍼센트, 교육 시간에서는 29퍼센트, 내부 이동에서는 19퍼센트에 그쳤다. 50세 이상 구직자의 74퍼센트는 나이 때문에 차별을 겪는다고 답했다. 축제가 그 격차를 공개적으로 확인하고 서명을 받는 자리로 쓰이는 것이다.
현장에 주는 함의 — 한국의 산업 축제와 박람회는 대개 부스와 상담 건수로 성과를 설명한다. 이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축제가 '무엇이 체결되는 자리인가'로 성과를 정의할 수 있다는 점이다. 서명식 하나가 붙으면 참가 기업의 급이 달라지고, 언론이 다룰 이유가 생기며, 다음 해에 그 이행 실적을 다시 발표할 명분이 만들어진다. 준비할 일은 세 가지다. 첫째, 우리 축제 안에 매년 갱신되는 공개 약속을 하나 만들 것. 지역 상권 상생, 접근성, 안전 기록 어느 쪽이든 좋고 서명 주체가 지자체 혼자가 아니어야 한다. 둘째, 그 약속에 매년 같은 양식으로 측정하는 지표를 붙일 것. 숫자가 없으면 서명은 사진으로 끝난다. 셋째, 고령 관객을 배려 대상이 아니라 참여 주체로 편성할 것. 고령화를 주제로 한 축제가 한국에서 산업 행사 형태로 자리 잡기까지는 12~18개월, 지역 축제의 편성 문법으로 내려오기까지는 18~24개월쯤 걸릴 것으로 본다.
반려동물 축제가 '관객끼리 친해지는 법'을 프로그램에 넣었다
일본에서 열리는 견종별 축제의 안내문에 흥미로운 항목이 있다. 처음 참가하는 사람을 위한 명함 교환회다. 같은 견종을 기르는 사람들끼리 만날 자리를 따로 만들어 주는 프로그램인데, 명함이 없어도 참여할 수 있고 사회관계망에서만 보던 개를 실제로 만나는 기회라고 설명한다. 반려견의 나이별 단체 사진 촬영도 있다. 같은 해에 태어난 개들끼리 모아 사진을 찍게 하고, 그 자리에서 생기는 대화를 친구를 만드는 계기로 삼는다는 것이다. 500엔짜리 고민 진단이라는 프로그램도 있는데, 훈련사가 짧게 상담해 어떤 강좌에 참여하면 좋을지 알려 준다. 주최사는 앞으로 4~6개월에 걸쳐 야마나시와 사이타마 등지에서 리트리버, 코기, 시추, 시바, 잭 러셀 테리어, 비글, 치와와, 포메라니안, 닥스훈트 등 견종별로 날짜를 나눠 열 개가 넘는 행사를 연다.
가족 단위 프로그램도 같은 원리로 짜였다. 반려견과 자기 차와 가족을 한 화면에 담는 사진 촬영, 가족이 함께 달리거나 장애물을 넘는 촬영, 팀을 나눠 겨루는 게임 대회가 편성돼 있다. 모두 사진 한 장이나 승부 하나를 핑계로 낯선 참가자들이 같은 자리에 서게 만드는 장치다. 주최 측이 밝힌 기획 배경도 분명하다. 반려동물 행사에 관심은 있지만 그 자리에 섞일 수 있을지 불안하다는 목소리가 많았다는 것이다.
같은 시기 도쿄에서는 고양이 사진과 굿즈를 모은 전시가 여름 본편을 연다. 누적 200만 명을 모았다고 밝힌 이 행사는 사회관계망에서 수십만 명의 팔로워를 가진 고양이 계정들의 신작을 모으고, 도예 작가와 일러스트 작가의 한정 판매 공간을 따로 둔다. 주최 측이 밝힌 설계 원칙은 보고, 고르고, 가져가고, 나누는 네 단계로 관객의 동선을 짰다는 것이다. 사진을 올린 관객에게는 한정 스티커를 주는데 어떤 도안일지는 현장에서 정해진다.
현장에 주는 함의 — 반려동물 축제는 한국에서도 빠르게 늘고 있지만 대부분 판매 부스와 사진 구역의 조합이다. 위 사례가 다른 지점은 축제의 프로그램이 '관객과 관객 사이'를 설계 대상으로 삼았다는 것이다. 축제에 처음 온 사람이 가장 크게 느끼는 장벽은 콘텐츠가 아니라 이미 서로 아는 사람들 사이에 끼어들기 어렵다는 감각이다. 이것은 반려동물 축제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동호 기반 축제의 문제다. 준비할 일은 세 가지다. 첫째, 첫 참가자 전용 프로그램을 편성표에 명시할 것. 이름표, 소개 시간, 같은 조건끼리 모으는 사진 촬영 같은 아주 단순한 장치로 충분하다. 둘째, 관객을 분류하는 축을 하나 정할 것. 나이, 견종, 경력 어느 쪽이든 같은 조건을 공유하는 사람끼리 모이면 대화가 저절로 생긴다. 셋째, 보고 끝나는 동선에 '고르고 가져가는' 단계를 넣을 것. 이런 관계 설계가 한국 축제의 표준 항목이 되기까지는 6~12개월이면 가능하다고 본다.
축제는 무엇으로 버는가 — 티켓 회사, 관광청, 그리고 입장료 없는 장터
같은 주에 나온 세 가지 소식이 축제의 수입 구조가 갈라지는 방향을 보여준다. 첫째는 티켓이다. 영국의 티켓 플랫폼이 호주 브리즈번과 퍼스에서 연말연시에 열리는 축제의 단독 티켓 파트너가 됐다. 이 회사의 첫 호주 대형 축제 계약이다. 축제 쪽 티켓 담당자는 자기 축제가 음악만이 아니라 사람들이 맺는 관계에 관한 것이며 티켓 역시 그 경험의 일부라고 말했다. 티켓을 파는 창구가 아니라 관객 경험의 한 구간으로 계약된 것이다.
둘째는 목적지 마케팅이다. 영국 밀턴킨스에서 열리는 레게 축제가 자메이카 관광청과 정식으로 손을 잡았다. 관광청이 이 규모의 영국 음악 축제와 파트너십을 맺은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사흘 동안 10만 명이 넘게 모이는 이 축제에서 관광청은 이미 그 문화를 사랑하는 관객을 만나 실제 여행 수요로 옮기려 한다. 양측은 이 계약을 장기 관계의 시작으로 보고 있으며 내년에는 규모를 키우는 방안을 논의 중이다.
관광청이 축제에 돈을 쓰는 이유는 협찬과 다르다. 이미 그 문화를 좋아하는 사람 10만 명이 사흘 동안 한곳에 모여 있는 상황은 목적지 마케팅 입장에서 가장 효율이 높은 접점이다. 축제 쪽 대표는 자기 축제가 지향해 온 음악과 문화와 공동체의 본고장이 파트너로 들어온 것을 하나의 도착점이라고 표현했다. 협찬금을 받은 것이 아니라 정통성을 확인받았다는 감각에 가깝다.
셋째는 반대 방향이다. 멕시코시티 남쪽의 한 미술관에서 열리는 카카오 축제는 16회째이고 12년째 카카오와 관련된 기술과 지식을 알려 왔는데, 판매 구역 입장은 무료다. 지역 초콜릿 장인들이 직접 만든 제품과 전통 음료를 팔고 워크숍과 강연이 함께 열린다. 관객은 입장료 없이 들어와 자기가 사고 싶은 만큼만 쓴다. 축제의 수입이 문 앞이 아니라 매대에서 발생하는 구조다.
현장에 주는 함의 — 한국 지역 축제의 수입 구조 논의는 대개 '유료화할 것인가'라는 이분법에 갇혀 있다. 위 세 사례는 그 사이에 최소 세 개의 선택지가 있음을 보여준다. 티켓을 관객 경험의 설계 대상으로 보고 플랫폼과 장기 계약을 맺는 길, 관객의 관심사와 겹치는 목적지·기관의 마케팅 예산을 끌어오는 길, 입장은 열어 두고 매대에서 회수하는 길이다. 준비할 일은 이렇다. 첫째, 우리 축제 관객이 이미 좋아하는 것 중에 '지역 밖 주체'가 팔고 싶어 하는 것이 무엇인지 목록화할 것. 특정 나라의 음식, 여행지, 스포츠 어느 쪽이든 그 주체의 홍보 예산이 협찬금보다 크다. 둘째, 무료 입장을 고수한다면 매대당 매출과 체류 시간을 반드시 측정할 것. 숫자가 없으면 무료는 성과가 아니라 관행이 된다. 셋째, 티켓 대행 계약을 단가가 아니라 데이터 접근 권한으로 협상할 것. 이 구조 분화가 한국 축제 실무에 자리 잡기까지는 12~18개월로 본다.
한국 축제 현장
축제장에서 맥주를 팔 수 있게 됐다 — 그리고 그 자리를 누가 갖는가
서울시가 규제 개선안을 내면서 축제 운영에 직접 영향을 주는 항목을 하나 포함시켰다. 2027년부터 주최 기관이 행사 성격과 장소를 고려해 요청하면 시와 자치구 행사에 참여하는 푸드트럭에서 주류를 판매할 수 있게 한다는 내용이다. 근거는 올해 1월 식품위생법 시행규칙이 개정되면서 일반음식점으로 신고한 푸드트럭 영업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동안 축제장 푸드트럭은 사실상 음료와 간식만 팔 수 있었고, 주류 매출은 별도 부스나 지역 상인회 몫이었다. 이 한 줄이 바뀌면 푸드트럭 한 대의 하루 매출 구조가 달라지고, 그만큼 그 자리의 가치도 올라간다. 시행까지 남은 12~18개월이 준비 기간인 셈이다.
이 변화는 축제 운영자에게 두 가지를 동시에 가져온다. 하나는 수익이다. 주류가 붙으면 한 팀당 객단가가 올라가고 체류 시간이 길어지며, 그만큼 부스 사용료를 높게 매길 근거가 생긴다. 다른 하나는 책임이다. 음주가 허용된 공간은 안전 계획과 인력 배치와 보험의 전제가 달라진다. 이 둘은 같은 결정에서 함께 나오는데, 실무에서는 대개 앞엣것만 계산하고 뒤엣것은 사고가 난 뒤에 계산한다.
바로 그 지점에서 다른 문제가 드러났다. 경기도의 한 대표 축제는 총 16억 원이 투입되는 행사인데, 푸드트럭 40개 자리를 두고 134개 업체가 몰렸다. 논란이 된 것은 1순위 자격 기준이었다. 모집 공고는 '해당 시 거주자'가 아니라 '해당 시 영업신고증 보유자'를 1순위로 뒀는데, 푸드트럭은 다른 지역 행사에 며칠만 참여해도 그곳에 임시 영업신고를 할 수 있다. 결과적으로 외지 업체가 과거 신고 이력만으로 1순위에 들어오고 실제 주민이 밀리는 구조가 됐다. 다른 지자체의 야간 축제는 대표자의 주민등록과 사업장 소재지가 모두 그 시로 되어 있어야 한다고 못 박아 두었다. 시 담당 부서는 매년 같은 기준을 써 왔고 그 기준이면 관내 업체가 다 들어올 것이라고 생각했다며 미비를 인정했고, 앞으로 열릴 다른 대표 축제부터 기준과 추첨 방식을 개선하겠다고 밝혔다. 공고와 선발을 대행한 업체는 행사가 끝난 뒤에 답하겠다는 입장이었다.
현장에 주는 함의 — 두 소식은 따로 온 것 같지만 하나의 사건이다. 축제장 안에서 팔 수 있는 것이 늘어나면 자리의 값이 오르고, 값이 오르면 배분 기준이 곧바로 이해관계가 된다. 지금까지 푸드트럭 모집 공고가 허술해도 넘어갈 수 있었던 것은 그 자리가 크게 돈이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류 판매가 열리면 그 관용은 사라진다. 준비할 일은 네 가지다. 첫째, 모집 공고의 1순위 요건을 주민등록과 사업장 소재지를 함께 요구하는 방식으로 지금 고칠 것. 조례에 이미 근거가 있는 경우가 많다. 둘째, 추첨을 구역별·품목별로 나눠 진행할 것. 일괄 추첨은 공정해 보이지만 같은 품목이 한 구역에 몰려 매출과 관객 동선을 함께 망친다. 셋째, 주류 판매 허용을 대비해 좌석·조명·안전 인력 계획을 미리 짤 것. 매출이 오르는 만큼 체류가 길어지고 위험도 함께 커진다. 넷째, 대행사에 맡긴 공모라도 기준 승인권은 주최가 쥐고 있을 것. 이 개선이 전국 축제 공고 양식으로 퍼지기까지는 6~12개월이면 가능하다.
한국이 첫 '마이스 레거시북'을 냈다 — 기록이 자산이 되는 첫 걸음
한국마이스협회가 국제행사 개최 성과와 현장 노하우를 정리한 기록집 첫 호를 냈다. 지난해 국내에서 열린 대형 국제회의의 준비와 운영에 참여한 기업과 기관이 주체로 참여했고, 분야별 역할과 혁신 사례, 대규모 국제회의 운영 노하우, 다음 행사 기획에 곧바로 쓸 수 있는 시사점을 함께 담았다. 협회는 민간 업계가 주도해 현장 경험을 기록물 형태로 자산화한 국내 첫 사례라는 점을 강조했다. 협회장은 행사가 만들어 내는 경제적·사회적·문화적 성과를 일회성으로 끝내지 않으려면 기획 초기 단계부터 유산 구축을 고려한 예산 편성과 제도적 지원이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전문은 협회가 운영하는 온라인 연수원 홈페이지에서 누구나 볼 수 있다.
기록집이라는 형식 자체도 눈여겨볼 만하다. 국제행사가 끝나면 보통 남는 것은 결과 보고서와 정산 서류다. 둘 다 예산을 집행한 쪽이 감사에 대비해 쓰는 문서라, 다음 행사를 준비하는 사람에게는 거의 쓸모가 없다. 이번 기록집은 참여 기업과 기관이 각자 자기가 맡았던 일과 그 과정에서 겪은 문제를 적었다는 점에서 성격이 다르다. 협회가 민간이 주도한 첫 사례라는 점을 강조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 호에서 우리는 서울이 국제회의의 파급효과를 계산하는 국제 표준 도구를 아시아에서 먼저 들여왔다는 소식을 다뤘다. 그때 남긴 문장은 기록이 없으면 아무것도 증명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이번 소식은 그 흐름이 계속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계산하는 도구가 먼저 왔고, 이번에는 계산할 재료를 남기는 양식이 따라왔다. 다만 아직 한 번의 발간이고 대상도 하나의 대형 행사에 국한돼 있다. 이 기록이 매년 같은 양식으로 쌓일 때에만 자산이 된다.
현장에 주는 함의 — 지역 축제 실무자에게 이 소식이 중요한 이유는 방법이 그대로 옮겨지기 때문이다. 대형 국제회의는 예산과 인력이 있어 기록을 남길 수 있고, 지역 축제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 통념이다. 그러나 기록의 어려움은 규모가 아니라 양식의 부재에서 온다. 매년 담당자가 바뀌고, 바뀐 담당자가 전임자의 파일을 못 찾고, 그래서 같은 실수를 반복한다. 준비할 일은 세 가지다. 첫째, 올해 우리 축제의 기록을 다섯 항목으로만 정해 남길 것. 무엇을 왜 바꿨는가, 예산이 실제로 어디에 얼마나 갔는가, 어떤 사고와 민원이 있었는가, 어떤 계약이 문제였는가, 다음 해에 반드시 해야 할 것은 무엇인가로 충분하다. 둘째, 그 기록을 사업 종료 보고서와 분리할 것. 정산 문서는 감사를 위한 것이고 기록은 후임자를 위한 것이라 목적이 다르다. 셋째, 광역 단위로 같은 다섯 항목을 쓰도록 합의할 것. 양식이 같아야 축제 간 비교가 생기고, 비교가 생겨야 예산 협상의 근거가 된다. 이 관행이 한국 지역 축제에 자리 잡기까지는 12~18개월쯤 걸린다고 본다.
관객이 무대에 오르고, 기억을 물건으로 가져간다 — 대전의 130명과 광화문의 굿즈 마켓
대전예술의전당이 올가을 열리는 음악 축제의 마지막 무대에 설 시민 연주자 약 130명을 모집한다. 시민이 직접 연주자로 무대에 올라 전문 연주자들과 함께 연주하는 프로그램인데, 지난해에는 모집 시작 40분 만에 정원 150명이 찼고 규모를 늘려 시민 180명과 오케스트라 단원 80명 등 약 260명이 함께 무대를 채웠다. 올해 연주할 곡은 그리그의 페르 귄트 모음곡 가운데 두 곡과 애국가이며, 모집부터 공연까지 약 2개월이 걸린다. 현악기와 관악기는 물론 기타와 우쿨렐레, 리코더까지 받고, 악보를 읽고 연주할 수 있으며 사전 연습과 리허설에 모두 참여할 수 있다면 성별과 나이와 사는 곳을 따지지 않는다. 축제의 피날레를 초청 연주자가 아니라 관객이 채우는 구조다.
모집 조건을 보면 이 프로그램이 무엇을 노리는지가 드러난다. 참가자는 신청 순서를 우선 고려하되 악기별 구성과 참여 의지, 예술감독의 검토 의견을 함께 보고 선발한다. 실력 순으로 뽑는 것이 아니라 합주가 성립하도록 악기 구성을 맞추는 방식이다. 사전 연습과 리허설을 모두 소화해야 한다는 조건도 붙어 있다. 관객을 무대에 올리는 일이 이벤트가 아니라 몇 주짜리 과정으로 설계돼 있다는 뜻이다.
같은 시기 광화문에서는 공연 굿즈를 주제로 한 축제가 두 번째로 열린다. 지난해 이틀 동안 2만 명이 다녀갔고, 올해는 공연예술을 중심으로 영화와 출판, 전시, 디자인, 음반, 식음료까지 참여 분야를 넓혔다. 50여 개 브랜드와 창작자가 부스를 열고, 공연이 끝난 뒤 구하기 어려웠던 굿즈도 다시 나온다. 새로 생긴 것은 팬 부스다. 공모로 뽑힌 참가자들이 자기가 모은 소장품과 희귀 굿즈를 전시하고 교환하거나 팔고, 팬이 직접 기획해 만든 굿즈 부스도 따로 마련된다. 무용단이 디지털 패션 기업과 협업해 자기 작품을 모티프로 한 상품을 내놓기도 한다. 창작자 대담과 공연은 모두 관람료를 받지 않는다.
현장에 주는 함의 — 두 축제는 장르도 규모도 다르지만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관객을 객석에 앉혀 두지 않는다는 것이다. 한쪽은 무대에 올리고, 다른 쪽은 축제가 끝난 뒤에도 손에 남는 물건으로 관계를 잇는다. 축제의 성과를 관객 수로만 세는 관행에서 벗어나려면 이 두 축이 실무 지표가 되어야 한다. 준비할 일은 세 가지다. 첫째, 우리 축제에 관객이 '출연'하는 프로그램을 하나 만들 것. 40분 만에 마감된 사례가 보여주듯 수요는 이미 있고 부족한 것은 자리다. 둘째, 굿즈를 기념품이 아니라 편성으로 다룰 것. 무엇을 만들지가 아니라 어떤 장면을 물건으로 남길지를 먼저 정해야 한다. 셋째, 팬이 직접 만든 것을 파는 자리를 공식 프로그램에 넣을 것. 저작권과 품질 기준을 미리 정하면 위험보다 얻는 것이 크다. 이런 편성이 한국 축제에서 흔해지기까지는 6~12개월이면 충분하다고 본다.
편집장의 글
① 축제의 돈이 '들어오는 방식'과 '나가는 방식'이 동시에 바뀌고 있다
이번 호에 실린 소식들을 돈의 흐름으로만 다시 읽어 보면 하나의 그림이 나온다. 들어오는 쪽에서는 후원이 노출 판매에서 운영 참여로 옮겨가고, 티켓과 목적지 마케팅과 매대 매출이 각각 독립된 통로가 되고 있다. 나가는 쪽에서는 축제가 개발 자금과 유급 과정과 상설 인력에 돈을 쓰기 시작했다. 칸에서 열리는 장수 산업 축제가 서명식을 품고, 런던의 영화제가 펀드를 열고, 스톡홀름의 축제가 공적 자금으로 상근 직원을 두는 것은 모두 같은 변화의 다른 얼굴이다. 축제가 한 해에 몇 번 열리는 행사가 아니라 연중 돌아가는 조직으로 자기를 다시 정의하는 중이다.
이 변화가 실무에서 처음 드러나는 자리는 대개 계약서의 기간 항목이다. 한 해짜리 협찬은 노출을 팔 수밖에 없고, 여러 해짜리 파트너십은 운영을 팔 수 있다. 46년을 이어 온 관계가 지금 앱 기능과 무대 구역을 함께 만드는 데까지 온 것은 그 기간이 쌓아 준 신뢰의 결과다. 반대로 매년 새로 협찬사를 구하는 축제는 매년 같은 설명을 처음부터 다시 해야 하고, 그 사이 축제의 기획은 협찬 일정에 끌려다닌다. 계약 기간을 늘리는 협상은 금액을 올리는 협상보다 어렵지만 6~12개월 안에 시도해 볼 수 있는 일이다.
그런데 이 변화에는 반대편이 있다. 콘월에서 벌어진 파산은 그 반대편이 어떤 모습인지를 보여준다. 조직이 커지고 계약이 길어질수록 무너졌을 때의 파급도 커진다. 그리고 그 파급은 언제나 가장 힘이 약한 쪽, 즉 후불로 일하는 프리랜서와 소규모 공급사에 먼저 도달한다. 축제가 산업의 언어를 쓰기 시작했다면 산업의 안전장치도 함께 들여와야 한다. 대금 지급 순서, 계약 문서화, 취소 시 책임 배분 같은 것들은 낭만적이지 않지만 이것이 없으면 좋은 축제일수록 무너질 때 더 많은 사람을 데리고 간다.
② 축제는 '완성된 것을 보여주는 자리'에서 '만들어지는 과정을 여는 자리'로
허드슨밸리의 신작 미리보기, 젬버의 몇 달에 걸친 의상 제작, 런던 영화제의 각본 개발 허브, 대전의 시민 연주자 130명은 서로 아무 관계가 없어 보인다. 그러나 넷 다 관객이 완성품이 아니라 과정 앞에 서 있다는 공통점을 가진다. 이 변화는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경제의 문제다. 완성품을 사 오는 편성은 비싸고, 그 비용은 매년 오르며, 어느 축제나 같은 것을 살 수 있으므로 차별화가 되지 않는다. 반면 과정을 여는 편성은 시간과 관계를 쓰는 대신 다른 곳이 복제할 수 없는 것을 만든다.
과정을 여는 편성에는 대가도 따른다. 완성되지 않은 것을 보여주면 반응이 갈리고, 그 반응을 감당할 준비가 없으면 창작자가 상처를 입는다. 이번 호의 사례들이 공통으로 갖춘 장치가 여기서 의미를 가진다. 미리보기에는 진행자가 있고, 개발 허브에는 심사 기준이 있으며, 시민 연주 프로그램에는 사전 연습과 리허설이 붙어 있다. 과정을 공개하는 편성은 즉흥이 아니라 오히려 더 촘촘한 설계를 요구한다.
한국 축제가 이 전환에서 가장 크게 걸리는 지점은 회계연도다. 예산이 한 해 단위로 확정되고 정산되니 반년 이상 걸리는 개발 과정은 사업 계획서에 넣기가 어렵다. 그러나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올해 예산으로 시작해 내년 축제에서 결과를 보여주는 구조로 설계하고, 올해의 성과는 결과물이 아니라 참여자 수와 기록으로 보고하면 된다. 이 방식이 한 번 통과되면 다음 해부터는 전례가 된다. 지금 준비하는 조직과 그렇지 않은 조직의 격차는 12~18개월 뒤에 프로그램의 질로 나타날 것이다.
③ 한국 축제를 향해 — 기준을 먼저 고치는 쪽이 다음 해를 가져간다
이번 호의 한국 소식 세 건은 각각 규제 완화, 기록의 시작, 관객의 무대 진입이라는 다른 주제를 다룬다. 그러나 셋을 겹쳐 놓으면 같은 질문이 남는다. 우리는 무엇을 기준으로 삼고 있는가. 축제장에서 주류를 팔 수 있게 되는 것은 기회이지만, 그 자리를 배분하는 기준이 낡아 있으면 기회는 곧바로 분쟁이 된다. 기록집을 내는 것은 좋은 일이지만, 같은 양식으로 매년 쌓지 않으면 한 번의 행사로 끝난다. 시민을 무대에 올리는 것은 아름답지만, 선발과 연습과 안전의 기준이 없으면 다음 해에 규모를 키울 수 없다.
기준을 고치는 일에는 한 가지 이점이 더 있다. 예산이 들지 않는다는 것이다. 프로그램을 바꾸려면 돈이 필요하고, 인력을 늘리려면 정원이 필요하지만, 공고문의 자격 요건과 계약서의 이행 조건은 담당자의 결정만으로 바뀐다. 그래서 예산이 적은 축제일수록 여기서 벌 수 있는 격차가 크다. 다만 이 일은 축제가 끝난 직후 두세 주 안에 해야 한다. 그 시기를 놓치면 무엇이 문제였는지에 대한 기억이 흐려지고, 다음 해 공고문은 다시 작년 파일을 복사해 만들어진다.
기준을 고치는 일은 눈에 띄지 않고 성과로 보고하기도 어렵다. 그러나 이번 호에 실린 해외 사례들이 공통으로 알려주는 것은, 지금 그들이 하고 있는 일의 대부분이 몇 해 전에 기준을 한 줄 고쳐 둔 결과라는 사실이다. 46년짜리 파트너십은 계약서의 형식을 바꿨기 때문에 가능했고, 축제 안전의 재정의는 위험 분석의 절차를 바꿨기 때문에 가능했으며, 지역이 자기 이름의 축제를 갖게 된 것은 3년 전에 이관을 전제로 계약했기 때문이다. 올가을 우리 축제가 끝나고 나면 결과 보고서보다 먼저 공고문과 계약서를 다시 펼쳐 보자. 그 안의 한 줄을 고치는 데 걸리는 시간은 며칠이지만, 그 효과는 6~12개월 뒤 다음 호 준비에서, 그리고 12~18개월 뒤 축제의 얼굴에서 나타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