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핵심 — THIS WEEK POINT

  • 축제가 '주말 동안 생겼다 사라지는 도시'로 다뤄지기 시작했다. 영국에서는 지난해 100개 축제에서 기록된 공공안전 사고 63건과 범죄 828건이 한자리에 모여 논의됐고, 1973년부터 축제 현장을 지켜온 자살예방 자원봉사 조직은 자신들의 활동을 "있으면 좋은 것이 아니라 복지 기반시설"이라고 규정했다. 관객의 마음과 안전을 프로그램의 부속품이 아니라 도시 기반시설처럼 설계하는 관점이 자리를 잡는 중이다.
  • 축제가 산업의 '입구'를 직접 만들고, 그 입구에 돈을 붙인다. 맨체스터의 애니메이션 축제는 7개월짜리 장편 개발 과정을 열면서 참가 제작자에게 교육 시간만큼 시급을 지급하기로 했고, 일본에서는 국제행사의 성적을 건수가 아니라 가치로 재는 평가 기준 전환이 정책 문서에까지 들어왔다. 지난 호에서 축제가 자본과 도구를 직접 쥐기 시작했다면, 이번 호에서 그 자본은 '사람의 시간을 사는 돈'으로 한 걸음 더 구체화됐다.
  • 한국은 성과를 설명하는 언어를 바꾸는 중이다. 서울은 국제회의의 경제 효과를 환산하는 국제 표준 도구를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들여와 올해 상반기 40건을 332억 원으로 계산해냈고, 경기도의 한 미술관은 7개월간 이어지는 축제로 전시의 시간 단위 자체를 늘렸다. 이런 편성 문법은 대개 해외 현장에서 먼저 자리 잡은 뒤 한국 실무에 6~12개월쯤 시차를 두고 닿는다 — 지금 설계에 반영하면 그 시차만큼 앞선다.

이번 호 핵심 트렌드

축제는 '주말 동안 생겼다 사라지는 도시'다 — 돌봄과 치안이 옵션에서 기반시설로

영국 축제 업계에서 같은 주에 나온 두 편의 인터뷰가 같은 문장을 서로 다른 각도에서 말했다. 하나는 1973년 글래스턴베리에서 시작된 자살예방 자원봉사 조직의 축제 지부 이야기다. 이 조직은 영국 전역에 200곳 넘는 상설 거점을 두고 있지만, 축제 지부만은 사무실도 전화선도 없이 텐트 하나로 운영된다. 지난해 13개 축제에서 8,000명과 이야기를 나눴고 올해는 24개 축제로 일정을 두 배 가까이 늘렸다. 활동가는 135명이며 전원이 자기 연차를 써서 현장에 온다. 부책임자는 이 일을 "있으면 좋은 것이 아니라 복지 기반시설"이라고 못 박았다. 왜 축제에 이런 조직이 따로 필요하냐는 물음에 대한 그의 답도 분명하다. 일상의 루틴을 걷어내고 낯선 사람들 옆 텐트에 사람을 눕혀 놓으면, 티켓을 예매하던 열 달 전에는 아무도 예상하지 못한 강도의 감정이 표면으로 올라온다는 것이다. 비를 맞으며 열여섯 시간 게이트를 지킨 스태프의 분노로 시작된 대화가 끝난 관계와 실패한 사업 이야기로 이어지고, 화장실 위치를 묻던 사람이 십 분 뒤에는 여름 내내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한 우울을 털어놓는다.

다른 하나는 영국 경찰의 행사 치안 총괄 책임자 인터뷰다. 그는 축제를 "1년에 한 번 며칠 동안만 존재하는 임시 도시"로 규정한다. 지난해 100개 축제에서 공공안전 사고 63건과 범죄 828건이 기록됐고, 가장 흔한 유형은 절도와 폭행이었다. 21만 명 규모의 축제가 포함된 통계치고는 낮은 수치이며, 그 낮음 자체가 여러 기관이 몇 달에 걸쳐 나눠 진 사전 계획의 결과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여름 시즌 개막 전 그는 업계 안전 담당자들과 만나 폭염, 비용 압박, 국제 정세라는 세 변수를 함께 검토했다. 내년 4월부터는 맨체스터 아레나 폭탄 사건 이후 만들어진 테러 대비 법률이 시행돼, 일정 규모 이상의 시설과 행사에 대응 계획 수립이 의무가 된다.

현장에 주는 함의 — 한국의 축제 안전 논의는 대개 사고가 난 뒤에 시작된다. 안전관리계획서는 제출되지만 그 문서가 실제로 다루는 것은 구조물과 동선이고, 관객의 정신적 위기나 현장 인력의 소진은 항목 자체가 없다. 영국 사례가 던지는 질문은 두 가지다. 첫째, 우리 축제의 안전 예산에 '마음 돌봄'이 한 줄이라도 잡혀 있는가. 상담 자격을 갖춘 지역 기관과 협약해 조용한 천막 하나를 축제 기간 내내 여는 비용은 무대 하나 값에 한참 못 미친다. 둘째, 우리는 축제에서 실제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숫자로 남기고 있는가. 영국이 100개 축제의 사고·범죄 건수를 한자리에 모아 공개할 수 있었던 것은 매년 같은 양식으로 기록해왔기 때문이다. 한국에는 축제 단위 안전 기록이 주최별로 흩어져 있어 "우리 축제는 안전하다"는 말을 증명할 방법이 없다. 지금 준비할 일은 세 가지다. 첫째, 광역 단위로 축제 안전·의료·상담 기록 양식을 통일할 것. 둘째, 자원봉사가 아니라 예산 항목으로 돌봄 인력을 배치할 것. 셋째, 군중 밀집과 테러 대비 계획을 권고가 아니라 위탁 계약서의 이행 조건으로 넣을 것. 이 논의가 한국 축제 실무의 표준으로 자리 잡기까지는 12~18개월쯤 걸린다고 보는 편이 현실적이다.

축제가 '유급 개발 과정'을 연다 — 맨체스터 애니메이션 축제의 7개월

맨체스터에서 열리는 애니메이션 축제가 영국 최초의 장편 애니메이션 개발 가속 과정을 열었다. 9월 말부터 이듬해 3월까지 7개월 동안 여섯 편의 장편 기획을 국제 투자 시장에 내놓을 수 있는 상태까지 끌어올리는 과정이다. 두 차례의 합숙, 온라인 워크숍과 멘토링, 축제 참가, 해외 산업 행사 출장, 마지막 쇼케이스로 구성된다. 여기까지는 흔한 육성 프로그램처럼 들리지만 결정적인 차이가 하나 있다. 참가 제작자에게 교육 시간 약 115시간에 대해 시간당 13.45파운드를 지급한다. 합숙과 출장의 교통·숙박도 주최가 부담하고, 제작자가 데려오는 핵심 팀원 한 명에게도 같은 조건이 적용된다. 다루는 주제는 공동제작, 예산, 법률, 제작 관리, 마케팅, 축제 전략, 배급, 협상까지 여덟 가지다.

축제 측이 밝힌 문제의식은 명확하다. 영국에는 단편과 방송, 광고 영역에서 일하는 뛰어난 작가가 두텁게 쌓여 있지만 독립 제작자가 장편으로 건너갈 다리가 거의 없다. 기획을 투자자와 배급사가 검토할 수 있는 상태까지 끌어올리는 데는 몇 년의 무보수 노동이 들고, 바로 그 무보수 구간이 자본이 없는 제작자를 조용히 걸러낸다는 것이다. 그래서 이 축제는 '기회를 준다'는 말 대신 '시간을 산다'는 방식을 택했다. 재원은 국립 복권 기금의 창작 도전 사업과 스코틀랜드·북아일랜드의 영상 진흥 기관이 함께 댔고, 멘토로는 장편 애니메이션을 실제로 완성해본 프로듀서들이 이름을 올렸다.

현장에 주는 함의 — 한국의 축제 부대 프로그램은 대체로 '기회를 준다'는 말로 설명된다. 피칭 무대에 세워주고, 심사위원을 붙여주고, 네트워킹 자리를 만들어준다. 그러나 그 자리에 오기까지 창작자가 쓴 시간에는 아무도 값을 매기지 않는다. 결과적으로 남는 시간과 여유 자금이 있는 사람만 반복 참가하게 되고, 축제는 매년 비슷한 얼굴을 다시 만난다. 맨체스터가 손댄 지점은 정확히 여기다. 한국에서 당장 옮길 수 있는 순서는 이렇다. 첫째, 부대 프로그램 예산에서 행사비를 조금 덜어 '참가자 인건비' 항목을 신설하고 교육 시간을 실제로 계산해 지급할 것. 액수보다 그 항목이 생겼다는 사실 자체가 지원의 성격을 바꾼다. 둘째, 선정 기준을 완성도가 아니라 '이 기간에 얼마나 나아갈 수 있는가'로 바꿔 초기 기획을 받아들일 것. 셋째, 축제 며칠이 아니라 6~7개월 단위로 과정을 설계해 축제를 결과 발표장이 아니라 작업 기간의 중간 점검점으로 배치할 것. 넷째, 팀원 한 명까지 함께 지원해 개인이 아니라 팀이 자라게 할 것. 국내 영상·공연 축제에 이 방식이 닿기까지는 6~12개월이면 충분하다고 본다. 이미 지원 사업의 구조와 예산 항목은 갖춰져 있고, 바꿔야 할 것은 항목의 이름과 대상 단계뿐이기 때문이다.

성적표가 '건수'에서 '가치'로 바뀐다 — 일본이 읽어낸 국제행사 평가 기준의 전환

일본의 한 관광 산업 연구기관이 국제행사·전시 산업의 평가 기준이 세계적으로 다시 쓰이고 있다는 분석을 내놨다. 지금까지 도시와 국가의 실력은 개최 건수와 참가자 수로 이야기됐다. 알기 쉽고 비교하기 좋은 숫자였고, 그래서 각국은 순위를 올리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그런데 최근 몇 년 사이 개최지가 가진 산업 집적도, 연구 환경, 비즈니스 네트워크, 참가자가 얻는 경험의 가치까지 함께 보려는 움직임이 넓어지고 있다. 국제회의 통계를 내는 기관은 올해 분야별 순위를 새로 도입했는데, 일본은 국가별 개최 건수로는 상위 5위 밖이면서 기술 분야에서는 2위, 과학 분야에서는 3위에 올랐다. 도쿄·오사카·요코하마 세 도시가 기술 계열 국제회의를 나눠 소화한 결과다. 보고서에 붙은 논평의 제목은 "모든 분야에는 저마다의 챔피언이 있다"였다.

전시 산업에서는 전환이 더 뚜렷하다. 올해 처음 발표된 세계 전시산업 국가 순위는 시장 매력도, 비즈니스 생태계의 질, 경쟁 기회라는 세 축의 다차원 틀로 평가됐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생태계의 질'이라는 지표다. 전시회를 간접적으로 떠받치는 관련 산업, 제도, 물류, 인력까지가 평가 대상이 된다는 뜻이고, 이 항목에서 일본은 10위에 올랐다. 국내 시장 중심으로 자라 독특하다는 평을 들어온 일본 전시 산업이 제도와 기반, 사람의 축에서는 국제적으로 인정받고 있다는 해석이다. 일본 관광 당국이 발표한 새 전략에도 개최 건수와 함께 소비액, 지방 유치, 부가가치 높은 체험, 인재 양성이 나란히 들어갔다.

현장에 주는 함의 — 한국의 국제행사 성과 보고서는 여전히 건수와 참가자 수, 그리고 추정 경제효과 총액으로 채워진다. 이 세 숫자는 예산을 지켜주기는 하지만 도시의 강점을 설명하지는 못한다. 건수 경쟁에서 한국이 상위권에 오르기는 갈수록 어렵고, 그 경쟁만 계속하면 유치 보조금만 올라간다. 일본이 택한 길은 경쟁의 축을 바꾸는 것이다. 우리 도시가 어느 분야에서 강한지를 먼저 규정하고, 그 분야의 학회와 기업 네트워크를 붙잡는 방식이다. 실무로 옮기면 세 단계다. 첫째, 최근 5년간 우리 도시가 유치한 국제행사를 분야별로 분해해 어디에서 반복 개최가 일어났는지 찾을 것 — 대개 지역 대학과 기업의 강점과 겹친다. 둘째, 그 분야에 한해 지역 연구자·기업과 유치 기관을 묶은 상설 협의체를 만들어 '누가 우리 도시를 추천할 것인가'를 미리 확보할 것. 셋째, 성과 지표에 건수 대신 '해당 분야 반복 개최율'과 '지역 기관 공동 참여 건수'를 넣어 예산 심의의 언어를 바꿀 것. 평가 기준의 전환은 국제기구 통계에서 먼저 시작돼 각국 정책으로 번지는 순서를 밟는 만큼, 한국 정책 문서에 닿기까지는 12~18개월쯤 여유가 있다.

웰니스가 축제 편성의 문법이 됐다 — 열흘에 10만 명이 모인 싱가포르의 실험

싱가포르 센토사에서 열린 웰니스 축제가 다섯 번째 판에서 열흘 동안 10만 명을 모았다. 여덟 개의 체험 구역과 70개가 넘는 웰니스 세션, 그리고 대형 공연이 한자리에 놓였다. 흥미로운 것은 이 축제가 '운동 행사'에서 출발해 지금의 모습으로 넓어진 경로다. 주최자는 웰빙의 정의 자체가 넓어졌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체력 단련이 전부였다면 지금은 움직임과 마음챙김, 영양, 회복, 창작, 음악, 공동체가 한 목적지에서 이어지기를 사람들이 기대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역을 생활 방식과 연령대에 따라 여덟 개로 쪼갰다. 새벽 요가와 근력 운동, 회복 프로그램, 창작 워크숍, 그리고 아무것도 하지 않고 앉아 있을 수 있는 사교 공간까지 나란히 배치했다. 유명 트레이너의 해안 달리기 프로그램은 매진됐고, 정작 가장 붐빈 곳은 특정 프로그램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 앉는 공용 광장이었다.

운영 측면에서 더 눈여겨볼 것은 계약 구조다. 이 축제는 이번 판을 계기로 보험사, 섬 개발 공사, 국가 관광청과 3년짜리 파트너십을 공식화했다. 한 해짜리 후원 계약을 매년 새로 따내는 방식이 아니라, 도시가 이 축제를 관광 자산으로 규정하고 3년의 시간을 함께 사기로 한 것이다. 관객 입장에서는 이 시간이 다르게 체감된다. 올해 갔던 프로그램이 내년에도 있을 것이라는 예측 가능성이 생기고, 그 예측이 재방문을 만든다.

현장에 주는 함의 — 한국에서 웰니스는 대개 관광 상품의 이름이거나 리조트의 부대 시설로 쓰인다. 축제의 편성 원리로 다뤄지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싱가포르 사례에서 실제로 작동한 것은 프로그램의 종류가 아니라 배치의 문법이었다. 강도 높은 활동과 아무것도 하지 않는 시간을 같은 지도 위에 나란히 두고, 관객이 자기 몸 상태에 따라 동선을 고르게 한 것이다. 한국 축제의 동선은 대개 한 방향이다. 입장해서 부스를 지나 무대 앞에 서고 다시 나온다. 쉴 곳은 있어도 프로그램이 아니라 여백으로 취급된다. 당장 바꿔볼 수 있는 것은 세 가지다. 첫째, 축제 지도에 '회복 구역'을 정식 프로그램으로 표기하고 시간표를 붙일 것 — 낮잠, 스트레칭, 아무 말 없이 앉아 있기까지 이름을 붙이면 그것도 콘텐츠가 된다. 둘째, 지역 요가·명상·의료 시설을 협력 기관으로 끌어들여 축제 기간 밖에서도 이어지는 관계를 만들 것. 셋째, 후원 계약을 1년이 아니라 3년 단위로 제안해 후원사에게도 축적을 팔 것이다. 웰니스를 편성 문법으로 다루는 흐름이 한국 지역 축제에 닿기까지는 6~12개월 정도로 본다. 관광 분야에서 이미 어휘는 익숙하고, 남은 것은 축제 기획서 안으로 그 어휘를 옮기는 일뿐이다.

끊긴 축제는 어떻게 되살아나는가 — 일본의 계승 현장 두 장면

일본에서 전국의 마을 축제를 취재해온 한 기록자가 계승 문제를 다룬 연재의 두 번째 글을 냈다. 저출생·고령화로 인한 인력 부족이 만성이 된 상황에서 감염병 시기의 2~3년 중단이 결정타가 됐고, 그대로 폐지를 결정한 지역이 적지 않다. 되살린 지역도 자재비 상승과 재정난에 눌려 있다. 축제의 가치는 재평가되는데 그것을 유지할 자원이 따라가지 못하는 상태다. 그런데 이 글이 주목한 것은 폐지가 아니라 부활의 경로다.

후쿠시마의 한 마을에서 대대로 이어온 해충 쫓기 행사는 아이들이 벌레를 가둔 가마를 메고 마을을 도는 형식이다. 한때는 노점이 설 만큼 붐볐지만 보존회는 결국 해산을 결정했다. 그때 보존회원 한 사람이 지역 주민들의 동의를 얻어 '이어가는 모임'이라는 새 조직을 만들어 행사를 넘겨받았다. 그가 첫해에 한 일은 행사를 여는 것이 아니었다. 조사와 기록, 가마 만드는 기술의 보존, 협력자 확대에 1년을 썼다. 그러자 예상하지 못한 곳에서 문이 열렸다. 지역 초등학교가 "체험 학습의 장으로 참여하게 해달라"고 먼저 연락해온 것이다. 아이들은 20년 가까이 혼자 가마를 만들어온 주민을 인터뷰하고 짚 꼬는 법을 배웠다. 이듬해 여름, 행사는 여러 세대가 모인 자리로 되살아났다. 같은 연재는 36년 만에 되살아난 사자춤 사례도 함께 소개한다.

현장에 주는 함의 — 한국의 지역 축제와 민속 행사도 같은 지점에 서 있다. 보존회의 평균 연령이 오르고, 한 번 쉬면 다시 열기 어렵다는 사실을 모두가 알면서도 대책은 대개 '지원금 증액'에 머문다. 일본 사례가 알려주는 것은 돈보다 먼저 조직의 형태를 바꾸는 선택지가 있다는 점이다. 오래된 보존회를 유지하는 대신 의지 있는 새 주체에게 통째로 넘기는 방식이다. 실무로 옮기면 네 가지다. 첫째, 휴지기에 들어간 행사를 폐지가 아니라 '보류'로 분류하고 기록과 기술 조사를 먼저 지원하는 예산 항목을 만들 것 — 되살릴 때 필요한 것은 사람의 기억이지 무대가 아니다. 둘째, 승계 조직을 만들 때 기존 보존회의 동의 절차를 조례로 명시해 갈등을 줄일 것. 셋째, 학교 체험 학습과 연결해 아이들이 제작 과정에 참여하게 할 것. 참여한 아이가 성인이 되어 돌아오는 것이 가장 확실한 계승 방식이다. 넷째, 첫해에 행사를 열지 않아도 되는 '준비 연도'를 인정할 것. 한국의 지원 구조는 그해에 반드시 행사를 열어야 정산이 되기 때문에, 준비만 하는 해를 인정하는 것만으로도 되살아나는 행사가 늘어난다. 이 방식이 한국 제도 안에 자리 잡기까지는 12~18개월쯤 걸릴 것으로 본다.


세계 현장에서 온 단서

한 축제가 20년치 땅을 계약했다 — 서퍽 헤넘 파크의 장기 임대

영국 서퍽에서 열리는 13만 5천 명 규모의 종합 축제가 지금 쓰고 있는 부지를 앞으로 20년 동안 쓰기로 하는 새 임대 계약에 서명했다. 발표는 올해 축제 마지막 날 현장에서 창립자가 직접 했다. 흥미로운 것은 이 계약을 반긴 쪽이 축제만이 아니라는 점이다. 부지를 소유한 집안의 대표는 이 축제 덕분에 사유지의 복원과 관리를 이어올 수 있었다고 말했다. 붕괴 위험이 있던 여러 건물의 복원이 축제 수입으로 가능했고, 오랫동안 밀려 있던 삼림과 조경 정비도 따라잡을 수 있었다는 것이다. 그는 이 땅을 돌보는 일이 자기 인생의 과업이자 앞뒤 세대가 함께 이어온 일이라고 표현했는데, 축제가 그 세대의 연쇄를 끊지 않고 이어붙이는 재원이 됐다는 뜻이다.

축제가 땅을 빌려 쓰는 임차인이 아니라 그 땅의 유지 비용을 대는 동업자가 된 셈이다. 20년이라는 기간도 그냥 정해진 숫자가 아니다. 나무를 심고 숲을 되살리는 작업의 회수 기간이 대체로 그 정도이고, 축제 쪽에서도 무대와 전기·배수 같은 기반 설비를 감가상각할 수 있는 최소 단위가 그쯤이다. 두 시간표가 맞물리는 지점에서 계약 기간이 결정된 것이다. 지난 호에서 살펴본 벨기에 사례가 축제 조직이 부지의 연중 운영자가 되는 길을 보여줬다면, 이번 계약은 그 흐름이 소유와 계약 기간의 문제로 더 깊이 내려가고 있음을 알려준다. 장소를 둘러싼 논의가 한 호로 끝나지 않고 계속 굵어지는 중이다.

현장에 주는 함의 — 한국 지역 축제의 부지 계약은 대부분 1년 단위다. 그해 예산이 확정돼야 장소가 확정되고, 그래서 무대와 시설은 매년 세웠다 허물기를 반복한다. 이 구조에서는 아무리 잘된 축제도 땅에 아무것도 남기지 못한다. 20년 계약이 곧바로 가능하지는 않겠지만, 그 방향으로 가는 중간 단계는 충분히 설계할 수 있다. 첫째, 지자체 소유 유휴 부지를 대상으로 3~5년 단위의 다년 사용 협약을 먼저 시도할 것. 다년 계약은 축제에 예측 가능성을 주고 지자체에는 관리 주체를 준다. 둘째, 그 계약에 '부지 개선 투자와 회수' 조항을 넣어 축제가 배수·전기·수목을 개선한 만큼 사용 기간을 연장받게 할 것. 셋째, 사유지를 쓰는 축제라면 지주에게 임대료가 아니라 '토지 관리 비용의 분담자'라는 역할을 제안할 것. 땅을 가진 쪽에게 축제는 부담이 아니라 관리 예산이 될 수 있다. 이런 계약 실험이 한국 지역 축제에 나타나기까지는 12~18개월쯤 걸린다고 본다.

어린이가 주인공인 국제 축제가 오페라하우스 앞마당에 선다 — 시드니의 새 편성

시드니 오페라하우스가 9월 말부터 10월 중순까지 16일 동안 첫 국제 어린이 축제를 연다. 봄 방학에 맞춘 일정이고, 야외 광장에서는 무료 프로그램이 이어진다. 라인업의 구성이 흥미롭다. 한국의 아크로바틱 공연, 원주민 서커스, 캐나다에서 온 양 흉내 퍼포먼스, 9미터 높이의 노란 그네가 한 광장에 놓인다. 실내 유료 공연은 아기를 위한 몰입형 연극부터 그림자 인형극과 음악·춤으로 옮긴 그림책 각색, 아이가 직접 극에 끼어드는 참여형 공연까지 연령대별로 나뉜다. 개막작은 아이에게 집에서 '어둠 한 조각'을 가져오라고 요청한다. 공연장에 도착하면 그 어둠을 손전등과 바꿔 들고 이야기 속으로 들어간다. 정답이 없는 요청을 통해 빛과 어둠에 대한 대화를 미리 열어두는 설계다. 광장에 놓이는 거대한 공기주입식 바위 설치물은 수천 톤의 암석을 무게 없는 형태로 옮겨 도시 한복판에 야생의 감각을 들여놓고, 관객이 지나가면 새와 개구리, 시냇물 소리가 반응한다. 해가 지면 이 조형물에 조명이 들어와 밤 열 시까지 켜져 있다. 낮에는 아이의 놀이터였다가 밤에는 도시의 야경이 되는 이중 용도다.

주목할 것은 이 축제가 세계에서 온 공연을 '수입'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개막작은 호주 애들레이드의 극단이 미국 그림책을 원작으로 만든 작품이고, 설치물은 멜버른의 예술·기술 스튜디오가 일본의 돌 배치 미학에서 착안해 제작했다. 해외 초청과 자국 창작이 같은 무게로 놓여 있고, 그래서 이 축제는 다른 나라 작품을 소개하는 창구가 아니라 자국 어린이 공연의 제작 기반을 함께 키우는 자리가 된다.

현장에 주는 함의 — 한국의 어린이 축제는 대체로 '어린이날 주간에 여는 체험 부스의 집합'에 가깝다. 안전하고 참여율도 높지만, 아이가 무엇을 경험했는지 설명하기는 어렵다. 시드니 편성의 차이는 세 가지다. 첫째, 연령을 0세부터 나눠 프로그램을 배치했다. '아기를 위한 몰입형 연극'이라는 항목이 존재한다는 것 자체가 기획의 정밀도를 보여준다. 둘째, 무료 야외와 유료 실내를 한 축제 안에 나란히 두어 지불 능력이 관람 여부를 결정하지 않게 했다. 셋째, 관객에게 사전 과제를 줬다. 집에서 무언가를 가져오게 하는 순간 축제는 현장에 도착하기 전부터 시작된다. 한국에서 당장 적용할 것은 이렇다. 연령 구간을 세 단계 이상으로 쪼개 프로그램 표에 명시할 것, 부모가 아니라 아이가 결정하는 선택지를 하나 이상 넣을 것, 그리고 지역 예술가에게 '체험 부스'가 아니라 '작품'을 의뢰할 것. 이런 편성 감각이 한국 어린이 축제에 닿기까지는 6~12개월이면 충분하다.

소도시 연극제가 국가 중점 목록에 오르다 — 콜롬비아 31년의 결과

콜롬비아 안티오키아주의 소도시 엘카르멘데비보랄이 31회째 국제 연극제를 마쳤다. 아흐레 동안 5개국과 콜롬비아 22개 도시에서 온 1,500명 넘는 예술가가 모였고, 90편 넘는 공연이 실내 극장과 거리, 농촌 지역에서 열렸다. 관객은 2만 2천 명에 이르렀다. 인형극과 구술 이야기, 광대극, 콘서트가 함께 편성됐고, 21개의 학술 프로그램이 지역 연극, 연기, 오브제 조작, 비평을 다뤘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은 '관객 학교'라는 프로그램이다. 아르헨티나 비평가를 초빙해 관객이 공연을 읽는 법을 배우고 예술가와 토론하게 했다. 보는 사람을 훈련시키는 프로그램을 축제 안에 정식으로 넣은 것이다. 올해 이 축제는 처음으로 콜롬비아 문화부의 국가 중점 프로젝트 목록에 이름을 올렸다. 인구 규모로는 한국의 군 단위에 해당하는 도시가 31년의 반복으로 국가적 위상을 얻은 셈이다.

또 하나 눈여겨볼 것은 개막의 형식이다. 이 축제는 40개가 넘는 지역 예술·문화 단체가 함께 걷는 가장행렬로 문을 연다. 이웃 지역의 대표적인 카니발에서 온 대표단까지 합류해 소도시의 좁은 길을 채운다. 무대에 올리는 대신 길을 걷게 하는 개막은 참여 단위를 개인이 아니라 단체로 만들고, 그래서 매년 돌아올 이유가 조직 차원에서 생긴다. 축제가 끝난 뒤 남는 것도 관람객 숫자가 아니라 40개 단체의 명단과 그들이 1년 동안 준비한 시간이다. 축제를 '사회를 바꾸는 도구이자 문화유산을 지키는 방법'으로 규정한 주최 측의 표현은 수사가 아니라 이 구조에서 나온 결론에 가깝다.

현장에 주는 함의 — 한국의 소도시 축제가 부딪히는 벽은 대개 '규모로는 이길 수 없다'는 체념이다. 콜롬비아 사례는 그 벽을 다른 방향으로 넘었다. 관객 수가 아니라 관객의 질을 키우는 데 예산을 썼고, 그것이 축제의 정체성이 됐다. 옮겨볼 지점은 세 가지다. 첫째, 축제 안에 '보는 법을 배우는 프로그램'을 정식 편성할 것. 공연 전 30분짜리 해설, 공연 후 관객과 창작자의 대화, 시즌 단위의 비평 강좌면 충분하다. 관객이 언어를 갖게 되면 그 지역의 공연 수요가 축제 기간 밖으로도 이어진다. 둘째, 실내 극장과 거리, 농촌을 한 편성 안에 두어 접근성 자체를 프로그램으로 다룰 것. 셋째, 학술 프로그램을 부속이 아니라 지표로 삼을 것 — 몇 명이 왔는가보다 몇 명이 배웠는가를 기록하면 예산 심의의 언어가 달라진다. 국가 지정 목록에 오르는 데 31년이 걸렸다는 사실도 함께 읽어야 한다. 반복 자체가 자산이 되기까지는 최소 10년이 필요하고, 그 사이의 성과는 5~10년 단위로 재야 한다.

네 개 언어로 짜인 코미디 축제 — 두바이가 다언어 관객을 편성하는 법

두바이의 코미디 축제가 일곱 번째 판을 준비하며 초기 라인업을 공개했다. 10월 열흘 동안 오페라하우스와 대형 아레나, 쇼핑몰 안 극장 세 곳에서 열린다. 눈길을 끄는 것은 프로그램의 언어 구성이다. 거의 200개 국적이 사는 도시라는 조건에 맞춰 영어, 힌디어, 아랍어, 러시아어 공연이 나란히 편성됐다. 쿠웨이트 제작진이 만든 아랍어 연극이 오페라하우스에 오르고, 인도 코미디언의 힌디어 공연이 다른 극장에서 같은 주에 열린다. 언어별로 회차를 나누되 축제라는 하나의 이름 아래 묶는 방식이다. 2015년 첫 회에 미국 코미디언이 중동에서 처음 공연한 이래 이 축제가 커진 방식이 여기에 담겨 있다. 관객을 '영어를 알아듣는 사람'으로 좁히지 않고, 각 언어권이 각자의 밤을 갖게 한 것이다. 티켓 가격도 공연에 따라 두 배 넘게 차이가 나 지불 능력에 따른 선택지를 남겼다.

장소 배치도 이 원리를 따른다. 오페라하우스처럼 격식 있는 공간, 만 명 단위를 수용하는 아레나, 쇼핑몰 안의 작은 극장이 한 축제 안에 함께 있다. 어떤 언어권의 관객은 나들이 삼아 쇼핑몰에 오고, 어떤 관객은 공연 하나를 보러 도시 반대편에서 온다. 한 도시 안에 사는 서로 다른 생활 반경을 인정하고 그 반경마다 문을 하나씩 낸 편성이다. 라인업을 한 번에 다 공개하지 않고 몇 달에 걸쳐 나눠 발표하는 방식도 눈에 띈다. 언어권마다 예매 시점이 다르다는 것을 알고 만든 일정으로 보인다.

현장에 주는 함의 — 한국의 축제에서 다국어는 대개 '안내 표지의 번역'을 뜻한다. 프로그램 자체가 다른 언어로 만들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그러나 국내 체류 외국인이 250만 명을 넘어선 지금, 지역 축제의 관객 구성은 이미 바뀌었다. 두바이 방식의 핵심은 번역이 아니라 편성이다. 옮겨볼 순서는 이렇다. 첫째, 우리 지역에 실제로 사는 언어권을 인구 통계로 확인하고 상위 두세 개 언어를 정할 것. 둘째, 그 언어권 공동체에 통역이 아니라 '한 회차의 기획'을 맡길 것 — 그 언어로 진행되는 공연이나 이야기 마당 하나를 통째로 넘기는 방식이다. 셋째, 홍보를 그 공동체의 채널로 따로 집행할 것. 한국어 포스터를 번역해 붙이는 것으로는 오지 않는다. 넷째, 티켓 가격대를 넓혀 무료와 유료를 한 축제 안에 함께 둘 것. 다언어 편성이 한국 지역 축제의 기본값이 되기까지는 12~18개월쯤 걸리겠지만, 이주민이 밀집한 도시에서는 지금 시작해도 이르지 않다.

발효를 주제로 삼은 일주일짜리 온라인 축제 — 인도의 두 번째 판

인도에서 발효를 주제로 한 온라인 축제가 두 번째 판을 마쳤다. 일주일 동안 발효 실천가와 셰프, 제작자, 연구자, 역사가, 음식 사상가가 인도 안팎에서 모였다. 이 축제는 감염병 시기에 음식 연구자이자 영화감독인 한 사람이 만들었다. 집에 갇힌 사람들이 사워도우와 과일주를 만들며 각자의 지역 발효를 다시 발견하던 시기였고, 온라인 모임은 지식과 위로를 동시에 줬다. 몇 해가 지난 지금 발효를 둘러싼 풍경은 완전히 달라졌다. 소비자는 콤부차와 사워도우를 넘어 지역 고유의 균과 항아리로 관심을 옮겼고, 젊은 기업들은 연구를 붙여 맛의 조합을 실험하고 있다. 축제는 그 변화를 따라 편성을 바꿨다. 시장 규모나 건강 효능만 다루지 않고 실험과 보존, 맛의 역사, 정치, 정체성, 생업까지 층위를 나눠 파고들었다. 한국의 김치, 일본의 된장, 동유럽의 케피어, 인도 나갈랜드의 발효 콩이 같은 화면 위에서 비교된다.

편성의 무게중심이 어디에 있는지도 분명하다. 발효 식품 시장이 2025년 3천억 달러 규모에서 2031년 4천3백억 달러대로 커진다는 전망이 있고, 장 건강에 대한 관심이 그 성장을 밀고 있다. 그런데 이 축제는 시장 규모를 출발점으로만 쓰고 곧바로 다른 층위로 넘어간다. 한 지역의 음식 정체성을 알고 싶으면 그곳의 발효부터 보라는 것이 기획자의 전제이고, 그래서 프로그램에는 셰프만이 아니라 역사가와 연구자가 나란히 앉는다. 축제를 산업 박람회가 아니라 지식의 장으로 규정한 결과다.

현장에 주는 함의 — 한국에서 온라인 축제는 대체로 감염병 시기의 임시방편으로 기억된다. 대면이 가능해지자 대부분 사라졌고, 남은 것은 중계 영상뿐이다. 인도 사례가 다른 점은 온라인을 '대체재'가 아니라 '지식이 모이는 형식'으로 썼다는 데 있다. 흩어져 사는 실천가를 한 주 동안 한자리에 모으는 일은 오히려 온라인이 더 잘한다. 한국이 이 구조에서 얻을 것은 분명하다. 장 담그기, 젓갈, 식초, 지역 술은 모두 마을 단위로 흩어진 지식이고 계승자는 고령이다. 실무로 옮기면 셋이다. 첫째, 지역 발효 축제에 온라인 회기를 붙여 현장에 올 수 없는 계승자와 연구자를 화면으로 초대할 것. 둘째, 그 회기를 녹화가 아니라 아카이브로 설계해 발효법과 구술을 같은 양식으로 남길 것. 셋째, 축제의 주제를 '먹기'가 아니라 '만드는 법의 계보'로 옮길 것. 발효를 산업으로만 보면 상품이 남지만, 계보로 보면 지역이 남는다. 지식 중심 온라인 회기가 한국 음식 축제에 자리 잡기까지는 6~12개월이면 충분하다.

축제 주간을 하루씩 다른 얼굴로 — 멕시코 소도시의 편성표

멕시코 푸에블라주의 한 소도시가 수호성인 축일 주간을 아흐레짜리 편성표로 짰다. 첫날 아침은 옥수수 반죽 요리를 다루는 음식 축제로 연다. 지역의 전통 조리사들이 손으로 빚는 과정을 관객이 지켜보고, 콩과 잠두, 리코타 치즈를 채운 세 가지 속을 비교하며 먹는다. 같은 날 오전에는 지역 기관이 준비한 문화 프로그램과 전통 놀이가 이어지고, 밤이 되면 광장은 야외 무도회로 성격을 완전히 바꾼다. 이후 아흐레 동안 북부 음악의 밤, 마리아치의 밤, 대형 밴드 공연이 하루씩 배치되고, 마지막 날은 다시 음식으로 닫는다. 바비큐와 발효 음료를 다루는 축제다. 온천으로 알려진 이 도시는 축제 주간을 통째로 하나의 여정으로 설계해, 하루만 오는 사람과 일주일을 머무는 사람이 서로 다른 축제를 경험하게 만들었다.

이 편성에서 눈여겨볼 것은 음식이 놓인 위치다. 음식 축제가 주간의 첫날과 마지막 날을 맡는다. 방문객은 옥수수 반죽 요리로 시작해 바비큐와 발효 음료로 끝나는 여정을 갖게 되고, 그 사이의 엿새는 음악과 놀이로 채워진다. 음식이 부대 행사가 아니라 여정의 문과 마침표 역할을 하는 것이다. 또 하나, 조리를 맡는 사람들이 외부 업체가 아니라 대대로 요리법을 물려받은 지역 조리사들이다. 관객이 사는 것은 음식이 아니라 그 요리법이 이어져 온 시간이고, 그래서 같은 음식을 다른 곳에서 먹는 것과 값이 달라진다. 온천과 축제를 함께 묶어 하루 이상 머물게 하는 구조도 자연스럽게 따라 나온다.

현장에 주는 함의 — 한국 지역 축제의 편성표는 대개 사흘 동안 비슷한 밀도를 유지한다. 첫날 개막식, 둘째 날 주요 공연, 셋째 날 폐막식이라는 형식이 반복되고, 그 결과 관객은 하루만 와도 축제의 전부를 본 것이 된다. 머무는 시간을 늘리려면 날마다 성격이 달라야 한다. 멕시코 소도시의 편성은 이 원리를 단순하게 구현했다. 아침은 음식, 낮은 놀이, 밤은 춤이라는 하루의 리듬을 만들고, 날짜별로는 장르를 완전히 바꿨다. 옮겨볼 것은 세 가지다. 첫째, 축제 기간을 하루 단위가 아니라 '오전·오후·밤' 세 개의 시간대로 쪼개 각기 다른 관객을 겨냥할 것. 둘째, 음식 프로그램을 부스가 아니라 조리 과정의 공개로 설계해 지역 조리사를 무대에 세울 것. 셋째, 첫날과 마지막 날을 같은 주제로 감싸 관객이 '돌아올 이유'를 갖게 할 것. 지역 축제의 숙박 체류를 늘리는 편성 실험은 한국에서도 6~12개월 안에 시도해볼 만하다. 예산을 늘리지 않고 순서만 바꾸는 일이기 때문이다.


한국 축제 현장

축제의 시간 단위를 7개월로 늘리다 — 백남준 20주기 미디어아트 축제

경기문화재단 백남준아트센터가 백남준 20주기를 맞아 제1회 백남준미디어아트페스티벌 '백남준의 행성'을 열었다. 눈여겨볼 것은 기간이다. 7월 16일에 시작해 이듬해 2월 14일까지 이어진다. 며칠짜리 행사가 아니라 7개월짜리 회기로 축제를 설계한 것이다. 중심에는 동시에 개막한 두 개의 전시가 있다. 하나는 백남준의 1990년대 행성 연작을 통해 그의 우주적 상상력과 동양적 사유를 조명하고, 다른 하나는 〈달은 가장 오래된 TV〉에서 출발해 동시대 작가들의 작업으로 그 사유를 확장한다. 개막 주간에는 퍼포먼스와 학술 대담, 관객 참여 프로그램이 집중 배치됐다. 전통음악과 움직임, 라이브 코딩, 레이저, 연극, 굿이 한 공간에서 교차했다.

특히 흥미로운 것은 기술랩이라는 프로그램이다. 아트센터의 테크니션이 단종된 브라운관 모니터의 물리적 한계를 넘어 백남준 초기 실험 텔레비전의 영상 파형을 다시 구동하는 과정을 관객 앞에서 시연했다. 미디어아트를 물질로 보존하는 데서 나아가 작동 원리 자체를 다음 세대에 넘기는 문제를 공개적으로 다룬 것이다. 축제는 센터 밖으로도 뻗어 나간다. 한 기업의 판교 캠퍼스에 신진 작가와 백남준의 작업을 함께 소개하는 라운지가 운영되고, 대학 연계 전시와 영상자료원 특별 상영회가 함께 진행된다. 관람료는 받지 않는다.

현장에 주는 함의 — 이 설계에서 배울 것은 작품이 아니라 시간과 장소의 단위다. 한국의 예술 축제는 대개 열흘 안팎에 모든 것을 몰아넣고, 그래서 관객은 '못 가면 끝'이라는 압박을 받는다. 7개월 회기는 그 압박을 없앤다. 여름에 개막 주간의 밀도를 즐기는 관객과 겨울에 조용히 전시만 보는 관객이 같은 축제의 관객이 된다. 예산 운용에서도 유리하다. 인력과 시설을 한 번에 몰아 쓰지 않으므로 상시 인력의 고용이 가능해지고, 그 인력에게 노하우가 쌓인다. 실무로 옮기려면 세 가지가 필요하다. 첫째, 집중 기간과 상시 기간을 나눠 예산과 인력을 다르게 배치할 것. 둘째, 기관 밖 협력 공간을 미리 확보해 축제의 지도를 도시 단위로 넓힐 것 — 기업 사옥, 대학, 아카이브 기관은 자기 공간을 문화로 채우고 싶어 한다. 셋째, 기술 보존이나 제작 과정 같은 '뒷면'을 공개 프로그램으로 만들 것. 완성된 작품만 보여주는 축제보다 만드는 법을 나누는 축제가 지역에 더 오래 남는다. 이 방식은 국내 미술관·문화재단이 6~12개월 안에 충분히 시도할 수 있는 범위에 있다.

성과를 설명하는 언어를 바꾸다 — 서울이 들여온 파급효과 계산기

서울관광재단이 7월 하순 미국 포틀랜드에서 열린 세계도시마케팅협회 연례총회에 참가했다. 전 세계 도시의 국제회의 유치 기관과 지역관광 조직 관계자 1,900여 명이 모인 자리였고, 논의의 중심은 데이터 기반 성과관리와 지역사회 협력이었다. 최근 세계의 주요 도시들은 행사 건수와 참가자 수를 늘리는 것을 넘어, 관광과 국제행사 산업이 지역 경제와 시민사회, 도시 브랜드에 미치는 영향을 객관적으로 설명하는 방향으로 성과관리 체계를 넓히고 있다. 재단이 현장에서 특히 살펴본 것은 도시 간 경쟁이 아니라 협력의 사례였다. 포틀랜드는 피츠버그, 밀워키와 함께 2004년부터 회의 주최자에게 공동 인센티브와 통합된 유치 지원 서비스를 제공해왔다. 세 도시가 서로 뺏는 대신 함께 파는 방식이다.

주목할 것은 재단이 이미 지난해 7월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도입한 파급효과 계산기다. 국제행사 개최로 발생하는 경제적 가치를 정량 측정하는 국제 표준 도구인데, 재단은 이를 서울의 소비 데이터에 맞춰 현지화했다. 이 도구로 올해 상반기 지원 국제회의 40건을 분석한 결과 약 332억 원의 경제적 파급효과가 산출됐다. 참가자가 서울에서 쓴 숙박비와 식음료비, 교통비, 쇼핑비를 나눠 계산한 숫자다. 앞서 살펴본 일본의 평가 기준 전환과 같은 방향의 움직임이 한국에서도 이미 진행되고 있는 셈이다.

현장에 주는 함의 — 축제와 국제행사를 운영하는 쪽에서 가장 자주 겪는 좌절은 "그래서 얼마나 남았느냐"는 질문에 답할 언어가 없다는 것이다. 방문객 수는 부풀리기 쉽고, 추정 경제효과 총액은 아무도 믿지 않는다. 서울이 택한 길은 국제적으로 합의된 계산 방식을 가져와 그 결과를 매년 같은 방식으로 갱신하는 것이다. 지역 축제에도 그대로 옮길 수 있다. 첫째, 우리 축제의 성과 지표를 방문객 수 하나에서 숙박·식음·교통·구매 네 갈래로 쪼갤 것 — 항목이 나뉘는 순간 개선할 지점이 보인다. 둘째, 표본 설문이라도 좋으니 같은 문항을 3년 이상 반복해 비교 가능한 시계열을 만들 것. 셋째, 인접 도시와 공동 유치·공동 마케팅을 시도해 경쟁 비용을 줄일 것. 포틀랜드의 세 도시 협력은 20년 넘게 이어졌고, 그동안 세 도시 모두 잃은 것이 없다. 넷째, 계산 결과를 예산 요구가 아니라 설계 개선에 먼저 쓸 것. 어느 항목의 지출이 낮은지가 곧 다음 해에 손볼 프로그램이다. 성과 언어의 전환은 이미 시작됐고, 지역 축제까지 내려오는 데는 6~12개월 정도가 걸릴 것으로 본다.


편집장의 글

① 축제가 '이벤트'가 아니라 '기반시설'의 언어를 쓰기 시작했다

이번 호에서 가장 자주 등장한 단어는 프로그램도 라인업도 아니었다. 기반시설이었다. 영국의 자원봉사 조직은 축제의 마음 돌봄을 "있으면 좋은 것이 아니라 복지 기반시설"이라고 불렀고, 경찰의 행사 치안 책임자는 축제를 "1년에 한 번 며칠 동안만 존재하는 임시 도시"로 규정했다. 서퍽의 축제는 20년짜리 토지 임대에 서명했고, 싱가포르의 웰니스 축제는 3년짜리 파트너십을 맺었다. 맨체스터의 축제는 창작자의 시간에 시급을 매겼다. 표현은 제각각이지만 방향은 하나다. 축제를 '한 번 열고 끝나는 사업'이 아니라 '유지 비용과 내구 연한이 있는 시설'처럼 다루기 시작한 것이다.

이 전환이 중요한 이유는 회계의 언어가 함께 바뀌기 때문이다. 이벤트는 비용이지만 기반시설은 투자다. 이벤트는 매년 새로 정당화해야 하지만 기반시설은 유지·보수의 근거를 스스로 갖는다. 축제 조직이 "올해도 지원해달라"고 말하는 대신 "이 시설의 관리 주체가 우리"라고 말할 수 있게 되는 순간, 협상 상대와 계약 기간과 예산의 성격이 함께 달라진다. 반대로 이 언어를 익히지 못한 조직은 계속 매년 심사대에 선다. 지난 호에서 우리는 축제의 계산 단위가 '기간'에서 '자산'으로 옮겨가고 있다고 적었다. 이번 호는 그 흐름이 한 걸음 더 나아가, 자산을 '관리해야 할 시설'로 구체화하는 단계에 들어섰음을 보여준다. 흐름이 꺾이지 않고 오히려 굵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한국에도 이 어법이 도착하기까지는 12~18개월쯤 걸리겠지만, 도착한 뒤에 배우기 시작하면 이미 늦다.

한 가지 덧붙일 것이 있다. 기반시설의 언어를 쓰려면 기반시설의 책임도 함께 져야 한다. 시설에는 안전 기준이 있고 정기 점검이 있고 사고가 났을 때의 책임 소재가 있다. 영국에서 축제 치안과 마음 돌봄이 같은 주에 화제가 된 것은 우연이 아니다. 축제를 도시처럼 다루기로 한 순간 도시가 감당하는 종류의 의무가 따라 붙는다. 한국의 축제 조직이 '장소 운영자'를 자처하려면 라인업의 감각만이 아니라 안전·회계·계약의 실무 역량을 함께 갖춰야 한다는 뜻이다. 이 준비가 되어 있는 조직에게 다년 계약과 위탁 운영은 기회지만, 준비되지 않은 조직에게는 감당하기 어려운 부담이 된다.

② 돈이 '결과'가 아니라 '과정'으로 내려가고 있다

두 번째로 눈에 띈 것은 돈이 붙는 위치의 변화다. 맨체스터의 축제는 완성된 작품이 아니라 기획을 다듬는 7개월에 돈을 붙였고, 그것도 상금이 아니라 시급이었다. 콜롬비아의 연극제는 공연이 아니라 관객이 공연을 읽는 법을 배우는 학교에 예산을 썼다. 일본의 계승 사례에서 첫해에 이뤄진 일은 행사 개최가 아니라 조사와 기술 기록이었다. 인도의 온라인 축제는 상품이 아니라 만드는 법의 계보를 다뤘다. 결과물에만 돈을 붙이면 이미 자원이 있는 사람만 남고, 과정에 돈을 붙이면 새로운 사람이 들어온다.

한국의 지원 구조는 아직 결과 쪽에 크게 기울어 있다. 그해에 행사를 열어야 정산이 되고, 완성된 작품이라야 심사에 오른다. 그래서 준비만 하는 해는 실패로 기록되고, 기획 단계의 노동은 아무 데도 계상되지 않는다. 이 구조에서 반복해서 살아남는 것은 여유 자금이 있는 조직뿐이다. 바꾸는 방법은 의외로 단순하다. 예산 항목의 이름을 바꾸는 것이다. '행사 운영비' 옆에 '준비 연도 조사비'와 '참가자 인건비'가 생기면, 그 항목이 존재한다는 사실만으로 지원의 대상이 달라진다. 이번 호의 사례들이 공통으로 알려주는 것은, 축제의 문턱을 낮추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홍보가 아니라 회계라는 사실이다. 이 발상은 유럽과 남미 현장에서 먼저 자리 잡아 한국 공모 요강에 반영되기까지 대체로 12~18개월이 걸린다.

과정에 돈을 붙이는 일에는 부수 효과도 있다. 참가자에게 시급을 지급하는 순간 주최는 그 시간의 사용처를 설명할 책임을 지게 되고, 그래서 프로그램의 밀도가 올라간다. 상금은 주고 나면 끝이지만 인건비는 무엇을 위해 쓴 시간인지 기록으로 남는다. 콜롬비아의 관객 학교가 21개 학술 프로그램으로 세분화된 것도 같은 원리로 읽힌다. 무엇을 가르쳤는지 적어야 하는 구조가 편성을 정교하게 만든다. 반대로 한국의 많은 부대 프로그램이 매년 비슷한 이유는 결과만 정산하면 되기 때문이다. 회계의 형식이 콘텐츠의 수준을 결정한다는 말은 과장이 아니다.

③ 한국 축제를 향해 — 기록이 없으면 아무것도 증명되지 않는다

이번 호를 관통한 세 번째 흐름은 기록이다. 영국이 100개 축제의 안전 사고와 범죄 건수를 한자리에 모아 "우리 축제는 세계에서 가장 안전한 축에 든다"고 말할 수 있었던 것은 매년 같은 양식으로 기록해왔기 때문이다. 서울이 국제회의 40건의 경제 효과를 332억 원으로 제시할 수 있었던 것도 국제 표준 계산법을 들여와 자기 도시의 소비 데이터에 맞춰 놓았기 때문이다. 일본이 국제행사 평가에서 '분야별 강점'을 말할 수 있게 된 것도 통계의 축이 하나 늘어났기 때문이다. 반대로 기록 양식이 없는 곳에서는 아무리 좋은 축제를 열어도 그 성과가 다음 해의 근거가 되지 못한다.

한국 축제 현장에 지금 필요한 것은 새로운 아이디어보다 같은 양식의 3년치 기록이다. 방문객 수 하나가 아니라 숙박과 식음, 교통, 구매를 나눈 네 갈래의 숫자, 안전과 의료와 상담의 발생 건수, 부지의 연중 사용 일수와 관리 비용, 참여 단체와 자원활동가의 재참여율. 이 숫자들은 화려하지 않지만 예산 심의에서 유일하게 힘을 갖는 언어다. 그리고 이런 체계는 대개 해외 현장에서 먼저 자리 잡은 뒤 한국 실무에 6~12개월 시차를 두고 도착한다. 지금 양식을 만들어두면 그 시차만큼 앞서 출발하는 셈이다. 기록에는 한 가지 조건이 더 붙는다. 혼자 기록하면 비교 대상이 없어 아무 말도 할 수 없다는 점이다. 영국의 숫자가 힘을 갖는 이유는 100개 축제가 같은 양식을 썼기 때문이고, 서울의 계산이 설득력을 갖는 이유는 세계의 다른 도시가 같은 도구를 쓰기 때문이다. 그래서 기록의 첫 단계는 우리 축제 안에서 시작하되, 두 번째 단계는 반드시 밖으로 열려야 한다. 같은 권역의 축제들과 최소한의 공통 항목을 합의하는 일, 광역 문화재단이 그 양식을 관리하는 일, 3년 뒤 그 데이터를 공개하는 일까지가 한 묶음이다. 경쟁하는 축제끼리 숫자를 공유하는 것이 손해처럼 보이겠지만, 포틀랜드의 세 도시가 20년 넘게 증명한 것은 그 반대였다.

올해 축제가 끝난 자리에서 가장 먼저 할 일은 사진을 정리하는 것이 아니라, 내년에 다시 쓸 수 있는 표 한 장을 만드는 것이다.

출처 · 한국축제지원센터 페스티벌 인사이트 2026-W32 (공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