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핵심 — THIS WEEK POINT

  • 축제가 '며칠'에서 '장소'로 넓어진다. 브뤼셀 근교의 한 축제는 군사시설을 개조한 부지를 지자체와 계약해 1년 내내 운영하고, 스페인 로그로뇨의 12년 차 축제는 설치물이 청소년의 농구장과 장바구니를 든 시민의 그늘로 흡수됐다. 축제의 성과를 관객 수가 아니라 '끝난 뒤 그 자리에 남은 것'으로 재는 관점이 여러 나라에서 동시에 자리 잡고 있다.
  • 축제가 스스로 자본과 도구를 쥐기 시작한다. 런던의 독립영화제는 상영·시상에 머물지 않고 개발 허브와 제작 기금을 직접 만들었고, 축제 음식은 '허기를 때우는 것'에서 방문의 이유로 올라섰다. 지난 호에서 영화제가 자본의 관심을 끄는 무대로 읽히기 시작했다면, 이번 호에서는 축제가 그 자본을 직접 운용하는 주체로 한 걸음 더 나아갔다.
  • 한국은 시설에서 사람으로 무게를 옮기는 중이다. 지난 호에 이어 지자체의 국제행사 유치 경쟁은 계속 뜨겁지만, 이번 주 눈에 띈 움직임은 건물이 아니라 인력이었다. 이런 기획 담론은 대개 해외 현장에서 먼저 무르익은 뒤 한국 축제 실무에 6~12개월쯤 시차를 두고 닿는다 — 지금 설계에 반영하면 그 시차만큼 앞선다.

이번 호 핵심 트렌드

축제가 부지의 '연중 관리자'가 되다 — 브뤼셀 근교 옛 군사시설의 실험

브뤼셀 근교의 한 예술·음악 축제가 유럽 기획자들 사이에서 화제다. 이 축제를 만드는 비영리 조직은 지자체와 계약을 맺고 옛 군사시설을 개조한 부지를 1년 내내 운영한다. 축제가 열리는 며칠을 위해 잠시 부지를 빌리는 것이 아니라, 농구 코트와 클라이밍 센터, 상점,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는 조용한 오후, 분기마다 열리는 클럽 나이트까지 그 장소의 일상 전체를 맡는다. 축제는 그 일상이 1년에 한 번 가장 크게 부풀어 오르는 순간일 뿐이다. 무대는 건축 집단들이 각각 설계해 춤추는 공간의 문법 자체를 다시 묻고, 축제 몇 주 전부터는 자원활동가들이 부지에 들어와 무대미술과 음향을 배우고 나누는 워크숍이 열린다. 현장을 찾은 영국 기자들은 이곳의 관객이 '축제 가는 사람'의 옷차림과 행동을 연기하지 않고 그저 자기 자신으로 와 있다는 점에 놀랐다고 적었다. 공연예술 전용 공간에서는 브뤼셀에 사는 무용가들이 느린 춤으로 친밀함을 다루는 신작을 올렸다. 파티에서 공연으로, 다시 파티로 마음을 옮겨 다니는 관객이 있어야 성립하는 프로그램이다. 정치가 문화에 진심으로 예산을 넣고 그 권한을 장소의 관리자가 된 사람들에게 넘겼을 때 무엇이 가능한지를 보여주는 사례다.

현장에 주는 함의 — 한국 지역 축제의 가장 큰 낭비는 '며칠'에 있다. 1년 내내 비어 있는 광장과 폐산업시설을 축제 기간에만 잠깐 빌려 쓰고 원상복구해 돌려주는 구조에서는, 축제가 아무리 잘돼도 지역에 남는 자산이 없다. 방향을 바꾸려면 계약의 단위를 바꿔야 한다. 축제 조직이 부지의 연중 위탁 운영자가 되어 평소에는 체육·창작·상업 공간으로 열고, 축제는 그 장소가 1년에 한 번 가장 커지는 날로 설계하는 방식이다. 지자체 입장에서도 유휴공간 관리 비용을 문화 조직의 운영 역량으로 대체하는 셈이라 명분이 선다. 실무 순서는 어렵지 않다. 첫해에는 축제 전후 한 달까지 사용 기간을 늘려 사전 워크숍과 사후 전시를 붙이고, 그 실적으로 이듬해 분기 단위 프로그램 운영권을 협의하고, 그다음 연중 위탁으로 넓히는 3년 계획이면 충분하다. 축제 조직이 '행사 대행'이 아니라 '장소 운영'의 언어를 갖추는 순간, 협상 상대와 예산의 성격이 함께 달라진다.

사라지도록 만든 축제가 도시에 남긴 것 — 로그로뇨의 12년 차 도시 축제

스페인 라리오하의 소도시 로그로뇨에서 열리는 도시·건축 축제가 열두 번째 판을 마쳤다. 엿새 동안 광장과 주차장, 포도밭 길에 임시 구조물이 들어섰다가 사라지는 이 축제에서 눈에 띈 것은 작품이 아니라 시민의 태도였다. 주차장에 놓인 설치물은 취재진이 도착했을 때 이미 동네 청소년들의 농구장이 되어 있었고, 못 하나 쓰지 않고 목재 한 팔레트 분량으로 지은 구조물 아래에서는 장바구니를 든 여성이 나무판 사이로 빛이 움직이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학교와 함께 만든 또 다른 프로젝트는 운동장과 유니폼을 다시 설계해 '누가 경기 바깥으로 밀려나는가'를 드러냈다. 광장에 쌓아 올린 모래 언덕은 한 주 내내 시민들의 손글씨 소원을 모았다가 축제 마지막 날 공동의 모닥불이 됐고, 통제와 접근 금지의 상징인 비계는 날마다 다른 쓰임을 갖는 구조물로 바뀌어 제작·회합·놀이·시위·재순환이 모두 공공 공간의 정당한 용도임을 보여줬다. 도시가 방문 건축가들을 위해 자신을 재배치하는 통상의 안무 대신, 축제가 도시의 원래 속도에 스며든 쪽에 가깝다. 12년의 반복이 만든 것은 랜드마크가 아니라 시민의 익숙함이었다.

현장에 주는 함의 — 한국의 도시 축제는 '무엇을 남길 것인가'를 대개 시설로 답해왔다. 조형물을 세우고 건물을 짓는 방식은 성과 보고에는 유리하지만 관리 부담이 남고, 몇 해 지나면 도시의 애물단지가 되기 쉽다. 로그로뇨가 보여준 답은 정반대다. 사라지는 구조물을 12년간 반복해 남긴 것은 '공공 공간을 우리가 마음대로 써도 된다'는 시민의 감각이었다. 이 감각은 건물보다 오래가고 관리비도 들지 않는다. 실무로 옮기면 세 가지다. 첫째, 임시 구조물을 작품이 아니라 '기능'으로 설계해 축제가 끝나기 전부터 주민이 원래 용도와 다르게 쓰게 두는 것. 둘째, 지역 학교·상인회와 함께 만들어 제작 과정 자체를 프로그램으로 공개하는 것. 셋째, 성과를 방문객 수가 아니라 '축제가 끝난 뒤에도 그 자리에서 이어진 사용'으로 기록해 다음 해 예산의 근거로 삼는 것이다. 한 해로는 아무것도 증명되지 않는다는 점도 함께 받아들여야 한다. 로그로뇨가 얻은 시민의 익숙함은 열두 번의 반복이 만든 것이지 한 번의 성공이 만든 것이 아니다. 사라지는 것을 반복할 용기가 오히려 축적을 만든다.

영화제가 '개발 허브'와 제작 기금을 직접 만든다 — 런던 독립영화제의 선택

서른네 번째를 맞은 런던의 한 독립영화제가 이스라엘의 인공지능 기반 창작 개발 플랫폼과 손잡고 1만 파운드 규모의 제작 기금과 개발 허브를 새로 열었다. 이 영화제는 오래전부터 각본 공모전을 운영해왔는데, 앞으로는 선정된 작가들이 그 플랫폼의 도구로 각본을 다듬고 시각 자료와 피칭 자료를 만들어 공모 단계에서 함께 제출하게 된다. 그 과정을 거친 기획에 기금이 붙는 구조다. 영화제 창립자는 가장 이른 단계인 각본에서부터 독립 창작자를 뒷받침하겠다고 밝혔고, 집행위원장은 인공지능 도구의 쓰임을 작가를 대체하는 것이 아니라 강화하는 것으로 못 박았다. 실제로 기금 심사는 각본을 고치는 데가 아니라 제작 계획과 작업 흐름을 짜는 데 도구를 어떻게 썼는지만 본다. 도구를 쓰고 싶지 않은 작가는 참여하지 않아도 공모전 본상 자격에는 아무 영향이 없다. 업계의 찬반이 여전히 갈리는 기술을 두고, 축제가 '쓸 것인가 말 것인가'가 아니라 '어디까지 어떻게 쓰는가'의 규칙을 먼저 만들어 제시한 셈이다. 지난 호에서 영화제가 자본과 의제가 만나는 시장으로 읽히기 시작했다면, 이번에는 축제가 그 자본을 직접 굴리는 자리로 한 발 더 나아갔다.

현장에 주는 함의 — 한국의 영화제·콘텐츠 축제도 상영과 시상을 넘어 '창작의 앞단'으로 내려갈 때다. 이미 여러 영화제가 프로젝트 마켓과 피칭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지만, 대부분 완성된 기획을 골라 소개하는 데서 멈춘다. 런던 사례의 핵심은 축제가 선정 이전 단계, 즉 작가가 기획을 만드는 과정에 도구와 돈을 함께 넣었다는 점이다. 한국에서 당장 적용할 수 있는 순서는 이렇다. 첫째, 공모전에 붙는 소액이라도 좋으니 '개발 기금'을 별도로 만들어 심사 기준과 함께 공개할 것. 둘째, 인공지능 도구를 쓸 경우 어디까지 허용하고 무엇을 밝혀야 하는지를 축제가 먼저 문서로 정해 창작자에게 예측 가능성을 줄 것. 셋째, 도구 사용을 선택지로 두어 쓰지 않는 창작자가 불이익을 받지 않도록 설계할 것. 기술 논쟁의 한복판에서 규칙을 먼저 쓰는 쪽이 그 분야의 기준이 된다.

축제 음식이 '판매'에서 '기억 만들기'로 옮겨간다 — 10년 차 바비큐 축제의 관찰

영국 에식스의 작은 마을에서 지역 응급의료 헬기 후원 모금을 위해 시작된 바비큐 축제가 올해 10년을 맞았다. 창립자는 이 10년 사이 축제에서 음식이 놓인 자리가 완전히 달라졌다고 말한다. 예전에는 공연을 보러 가기 전 허기를 때우려 무언가를 집어 드는 정도였다면, 지금은 음식이 그 행사에 가는 가장 큰 이유가 된다는 것이다. 관객이 달라진 탓이 크다. 헤드라이너 공연에 돈을 쓰는 사람이 동시에 미식가이자 운동 애호가이고 주말의 회복을 챙기는 사람이기도 하다. 그래서 음악 축제는 이제 다른 음악 축제하고만 경쟁하지 않는다. 이 축제가 택한 길은 바비큐를 미국의 것으로 좁히지 않고 아르헨티나의 아사도, 남아프리카의 브라이, 유럽과 아시아의 불 요리까지 끌어와 '불로 굽는 문화'의 계보로 넓히는 것이었다. 관객은 먹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조리를 지켜보고 배우고 사진을 찍고 요리사와 이야기한 뒤 집에서 따라 한다. 창립자는 지금 축제 운영의 가장 큰 위험으로 치솟는 원가를 꼽으면서도, 관객이 1년에 한 번 갈 행사를 고르는 시대에 '하루를 통째로 보낼 이유'를 주는 쪽이 살아남는다고 말한다.

현장에 주는 함의 — 한국 지역 축제에서 먹거리는 대개 임대 수익원이거나 민원의 출발점이다. 자릿세를 받고 부스를 채운 뒤 바가지요금 논란을 수습하는 일이 해마다 반복된다. 관점을 바꾸면 먹거리는 축제의 가장 강력한 프로그램이다. 실무 전환은 세 단계로 가능하다. 첫째, 입점 심사 기준을 '무엇을 파는가'에서 '관객이 무엇을 보고 배우고 가져가는가'로 바꿔 조리 시연·재료 산지 설명·짧은 강습을 제안서에 요구하는 것. 둘째, 우리 지역의 식재료와 조리법을 하나의 계보로 엮어 축제의 서사로 세우는 것 — 국밥이든 어리굴젓이든 그 음식이 지나온 길을 프로그램으로 만들면 그 축제만의 것이 된다. 셋째, 가격표를 미리 공개하고 표준 용기와 표준 중량을 정해 신뢰를 운영 규칙으로 만드는 것이다. 관객이 1년에 한 번 갈 축제를 고른다면, 그 하루를 온전히 채울 이유를 주는 쪽이 선택된다.

새 축제는 태어나고 오래된 축제는 무너진다 — 영국 축제 생태계의 두 장면

같은 주 영국에서 축제의 시작과 끝을 보여주는 두 장면이 나란히 전해졌다. 하나는 웨일스 중부의 작은 마을에서 처음 열린 이틀짜리 축제다. 낮에는 언덕과 오래된 숲이 있는 조용한 곳이지만 밤에는 드럼앤베이스와 테크노가 흐른다. 이 축제를 만든 이들은 전업 기획자가 아니라 각자 직업을 가진 친구들이고, 음향 장비를 굴리는 친구와 농장을 아는 지인을 모아 90년대 자생적 파티에 가까운 방식으로 시작했다. 2일권이 40파운드 남짓으로, 큰 헤드라이너 없이도 '우리가 하고 싶은 대로 한다'는 것이 강점이다. 다른 하나는 콘월에서 6월 말 축제를 치른 운영사가 법정관리에 들어가며 남긴 자리다. 현장 책임자는 자신이 1만 파운드, 나머지 현장 인력이 2만 파운드까지 받지 못하게 됐다고 말했고, 회사는 관객에게 환불해줄 재정 상태가 아니라고 알렸다. 9월로 예정됐던 같은 회사의 다른 축제는 취소됐다. 올해 영국에서만 스무 곳 넘는 축제가 취소되거나 미뤄졌고, 관객은 티켓을 점점 늦게 산다. 진입 장벽은 낮아졌지만 버티는 일은 어려워진 시장의 두 얼굴이다.

현장에 주는 함의 — 한국에서도 축제의 위험은 이미 개인에게 몰려 있다. 무대·음향·조명·연출 인력 상당수가 프리랜서이고, 대금은 행사가 끝난 뒤에 들어온다. 주최가 무너지면 회수할 방법이 사실상 없다는 점은 영국과 다르지 않다. 지금 준비할 수 있는 안전장치는 분명하다. 첫째, 공공 예산이 들어가는 축제부터 대금 지급 기일과 지연 시 조치를 계약서 표준 조항으로 넣고 정산 완료를 사업 종료 요건으로 삼는 것. 둘째, 티켓 판매 대금을 별도 계좌로 분리 보관해 행사 무산 시 환불 재원이 남게 하는 것. 셋째, 소규모 신생 축제를 위한 공동 보험과 장비 공유 체계를 협회나 지역 단위로 만들어, 첫해 고정비 부담 때문에 좋은 기획이 사라지지 않게 하는 것이다. 관객이 티켓을 늦게 사는 경향은 한국에서도 이미 뚜렷한데, 이는 주최가 개최 직전까지 현금 흐름을 알 수 없다는 뜻이다. 그래서 예매 시점을 앞당기는 할인보다, 늦게 팔려도 버틸 수 있는 자금 구조를 먼저 갖추는 쪽이 실질적이다. 새 축제가 태어날 자리를 지키는 일과 무너질 때의 피해를 줄이는 일은 같은 설계의 앞뒤다.


세계 현장에서 온 단서

공영 라디오가 축제의 공동 창작자가 되다 — 아비뇽의 일주일

7월 한 달을 연극으로 채우는 프랑스 아비뇽 축제에서, 프랑스의 공영 문화 라디오가 일주일 동안 별도의 무료 프로그램을 열었다. 방식이 흥미롭다. 축제를 취재해 내보내는 중계가 아니라, 미술관 정원에 관객을 앉혀두고 배우와 음악가가 함께 새 작품을 만들어 그 자리에서 방송하는 공개 창작이다. 축제 예술감독이 직접 무대에 올라 질문에 답하는 형식의 창작물, 한국 작가의 소설을 프랑스어로 옮겨 낭독극으로 만든 밤, 축제 본무대에 오른 대작과 짝을 이루도록 설계한 낭독 공연이 이어졌다. 낮에는 수도원 안뜰에서 매일 낮 시간대 문화 대담 프로그램을 공개로 진행했다. 방송사에게 이 일주일은 스튜디오 밖에서 청취자를 직접 만나는 자리이고, 축제에게는 무대에 올리기 어려운 문학과 실험을 관객 앞에 세울 여유 공간이다. 특히 한국 소설이 프랑스 공영 라디오의 축제 프로그램에 정식 창작물로 오른 것은, 번역 출간을 넘어 공연 형식으로 유통되는 경로가 열리고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현장에 주는 함의 — 한국 축제의 미디어 협력은 대개 홍보 협찬에서 멈춘다. 지역 방송사가 중계권을 갖고 개막식을 내보내는 정도이고, 그 결과물은 축제가 끝나면 남지 않는다. 아비뇽 사례가 보여주는 것은 미디어를 홍보 매체가 아니라 공동 창작자로 초대하는 방식이다. 실무로 옮기면 이렇다. 첫째, 지역 방송·팟캐스트·독립 미디어에 '중계'가 아니라 '제작'을 제안해 축제 기간 중 며칠을 그들의 공개 스튜디오로 내주는 것. 둘째, 그 자리에서 만들어진 낭독극·다큐·대담을 축제의 이름으로 아카이브에 남겨 이듬해까지 흐르게 하는 것. 셋째, 지역 문학과 이야기를 무대 형식으로 옮기는 소규모 창작 라인을 붙여, 축제가 그 지역 서사의 생산지가 되게 하는 것이다. 방송사 입장에서도 손해 보는 거래가 아니다. 스튜디오에서는 만들 수 없는 현장 감각과 청취자와의 직접 접점을 얻고, 축제는 홍보비를 쓰지 않고도 1년 내내 재생되는 콘텐츠를 갖는다. 콘텐츠가 남는 축제는 1년에 며칠이 아니라 1년 내내 존재한다.

서른 살 축제가 '공동체 행렬'로 문을 연다 — 콜롬비아 칼리의 개막 설계

콜롬비아 칼리에서 열리는 태평양 연안 음악 축제가 서른 번째 판을 맞았다. 이 축제의 개막을 여는 것은 유명 가수의 무대가 아니라 행렬이다. 태평양 연안 네 개 주에서 올라온 스물세 개 지역 공동체가 8월 초 저녁 도심 큰길을 함께 걷는다. 음악가와 무용수, 전통 인물을 연기하는 이들, 깃발을 든 대표까지 1,600명이 넘는 참가자가 행렬을 이루고, 그 끝은 축제의 본무대가 있는 광장이다. 주최 측은 이 행렬을 기억과 정체성, 조상의 지식에 바치는 인사라고 설명한다. 축제가 아프리카계와 원주민 공동체의 문화를 소개하는 무대에 그치지 않고, 그 문화를 지켜온 사람들이 스스로 도시의 중심을 걸어 들어오는 형식을 개막으로 삼은 것이다. 30년의 반복이 만든 것은 대회의 권위가 아니라, 흩어져 살던 공동체들이 매년 같은 자리에서 다시 모이는 약속이었다. 문화 담당 책임자는 이 행렬을 우리 뿌리의 자부심을 도시 전체가 함께 축하하자는 초대라고 표현했다.

현장에 주는 함의 — 한국 축제의 개막식은 대개 내빈 소개와 축사, 초청 가수 무대로 채워진다. 이 순서는 예산을 쓰지만 이야기를 만들지는 못한다. 칼리의 방식은 개막의 주인공을 '축제를 있게 한 사람들'로 바꾸는 것이다. 옮겨볼 지점은 세 가지다. 첫째, 개막을 무대가 아니라 이동으로 설계해 마을·학교·이주민 공동체·상인회가 각자의 대열로 걸어 들어오게 하는 것 — 참여 단위가 개인이 아니라 공동체가 되면 그 축제는 매년 돌아올 이유를 얻는다. 둘째, 대열마다 자기 지역의 노래와 복식, 인물을 스스로 정하게 해 개막 자체를 지역 문화 조사의 결과물로 만드는 것. 셋째, 그 기록을 해마다 같은 양식으로 남겨 30년 뒤 축제가 지역 문화의 아카이브가 되게 하는 것이다. 초청 가수의 무대는 하루면 끝나지만, 공동체가 걸어 들어온 기억은 다음 세대로 넘어간다.

'오래 사는 일'이 축제의 주제가 된다 — 칸에서 열리는 장수 축제

영화제로 유명한 프랑스 칸의 페스티벌 궁전에서 9월에 열리는 행사의 주제는 영화가 아니라 '오래 사는 일'이다. 고령화와 장수를 다루는 이 국제 축제는 50개국 넘는 나라에서 정책 결정자와 투자자, 창업자, 연구자가 모이는 자리로 자리 잡았다. 주최 측은 스스로를 장수 분야의 다보스라고 부른다. 이틀 동안 기조 대담과 전시, 일대일 사업 매칭, 시상식이 이어지고, 다루는 영역은 의료와 돌봄에서 인공지능과 장수 기술, 살던 집에서 나이 드는 주거, 예방과 건강, 공공정책, 금융과 투자, 고령 사회의 인력 문제까지 걸쳐 있다. 눈여겨볼 대목은 형식이다. 학술대회도 아니고 전시회도 아니며, 스스로를 '축제'라 부르면서 기업 간 상담과 시상, 야간 네트워킹 행사를 하나로 묶었다. 무거운 사회 의제를 다루면서도 사람들이 모이고 싶은 자리의 문법을 택한 것이다. 참가자 상당수가 도착 전부터 만날 상대를 예약해두고 오는 구조라, 축제가 곧 거래와 협업이 성사되는 장터로 작동한다.

현장에 주는 함의 — 한국은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나이 드는 사회이면서도, 고령화를 다루는 자리는 대개 학술대회나 복지 박람회의 형식에 머문다. 칸의 사례가 던지는 질문은 '왜 우리는 이 주제를 축제의 형식으로 다루지 못하는가'다. 축제의 형식은 두 가지를 바꾼다. 하나는 참가자의 구성이다. 연구자와 공무원만이 아니라 투자자와 창업자, 돌봄 현장의 실무자, 그리고 당사자인 고령 시민이 같은 자리에 섞인다. 다른 하나는 성과의 종류다. 발표 자료가 아니라 성사된 협업과 계약이 남는다. 지자체 단위에서 시작한다면 순서는 이렇다. 첫째, 지역의 고령 인구 관련 기업·기관 목록을 만들고 사전 상담 예약제를 붙일 것. 둘째, 시상 부문을 만들어 매년 좋은 사례가 모이게 할 것. 셋째, 당사자가 관객이 아니라 프로그램의 진행자와 심사자로 참여하게 할 것. 인구 구조가 가장 앞서 있다는 사실은 부담이지만, 그 주제의 국제 무대를 먼저 여는 도시에게는 자산이 된다.


한국 축제 현장

MICE 경쟁력의 무게가 '시설'에서 '사람'으로 옮겨간다 — 경기도의 인력 양성 실험

지난 호에 이어 지자체의 국제행사 유치 경쟁은 계속 뜨겁지만, 이번 주 눈에 띈 움직임은 건물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경기관광공사가 7월 하순 닷새 동안 수원컨벤션센터에서 연 국제행사·전시 분야 청년 인재 과정에 42명이 신청했다. 지난해 31명에서 크게 늘어난 숫자다. 오프라인 20시간과 온라인 5시간을 합쳐 25시간으로 짜인 이 과정은 산업 이해와 실무 교육에 더해 현직자 멘토링, 자기소개서와 면접 코칭, 독특한 행사장 현장 견학까지 붙였다. 올해의 진짜 변화는 커리큘럼이 아니라 연결 구조에 있다. 광역 단위 공사와 기초 단위 공공기관이 서로의 교육 이수 시간을 인정해주는 과정을 새로 만들어, 수원컨벤션센터와 지역 상공회의소 프로그램을 이미 들은 청년이 곧바로 인턴십 단계로 넘어갈 수 있게 했다. 출석률 80%를 넘긴 수료생에게는 최소 6주 인턴십이 주어지고, 국제 정상회의와 동계올림픽 국가관 운영 경험을 가진 전문기업 12곳이 받는 쪽에 이름을 올렸다. 지난해에는 수료생 31명 중 22명이 인턴십으로 이어졌다.

현장에 주는 함의 — 이 사례에서 배울 것은 교육 프로그램이 아니라 '이수 인정'이라는 장치다. 지금까지 축제·행사 분야의 인력 양성은 기관마다 따로 열리고 따로 끝났다. 같은 청년이 세 기관의 비슷한 입문 과정을 세 번 듣고도 경력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일이 흔했다. 교육 이수 시간을 서로 인정하는 순간, 흩어진 프로그램은 하나의 사다리가 된다. 축제 분야에 그대로 옮길 수 있다. 첫째, 광역 문화재단과 시군 축제조직위, 협회가 공통 이수 체계를 만들어 무대감독·안전관리·자원활동가 운영 같은 공통 과목을 서로 인정할 것. 둘째, 그 이수 기록을 축제 현장 실습과 연결해 한 시즌을 마치면 다음 해 채용 우대 요건이 되게 할 것. 셋째, 인턴을 받는 기업·조직 명단과 연계율을 공개해 교육의 성과를 숫자로 남길 것. 시설은 지어놓으면 그 자리에 있지만, 사람은 흩어진다. 사다리를 만드는 쪽이 결국 유치 경쟁에서도 앞선다.

축구 경기장이 야시장이 된다 — 제주의 여름밤 실험

제주의 프로축구 구단이 지난해에 이어 올여름에도 홈 경기에 맞춰 경기장 광장에 야시장을 열었다. 7월 홈 두 경기에 맞춰 플리마켓이 서고 경기 전후로 버스킹 공연이 이어지며, 지역 맥주를 나눠주는 구역과 중국식 꼬치·튀김을 파는 부스, 푸드트럭이 더해졌다. 지난해 여름 이 야시장을 처음 열었을 때 경기당 평균 관중은 7,530명으로, 그해 시즌 평균 7,153명을 웃돌았다. 한여름 무더위는 보통 관중 수를 끌어내리는 변수인데, 그 시기에 오히려 평균을 넘어선 것이다. 구단이 노린 것은 경기 자체가 아니라 체류 시간이었다. 경기가 끝나면 곧장 흩어지던 관중이 먹고 마시고 구경할 이유를 얻으면, 경기장은 90분짜리 시설이 아니라 저녁 시간을 통째로 보내는 장소가 된다. 지역 상권과 도시의 밤 문화까지 함께 살아난다는 계산이다. 지난 호에서 브랜드가 자기 이름을 건 축제의 주인이 되는 흐름을 짚었는데, 스포츠 구단이 축제의 운영자로 나서는 이 움직임도 같은 흐름의 다른 얼굴이다.

현장에 주는 함의 — 한국의 공공 체육시설과 문화시설은 대부분 '본 행사'가 있는 날에만 열린다. 경기가 없는 날, 공연이 없는 날의 경기장과 공연장은 도시에서 가장 큰 빈 땅이다. 제주 사례의 핵심은 본 행사에 축제를 덧붙여 시설의 체류 시간을 늘렸다는 점이고, 여기에는 축제 기획자가 파고들 자리가 넓다. 첫째, 구단·공연장·컨벤션센터에 '경기 전후 세 시간'을 기획 대상으로 제안할 것 — 이미 사람이 모여 있는 시간대라 집객 비용이 들지 않는 것이 최대 강점이다. 둘째, 지역 소상공인과 푸드트럭, 버스커에게 그 시간대를 상시 무대로 열어 지역 창작자의 정기 수입원으로 만들 것. 셋째, 성과를 관중 수가 아니라 체류 시간과 인근 상권 매출로 기록해 다음 시즌 계약의 근거로 삼을 것. 무더위나 궂은 날씨처럼 관중을 줄이는 조건에서 오히려 평균을 넘겼다는 기록은 그 자체로 강력한 제안서가 된다. 축제를 새로 만드는 것보다, 이미 사람이 모이는 시간에 축제의 문법을 얹는 쪽이 빠르고 확실하다.

컨벤션센터가 해외 파트너와 직접 손을 잡는다 — 제주의 유치 방식 전환

제주국제컨벤션센터가 중국 산둥성 칭다오의 국유 관광기업과 관광·국제행사 분야 협력 협약을 맺었다. 상대는 관광지 개발과 호텔·리조트 운영을 하면서 최근 기업 연수와 포상 관광 분야를 넓히고 있는 회사다. 두 기관은 자원과 정보를 교류하고 공동 마케팅을 벌이며 관광 상품과 기업 행사를 함께 개발하기로 했다. 칭다오 대표단은 올해 2월 문을 연 제주의 새 전시 시설을 둘러보며 운영 현황을 살폈고, 제주 쪽은 7월 말 칭다오를 직접 찾아가 현지 기업을 상대로 포상 관광과 국제회의 프로그램을 소개할 계획이다. 같은 시기 제주관광공사는 국제 학술 네트워크를 가진 전문가들을 국제회의 유치 활동에 참여시키는 위촉 제도를 운영했고, 도내에서 열린 국제행사 상담회에서는 국내외 구매자와 지역 업계 사이에 551건의 상담이 이뤄졌다. 유치 활동의 무게가 국내 홍보에서 상대 지역으로 직접 찾아가는 쪽으로, 그리고 기관 대 기관의 관계 맺기로 옮겨가는 흐름이 읽힌다.

현장에 주는 함의 — 축제 분야도 같은 전환이 필요하다. 지금까지 한국 지역 축제의 국제 교류는 자매도시 방문과 공연단 교환에 머무는 경우가 많았다. 방문은 있었지만 거래는 없었다. 제주 방식의 요점은 상대 조직을 '친선 대상'이 아니라 '사업 파트너'로 규정하고, 공동 마케팅과 공동 상품 개발이라는 구체적 항목을 협약에 넣은 데 있다. 축제에 옮기면 이렇다. 첫째, 자매도시의 축제 조직과 프로그램을 서로 교환 편성해 각자의 축제에 상대의 무대를 정기적으로 두는 것 — 일회성 초청이 아니라 매년 돌아오는 자리여야 관계가 자산이 된다. 둘째, 상대 지역의 여행사·기업과 직접 만나 축제를 포함한 체류 상품을 함께 만드는 것. 셋째, 성과를 방문객 수가 아니라 성사된 상담 건수와 계약으로 기록해 다음 해 예산의 근거로 삼는 것이다. 찾아가서 팔지 않으면 아무리 좋은 축제도 국경을 넘지 못한다.


편집장의 글

① 축제의 단위가 '날짜'에서 '장소'로 바뀌고 있다

이번 호에서 가장 또렷하게 반복된 것은 축제를 며칠짜리 행사로 세지 않는 관점이다. 브뤼셀 근교의 축제 조직은 부지의 연중 운영자가 되어 농구장과 클라이밍 센터와 조용한 오후까지 관리하고, 로그로뇨의 도시 축제는 사라지는 구조물을 12년간 반복한 끝에 '공공 공간을 마음대로 써도 된다'는 시민의 감각을 남겼다. 제주의 축구 구단은 경기장의 90분을 저녁 전체로 늘렸다. 세 사례의 공통점은 축제의 성과를 그 며칠의 관객 수가 아니라 그 장소에 남은 습관으로 측정한다는 데 있다. 이 관점은 한국 축제 행정의 오래된 습관과 정면으로 충돌한다. 우리는 축제를 사업 기간으로 정의하고 그 기간의 지출과 방문객으로 결산한다. 그래서 축제가 끝나면 조직도 사라지고 노하우도 흩어지며, 이듬해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 축제의 단위를 장소로 바꾸는 일은 예산 서류의 한 줄을 고치는 문제가 아니라 조직의 존속 방식을 바꾸는 문제다. 그리고 그 전환은 대개 '축제 기간을 늘려달라'는 요구가 아니라 '비어 있는 날의 관리를 우리가 맡겠다'는 제안에서 시작된다.

② 축제가 자본과 도구를 직접 쥐기 시작했다

두 번째로 눈에 띈 흐름은 축제가 남이 만든 것을 보여주는 자리에서, 만들어지는 과정에 개입하는 자리로 옮겨가고 있다는 점이다. 런던의 독립영화제는 각본 공모전 앞단에 개발 허브와 제작 기금을 붙여 창작의 가장 이른 단계에 돈과 도구를 넣었고, 인공지능 도구를 어디까지 쓸 수 있는지의 규칙까지 먼저 문서로 만들었다. 에식스의 바비큐 축제는 음식을 임대 수익원이 아니라 프로그램으로 다뤄, 관객이 보고 배우고 집에서 따라 하는 경로를 설계했다. 칸의 장수 축제는 학술대회의 형식을 버리고 상담과 시상과 야간 모임을 묶어 거래가 성사되는 장터를 만들었다. 세 사례 모두 축제가 '무대'에서 '기반 시설'로 자기 정의를 바꾼 경우다. 이 변화가 중요한 이유는 예산의 성격이 함께 바뀌기 때문이다. 무대는 문화 예산의 지원 대상이지만, 기반 시설은 산업·고용·통상 예산의 협상 상대가 된다. 한국 축제가 매년 겪는 예산 다툼의 상당 부분은 스스로를 무대로만 설명해온 결과이기도 하다. 여기서 주의할 것이 하나 있다. 자본과 도구를 쥐는 일은 축제가 커지는 것과 다르다. 세 사례 모두 규모를 키운 것이 아니라 축제가 관여하는 시간의 앞뒤를 늘렸다. 완성된 것을 선보이는 며칠에서, 만들어지는 과정과 만들어진 뒤의 거래까지 발을 넓힌 것이다. 한국 축제가 당장 흉내 낼 것은 기금의 규모가 아니라 이 순서다. 우리 축제가 무엇을 골라 보여줄지를 정하기 전에, 그것이 만들어지는 자리에 우리가 어떤 방식으로 함께 있을 수 있는지를 먼저 묻는 일이다.

③ 한국 축제를 향해 — 사람과 계약이 먼저다

이번 주 한국에서 온 세 장면은 공교롭게도 모두 '무엇을 짓는가'가 아니라 '누구와 어떻게 약속하는가'에 관한 것이었다. 경기도는 광역과 기초 기관이 교육 이수를 서로 인정하는 사다리를 만들었고, 제주의 컨벤션센터는 해외 기관과 공동 상품 개발을 명시한 협약을 맺었으며, 제주의 구단은 경기장을 지역 상권과 이어 붙였다. 반대편에서 영국은 축제 하나가 무너질 때 그 비용을 프리랜서 개인이 떠안는 구조의 위험을 보여줬다. 두 장면을 겹쳐 놓으면 지금 한국 축제 현장이 준비할 것이 분명해진다. 대금 지급과 정산을 사업 종료 요건으로 삼는 표준 계약, 기관을 넘나드는 인력 이수 체계, 그리고 해외 파트너와의 거래형 협약이다. 셋 다 무대 위에서는 보이지 않는 일이고 사진으로 남지도 않는다. 하지만 축제가 한 해로 끝나지 않고 다음 해로 이어지게 만드는 것은 결국 이런 문서와 관계다. 좋은 기획은 한 사람의 재능으로 시작되지만, 오래가는 축제는 여러 사람의 약속으로 유지된다. 지금 우리가 손볼 것은 무대가 아니라 그 약속의 문장들이다.

출처 · 한국축제지원센터 페스티벌 인사이트 2026-W31 (공개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