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 핵심 — THIS WEEK POINT
- 축제의 '주인'이 바뀌고 있다. 이번 호에는 맥주 브랜드가 만든 여름 음악 축제, 임팩트 투자자들이 읽는 영화제, 도시가 관광·영화·AI를 한데 묶어 세운 산업 생태계가 나란히 등장한다. 축제는 더 이상 지자체와 기획사만의 것이 아니라 브랜드·플랫폼·투자자·도시가 저마다의 목적으로 세우고 소유하는 자산이 되어 가고 있다.
- 경쟁의 축이 '규모'에서 '무엇을 말하는가'로 옮겨간다. 코미디라는 장르로 승부하는 두바이, 팝과 향수를 끌어안은 영국의 록 축제, 기후와 바다를 과학·예술·정책으로 풀어낸 서울의 다학제 축제까지 — 올여름 세계의 축제는 '얼마나 큰가'가 아니라 '어떤 이야기와 정체성을 파느냐'로 서로를 가른다.
- 먼저 도착한 단서를 읽으면 한발 앞선다. 이런 기획 문법은 대체로 해외 현장에서 먼저 무르익은 뒤 한국의 축제 실무에 6~12개월쯤 시차를 두고 닿는다. 지금 눈여겨봐 두면, 그 시차만큼 우리 축제 설계가 앞설 수 있다.
이번 호 핵심 트렌드
브랜드가 자기 축제를 만든다 — '카스쿨 페스티벌'과 브랜드 소유 축제의 부상
맥주 브랜드 카스가 8월 과천 서울랜드 야외 특설 무대에서 음악과 물놀이 퍼포먼스를 결합한 여름 축제를 연다. 몬스타엑스·하이라이트·QWER 같은 K-팝·록·EDM 아티스트를 앞세운 이 행사에서 눈여겨볼 대목은 라인업이 아니라 축제를 만든 주체다. 여기서 카스는 협찬사가 아니라 축제 자체를 기획하고 이름을 건 '주최자'다. 축제는 브랜드가 소비자에게 청량함이라는 정체성을 몸으로 겪게 하는 그릇이 되고, 관객은 맥주를 마시는 소비자가 아니라 브랜드의 여름을 함께 즐기는 팬으로 초대된다. 열기의 온도는 티켓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한정판 거래 플랫폼에서 단독으로 푼 얼리버드 티켓 2,000장이 판매 시작 45초 만에 동나며, 그 주 해당 플랫폼 전체 판매량 1위에 올랐다. 스니커즈나 한정판 굿즈를 사듯 축제 티켓을 손에 넣는 소비 문화가, 브랜드가 만든 축제와 만난 장면이다. 음악·물·브랜드 체험이 뒤섞인 이 축제는 광고가 아니라 경험으로 브랜드를 각인시키는 새로운 마케팅 문법을 보여준다.
현장에 주는 함의 — 브랜드가 축제를 소유하는 흐름은 지역 축제와 기획사에게 위협이자 기회다. 위협은 예산과 화제성을 갖춘 브랜드가 여름 페스티벌 시장의 관객과 아티스트를 흡수한다는 데 있고, 기회는 지역 축제가 브랜드를 협찬사가 아니라 '공동 주최자'로 끌어들일 여지가 커진다는 데 있다. 핵심은 브랜드에게 노출 지면을 파는 것이 아니라, 그 브랜드의 정체성과 우리 축제의 장소·이야기가 만나 관객이 몸으로 겪을 하나의 경험을 함께 설계하는 것이다. 지역 특산주·로컬 식음료 브랜드와 손잡아 '이 도시에서만 마실 수 있는 여름'을 축제로 빚거나, 한정판 티켓·굿즈·체험을 결합해 소장 욕구를 자극하는 구성은 당장 시도할 수 있는 출발점이다. 브랜드는 예산을, 축제는 장소와 서사를 대는 대등한 파트너십이 다음 여름의 승부처가 된다.
영화제가 '임팩트 자본'과 만난다 — 트라이베카를 읽는 투자자들
해마다 6월 뉴욕을 물들이는 트라이베카 영화제를 올해는 영화 평론가가 아니라 임팩트 투자 매체의 편집자가 현장에서 취재했다. 이들이 스크린에서 읽어낸 것은 작품성이 아니라 '어떤 사회·환경 의제가 지금 자본과 대중의 관심을 끌어당기는가'였다. 장애 포용, 여성 인권, 고령화를 다룬 다큐멘터리들이 무대에 올랐고, 이란 시민 저항을 그린 한 장편은 전부 AI로 생성되기도 했다. 특히 관객상 2위를 차지한 다큐멘터리 '하비스트'는 루이지애나의 4대째 흑인 가족 농장을 따라가며, 미국 흑인 농민이 전체의 1%로 줄어든 현실과 기후변화·투자 기피·비용 상승이 가족 농장을 어떻게 압박하는지를 그렸다. 영화제가 단지 좋은 작품을 겨루는 무대가 아니라, 어떤 문제에 사람과 돈이 모여드는지를 먼저 보여주는 '의제와 자본의 거래소'로 읽히기 시작한 것이다. 영화가 공감을 넓히는 순간, 그 공감은 곧 소비와 투자의 방향을 가리키는 나침반이 된다.
현장에 주는 함의 — 한국의 영화제·콘텐츠 축제도 '상영과 시상'을 넘어 '의제와 자본을 잇는 플랫폼'으로 자기 정의를 넓힐 때다. 부산·전주·제천 같은 영화제가 상영관 밖에 사회적 기업·임팩트 투자자·지역 문제 해결 조직이 만나는 장을 함께 열면, 축제는 문화 예산의 수혜자에서 지역 문제 해결의 촉매로 격이 달라진다. 방법은 어렵지 않다. 상영작이 다루는 주제(고령화·돌봄·기후·지역소멸)와 연결되는 현장 조직·투자자를 초청해 관객과 잇는 '의제 마켓'을 상영 프로그램 옆에 붙이는 것부터다. 관객이 영화를 보고 나와 곧바로 그 문제를 다루는 사람과 만나 다음 행동으로 이어지도록 동선을 설계하면, 축제의 가치는 감동의 크기가 아니라 그 감동이 만들어낸 변화의 크기로 측정되기 시작한다.
두바이가 '코미디'를 축제 산업으로 키운다
두바이가 올가을 일곱 번째 코미디 축제를 연다. 오페라하우스와 대형 아레나, 쇼핑몰 극장을 무대로 열흘간 이어지는 이 행사의 특징은 '언어의 다양성'이다. 200개에 가까운 국적의 주민이 사는 도시답게, 영어·힌디어·아랍어·러시아어로 공연하는 스탠드업 코미디언들이 초기 라인업에 나란히 이름을 올렸다. 2015년 첫 회에 세계적 코미디언을 앞세워 출발한 이 축제는 이제 도시의 다국적 인구 구성 자체를 콘텐츠로 삼는 단계에 이르렀다. 음악·미식 축제가 붐비는 시장에서 두바이는 상대적으로 경쟁이 덜한 '코미디'라는 장르에 도시의 정체성을 실어 차별화를 시도한다. 코미디는 언어와 문화 코드에 예민하게 반응하는 장르라, 도시가 품은 다양한 언어권 관객을 각자의 언어로 웃게 만드는 기획은 곧 그 도시만이 열 수 있는 축제라는 뜻이 된다. 장르 선택이 곧 도시 브랜딩 전략이 되는 장면이다.
현장에 주는 함의 — 한국의 지역 축제 시장은 음악과 미식, 불꽃과 등(燈)에 지나치게 몰려 있어 도시마다 비슷한 행사가 반복된다. 두바이의 사례가 던지는 질문은 '우리 도시만이 잘할 수 있는, 아직 붐비지 않은 장르는 무엇인가'다. 코미디·매직·마임·낭독·토론처럼 상대적으로 경쟁이 덜한 장르에 도시의 인구 구성과 정체성을 실으면, 규모로 겨루지 않고도 존재감을 만들 수 있다. 특히 외국인 주민·유학생·다문화 가정이 늘어난 도시라면, 여러 언어권 관객이 각자의 언어로 즐기는 프로그램을 설계하는 것 자체가 강력한 차별화가 된다. 남들이 다 하는 장르에 뒤늦게 뛰어드는 대신, 우리 도시의 사람 구성이 곧 콘텐츠가 되는 장르를 먼저 선점하는 쪽이 오래 남는다.
록 페스티벌이 '경계'를 지운다 — 다운로드가 팝과 향수를 끌어안다
영국 최대의 록·메탈 축제 다운로드 무대에 올해는 뜻밖의 이름들이 올랐다. 정통 록 팬이라면 한때 코웃음 쳤을 1990~2000년대 팝 그룹과 향수를 자극하는 가수들이 헤드라이너급 밴드들 사이에 나란히 섰고, 관객은 오히려 열광했다. 축제 관계자는 이 변화의 배경을 세대의 성숙에서 찾는다. 열여섯 살에는 모두가 음악 전문가를 자처하지만, 나이가 들면 극단적인 실험 음악을 즐기면서도 옛 팝송이 얼마나 잘 만든 곡이었는지 인정하게 된다는 것이다. 30~40대가 된 관객이 '길티 플레저'가 아니라 당당한 취향으로 옛 팝을 소비하기 시작하면서, 축제는 장르의 순수성을 지키는 대신 세대를 아우르는 즐거움을 택했다. 록 축제가 록만 고집하지 않는 이 결정은 관객층을 넓히고, 부모와 자녀가 함께 즐기는 축제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만들어낸다. 순수성을 버리는 대신 더 큰 재미와 더 넓은 관객을 얻은 셈이다.
현장에 주는 함의 — 한국 축제도 장르와 세대의 경계를 지나치게 엄격하게 긋는 경향이 있다. 젊은 층을 위한 EDM 페스티벌과 중장년을 위한 트로트 무대가 따로 열리고, 그 사이의 넓은 관객은 갈 곳을 잃는다. 다운로드의 실험은 '한 축제 안에서 세대와 취향을 섞는 것'이 관객을 넓히는 길임을 보여준다. 우리 축제도 메인 장르를 유지하되, 세대의 향수를 건드리는 무대나 부모 세대가 반가워할 이름을 의도적으로 한둘 섞어 '온 가족이 각자의 이유로 즐기는' 구성을 시도할 수 있다. 핵심은 순수성에 대한 강박을 내려놓는 것이다. 누구를 위한 축제인지 너무 좁게 규정하지 않을 때, 오히려 더 많은 사람이 자기 자리를 찾는다. 취향의 경계를 흐리는 용기가 곧 관객의 규모를 키우는 전략이다.
부산이 관광·MICE·영화·AI를 하나의 산업 생태계로 묶다
부산이 관광도시를 넘어 문화와 산업, 첨단기술을 융합한 도시로의 전환을 본격화하고 있다. 관광객 수를 늘리는 데 초점을 맞추던 기존 정책에서 벗어나, 관광·MICE·영화·영상·e스포츠·문화콘텐츠·AI를 하나의 산업 생태계로 연결하는 전략을 도시 성장 모델로 내세운 것이다. 전국 최초로 e스포츠 진흥 조례를 만들고, 관광·MICE 육성 기금을 조성하는 등 제도의 토대를 먼저 다진 뒤, 이제는 실제 산업 현장에서 관광 혁신 모델을 구현하는 단계로 넘어가고 있다. 눈길을 끄는 것은 관광을 '더 많은 사람을 부르는 일'이 아니라 '더 오래 머물고 더 많이 쓰게 하는 일'로 재정의한 점이다. 국제회의 참가자와 고소득 개별 관광객을 겨냥한 맞춤형 프리미엄 관광, AI로 정보·예약·교통·숙박·체험을 하나로 잇는 스마트 관광 플랫폼이 그 실험대다. 축제와 행사, 영화 촬영지와 미식, 해양관광이 흩어진 매력이 아니라 하나로 연결된 산업으로 재편되고 있다.
현장에 주는 함의 — 부산의 실험은 축제·행사를 기획하는 사람에게 '우리 행사는 어느 산업 생태계에 연결돼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축제가 단독 이벤트로 끝나면 그날의 방문객 수가 전부지만, 지역의 MICE·영상·미식·관광과 하나의 흐름으로 엮이면 축제는 그 생태계로 사람을 끌어들이는 입구가 된다. 지자체와 기획자가 함께 고민할 것은 우리 축제가 도시의 어떤 산업과 손잡을 수 있는가다. 축제 기간에 열리는 비즈니스 상담회, 촬영지를 잇는 관광 동선, 지역 식음료 기업과의 협업 메뉴처럼 축제를 다른 산업의 관문으로 설계하면, 축제의 성과는 '몇 명이 왔는가'를 넘어 '얼마나 오래 머물고 무엇을 소비했는가'로 확장된다. 흩어진 행사를 하나의 산업 흐름으로 꿰는 기획력이 곧 도시의 경쟁력이 된다.
기후와 바다를 과학·예술·정책으로 푸는 축제 — 서울 오티프 페스티벌
서울 광화문에서 기후변화와 해양 문제를 과학·정책·교육·예술의 눈으로 함께 다루는 국제 다학제 축제가 열렸다. 흥미로운 것은 이 행사가 환경을 '지켜야 할 대의'로만 다루지 않고, 여러 분야가 한 무대에서 서로의 언어를 섞는 '기획의 형식' 자체를 실험했다는 점이다. 과학자가 전 세계 하구 모니터링 데이터를 발표하고, 교육자가 대학과 지역을 잇는 해양 문해력 프로그램을 소개하며, 예술가가 그 과학 연구를 작품으로 번역해 관객에게 되돌려준다. 하나의 주제를 한 분야가 독점하지 않고 과학·정책·교육·예술이 릴레이로 이어받아 풀어가는 구성은, 어려운 의제를 관객이 여러 결로 경험하게 만드는 새로운 축제 문법이다. 딱딱한 포럼도 아니고 가벼운 페스티벌도 아닌, 그 사이에서 지식과 감각을 함께 다루는 형식이 관객에게 더 깊은 몰입을 준다. 무엇을 말하느냐만큼 어떻게 엮어 보여주느냐가 축제의 힘이 되는 사례다.
현장에 주는 함의 — 오티프의 방식은 환경 축제를 넘어 모든 주제형 축제에 적용할 수 있는 기획 원리를 담고 있다. 어렵거나 무거운 주제일수록 한 분야의 전문가가 일방적으로 설명하는 형식은 관객을 밀어낸다. 대신 그 주제를 과학·정책·교육·예술처럼 서로 다른 언어로 번갈아 풀어내면, 관객은 자기에게 맞는 결로 그 주제에 들어설 수 있다. 지역소멸·돌봄·고령화·먹거리 같은 우리 사회의 무거운 의제를 다루는 축제라면, 데이터와 정책 발표 옆에 반드시 그것을 감각으로 번역하는 예술과 체험을 붙이는 구성을 권한다. 관객을 가르치려 들지 않고 여러 방식으로 경험하게 할 때, 어려운 주제도 축제가 될 수 있다. 형식의 다양성이 곧 관객의 다양성을 부른다.
축제·행사가 '운영'에서 '관객 이해'로 축을 옮긴다 — 세대의 가치관을 읽는 일본의 실험
일본의 한 글로벌 이벤트 기업이 '세대와 가치관이 다른 상대에게 어떻게 인상을 남길 것인가'를 주제로 실무자 워크숍 시리즈를 시작한다. 흥미로운 것은 이 기업이 짚은 문제의식이다 — 사람은 모였지만 그것이 성과로 이어졌는지 보이지 않고, 만족도와 방문객 수 말고는 행사의 가치를 설명할 지표가 없으며, AI와 디지털화로 참가자의 행동 방식 자체가 바뀌고 있다는 것. 이 기업의 진단은 명쾌하다. 필요한 것은 '행사 운영을 조금 더 잘하는' 표층적 개선이 아니라 '관객을 한가운데 두는 경험 설계'로의 전환이라는 것이다. 워크숍은 세대별로 행사에서 무엇을 기대하고 무엇에 가치를 느끼는지를 파고들며, 같은 메시지도 '호기심형·신중형·숙고형'처럼 사람마다 다르게 받아들인다는 전제 아래 어디서 신뢰하고 어디서 이탈하는지를 입체적으로 다룬다. 행사가 정보를 전달하는 자리에서 사람의 관계와 결정에 영향을 주는 경험으로 진화한다는 관점이다. 관객을 얼마나 깊이 이해하느냐가 곧 축제의 성과를 가른다.
현장에 주는 함의 — 한국의 축제·행사도 여전히 '몇 명이 왔는가'와 '만족도 몇 점'이라는 두 지표에 갇혀 있다. 일본의 이 실험이 던지는 질문은 '우리는 관객을 세대와 성향까지 나눠 이해하고 있는가'다. 같은 무대와 프로그램도 20대와 60대, 새로운 것에 끌리는 사람과 근거를 확인해야 움직이는 사람에게 전혀 다르게 다가간다. 축제 기획자라면 관객을 하나의 덩어리로 보지 말고, 최소한 세대와 참여 성향으로 나눠 각 집단이 우리 축제에서 무엇을 기대하고 어디서 실망하는지를 관찰·기록하는 습관을 들일 필요가 있다. 그렇게 쌓인 이해는 다음 해 프로그램 구성과 홍보 언어를 정교하게 만들고, 방문객 수를 넘어 '관객의 행동이 어떻게 바뀌었는가'라는 더 깊은 성과로 축제를 설명할 근거가 된다. 관객을 이해하는 깊이가 곧 기획의 깊이다.
현장 들여다보기
지자체 MICE 유치전이 지난 호에 이어 더 뜨거워진다
한국 지방 도시들의 국제회의·기업행사 유치 경쟁은 지난 호에 이어 이번 호에도 계속되고 있으며, 오히려 열기가 한층 더 달아오르고 있다. 강릉은 컨벤션센터 개관을 앞두고 웰니스 체류형 팸투어와 서울 설명회를 잇달아 열었고, 안동은 참가자 1인당 인센티브를 앞세워 세계유산과 회의를 묶은 복합 모델을 확대한다. 제주는 중국 시장을 다시 두드리며 산업대전에서 551건의 상담 성과를 냈고, 포항은 관광·MICE 협회를 새로 정비하며 도약을 선언했다. 구미는 여름 축제들을 하나로 묶어 체류형 관광 이벤트로 키운다. 도시마다 방식은 다르지만 공통의 방향은 뚜렷하다 — 시설을 갖추는 경쟁이 사실상 끝나가면서, 이제 승부는 '누가 그 공간을 회의와 행사로 채우고 참가자를 더 오래 머물게 하는가'로 옮겨가고 있다.
현장에 주는 함의 — 여러 도시가 동시에 유치전에 뛰어든 지금, 인센티브 금액만으로 겨루면 예산 소모전으로 끝난다. 살아남는 도시는 '이 도시여야 하는 이유'를 회의 콘텐츠로 번역한 곳이다. 안동의 세계유산을 학술대회 주제와 엮거나, 강릉의 자연을 웰니스 프로그램으로 잇는 것처럼 도시 고유 자원을 행사 내용과 결합하는 쪽이 유리하다. 축제·행사 기획자라면 컨벤션센터를 채울 지역 학·협회·기업과의 상시 네트워크를 미리 구축하고, 참가자가 회의 전후로 지역에 더 머물게 하는 체류형 프로그램을 함께 설계하는 것이 남는 장사다. 유치는 시작일 뿐이고, 체류와 소비를 만들어내는 설계가 실제 지역 경제 효과를 좌우한다.
축제 푸드트럭에서 맥주를 판다 — 규제 완화가 바꾸는 축제 운영
축제 현장의 풍경을 바꿀 제도 변화가 시작됐다. 올해 초 식품 관련 규칙이 바뀌어 일반음식점으로 신고한 푸드트럭 영업이 가능해지면서, 서울시는 그동안 막혀 있던 축제장 푸드트럭의 주류 판매 기준을 손보기로 했다. 앞으로는 행사 주최 기관이 행사의 성격과 장소를 고려해 요청할 경우, 시와 자치구 행사에 참여한 푸드트럭에서도 맥주 같은 주류를 팔 수 있게 된다. 함께 발표된 규제 개선안에는 청년 취업 지원 연령을 29세에서 39세로 높이고, 공유오피스를 쓰는 소상공인도 경영 지원을 받을 수 있게 하는 내용이 담겼다. 축제 운영자에게 이 변화는 작지 않다. 여름밤 축제에서 음식과 함께 시원한 맥주 한 잔을 파는 것은 관객의 체류 시간과 소비를 동시에 끌어올리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기 때문이다. 규제 한 줄의 변화가 축제의 수익 구조와 분위기를 함께 바꾼다.
현장에 주는 함의 — 이 변화는 축제 기획자가 제도의 흐름을 얼마나 빨리 읽고 활용하는가에 따라 기회의 크기가 달라진다는 것을 보여준다. 푸드트럭 주류 판매가 열리면 야간 축제·미식 축제·음악 축제의 먹거리 구성과 수익 모델을 다시 짤 여지가 생긴다. 지역 양조장·수제맥주 업체와 손잡아 '이 축제에서만 마실 수 있는 맥주'를 기획하거나, 푸드트럭 운영자에게 명확한 주류 판매 가이드를 제시해 안전하게 판을 키우는 준비가 필요하다. 다만 주류가 들어오는 순간 안전·질서·미성년자 관리 같은 운영 부담도 함께 커지므로, 판매 구역과 시간을 설계에 미리 반영해야 한다. 제도가 열어준 틈을 먼저 준비한 축제가, 다음 여름 가장 붐비는 현장이 된다.
이천쌀문화축제, 부스·푸드트럭 73곳을 공개 모집한다
10월 이천에서 닷새간 열리는 제25회 쌀문화축제가 참가 부스와 푸드트럭을 공개 모집한다. 규모는 쌀 판매 9곳, 농·특산물 판매 20곳, 먹거리 판매 4곳, 체험·전시 30곳, 푸드트럭 10곳 등 모두 73곳이다. 25년째 이어진 이 축제가 여전히 지역 농업인·단체와 운영자에게 문을 활짝 열어 함께 채워가는 방식을 유지한다는 점이 눈에 띈다. 축제의 콘텐츠를 주최 측이 모두 기획해 내려주는 대신, 참가자를 공개 모집해 그들이 저마다의 특산물과 체험, 먹거리를 들고 들어오게 함으로써 축제는 매년 새로워진다. 지역의 1차 산업과 먹거리, 체험이 한 무대에서 만나 '쌀의 도시'라는 정체성을 다시 확인하는 장이 되는 것이다. 오래된 축제일수록 참여의 문을 얼마나 넓게 여느냐가 생명력을 좌우한다.
현장에 주는 함의 — 이천쌀문화축제의 공개 모집 방식은 지역 축제가 오래 살아남는 비결을 보여준다. 25회를 이어온 축제도 매년 같은 프로그램을 반복하면 관객과 참가자 모두 시들해진다. 반대로 부스·푸드트럭·체험 운영자를 공개 모집해 지역의 새로운 얼굴과 상품이 계속 유입되게 하면, 축제는 스스로 갱신하는 생태계가 된다. 다른 지역 축제도 콘텐츠를 위에서 채우려 애쓰기보다, 참여의 기준과 지원을 명확히 정비해 지역 농업인·소상공인·창작자가 자기 자원을 들고 들어올 통로를 넓히는 편이 낫다. 축제의 주인을 관객만이 아니라 참가자로까지 넓히는 설계가, 예산이 줄어든 시대에 축제를 지속시키는 힘이 된다.
편집장의 글
① 축제의 '주인'이 바뀌고 있다
이번 호를 관통하는 가장 큰 흐름은 축제를 누가 만드는가에 대한 답이 넓어지고 있다는 점이다. 지금까지 축제는 대체로 지자체와 전문 기획사의 몫이었다. 그런데 올여름의 장면들은 다르다. 맥주 브랜드가 자기 이름을 건 음악 축제를 열어 45초 만에 티켓을 매진시키고, 임팩트 투자자들이 영화제를 자본과 의제가 만나는 시장으로 읽으며, 도시는 관광과 영화와 AI를 하나의 산업으로 묶어 축제를 그 생태계의 입구로 세운다. 축제가 문화 행사라는 좁은 틀을 벗고, 브랜드에게는 마케팅 자산이, 투자자에게는 의제의 나침반이, 도시에게는 산업 전략의 무대가 되고 있는 것이다. 주인이 늘어난다는 것은 축제에 흘러들 자원과 목적이 다양해진다는 뜻이다. 지역 축제와 기획자에게 이 변화는 경쟁자가 늘었다는 위협인 동시에, 브랜드·투자자·도시를 대등한 파트너로 끌어들일 판이 커졌다는 기회다. 누가 축제의 주인이 될 수 있는지를 좁게 규정하지 않는 쪽이, 다음 시대의 축제를 만든다.
② 경쟁의 축이 '규모'에서 '무엇을 말하는가'로 옮겨간다
또 하나의 흐름은 축제들이 더 이상 크기로만 겨루지 않는다는 점이다. 두바이는 붐비는 음악·미식 시장 대신 코미디라는 장르에 도시의 다국적 정체성을 실었고, 영국의 록 축제는 순수성을 버리고 세대를 아우르는 즐거움을 택해 관객을 넓혔으며, 서울의 다학제 축제는 기후와 바다라는 무거운 주제를 과학·예술·정책의 여러 언어로 엮어 관객이 각자의 결로 들어서게 했다. 세 축제의 공통점은 '얼마나 큰가'가 아니라 '어떤 이야기와 형식으로 관객을 만나는가'로 승부한다는 데 있다. 규모의 경쟁은 예산이 많은 쪽이 이기지만, 이야기와 형식의 경쟁은 관점이 분명한 쪽이 이긴다. 우리 도시만이 잘할 수 있는 장르는 무엇인지, 어떤 관객을 어떤 방식으로 웃고 몰입하게 할 것인지에 대한 답을 가진 축제가 규모의 열세를 뒤집는다. 남들과 같은 장르에 더 큰 예산으로 뛰어드는 대신, 아직 붐비지 않은 질문을 먼저 던지는 축제가 오래 기억된다.
③ 한국 축제를 향해 — 유치를 넘어 '소유'로
한국의 현장은 여전히 '유치'의 언어에 머물러 있다. 도시들은 컨벤션센터를 짓고 인센티브를 걸어 남의 행사를 우리 도시로 데려오는 경쟁에 몰두한다. 물론 유치는 중요하고, 이 경쟁은 지난 호에 이어 더 뜨거워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 호가 보여준 세계의 흐름은 한발 더 나가 있다. 브랜드는 자기 축제를 소유하고, 도시는 축제를 산업 생태계로 엮으며, 영화제는 의제와 자본을 잇는 플랫폼이 되어 간다. 이제 한국 축제가 던져야 할 질문은 '어떻게 남의 행사를 데려올까'를 넘어 '우리만의 축제를 어떻게 소유하고 확장할까'다. 지역의 브랜드·특산물·이야기를 담은 축제를 직접 기획해 소유하고, 그것을 다른 산업과 연결하며, 나아가 다른 도시로 수출할 수 있는 콘텐츠로 키우는 것 — 그 길에서 축제는 한 해 예산을 쓰는 행사가 아니라, 도시가 오래 소유하는 자산이 된다. 여름의 끝에서 우리가 준비해야 할 것은 더 큰 행사가 아니라, 오래 살아남는 우리만의 이야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