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는 위기의 순간에 도움을 청할 이웃이 있습니까?
한 가지 질문을 던져본다. 당신에게는 위기가 닥쳤을 때 도움을 청할 이웃이 있는가. OECD가 회원국의 공동체 지수를 측정할 때 사용하는 핵심 질문이다. 단순해 보이지만, 이 질문 하나가 한 사회의 공동체 건강 상태를 꽤 정확하게 보여준다. 행복하다고 말하는 나라들 대부분에서는 90% 이상이 “있다”고 답한다. 한국은 74%에서 76% 사이를 오랫동안 맴돌고 있다. 메시지는 명확하다. 우리 사회의 공동체는 깨져 있고, 그 균열은 깊어지고 있다.
사실 우리에게는 축제의 DNA가 있었다. 아주 오래된, 촘촘했던 DNA다. 절기 행사, 명절 잔치, 당제, 동제, 굿, 마을이 함께하는 장례문화, 척사대회 등 지금의 읍·면보다 더 작은 마을 단위에서 사람들은 일 년 내내 공동체의 놀이와 의례를 경험해왔다. 함께 놀고, 함께 먹고, 함께 울었다. 그것이 공동체였고, 삶의 방식이었다. 그런데 1900년대 이후 식민시대와 한국전쟁, 근대화의 격류 속에서 공동체는 깨지고 공동체 문화는 사라졌다. 공동체가 해체되자 개인은 점점 더 파편화되고, 고립되고, 고독해졌다. 1인 가구가 2000년 15%에서 지금은 40%에 달한다.
‘자살 공화국’이라는 오명의 원인은 물론 복합적이다. 하지만 그 핵심에는 끊어진 공동체의 끈이 있다. 삶이 벼랑 끝에 몰린 순간에 손을 내밀 이웃이 없다는 것. 그 절망이 극단적 선택으로 이어지는 구조를 우리는 너무 오래 방치해왔다. 도움을 청할 곳이 있고, 기댈 수 있는 이웃이 있다는 안도감, 그것만으로도 사람은 버틸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작은 축제 이야기를 꺼낸다. 커뮤니티 페스티벌, 타운 페스티벌, 취향형 소규모 축제, 마을축제, 이름이야 뭐든 좋다. 대형 축제와는 비교도 안 되는 규모지만, 이 작은 공동체의 축제가 품은 가능성은 크다. 참여자 전원이 관객이 아니라 주인이 되는 경험, 보는 것이 아니라 함께 녹아드는 경험. 바로 그것이 우리 안에 잠들어 있는 축제의 DNA를 깨운다. 한국 사회는 그 DNA가 없는 게 아니라, 드러낼 기회를 오랫동안 찾지 못했을 뿐이다.
솔직히 말하자. 지금 한국에서 ‘축제’라 불리는 행사의 상당수는 축제가 아니다. 공연 무대이거나, 행정이 주도하는 시혜적 행사다. 판매를 위한 마켓이고, 홍보를 위한 이벤트이다. 시민은 관객석에 앉고, 무대 위에서 초청된 출연진이 흥을 대신 돋운다. 축제의 본질은 참여하는 모든 사람이 관여자가 되어 함께 만들어가는 데 있는데, 우리의 축제 현실은 그 본질에서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큰 도시 축제를 하루아침에 바꾸기는 어렵다. 예산, 행정, 평가 시스템이 촘촘하게 엮여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마을 단위, 커뮤니티 단위의 작은 축제는 다르다. 주민이 직접 기획하고, 자발적으로 참여하는 축제를 시도할 수 있다. 그런 경험이 한 번, 두 번 쌓이면서 시민들은 축제를 즐기는 방법을 익히고 함께 즐기는 습관을 들인다. 축제적 삶이란 거창한 구호가 아니라, 이웃과 함께 만들고 나누는 일상의 리듬이라는 걸 몸으로 알게 된다.
지역 소멸 문제도 빼놓을 수 없다. 사람들이 지역을 떠나는 이유를 우리는 일자리, 교육, 의료에서 찾는다. 틀린 말은 아니지만 그것만이 전부는 아니다. 조건이 완벽하지 않더라도 공동체의 끈이 살아 있는 지역은 소멸의 속도가 느리다. 정주 의식이란 결국 “여기 살 만하다”는 감각이고, 그 감각은 인프라가 아니라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와 교감에서 만들어진다. 작은 축제는 그 감각을 되살리는 현실적인 장치다.
마지막으로 하나 더. 한 지역의 잘 만들어진 축제는 그 지역의 단면이고 엑기스다. 그 지역을 잘라 속을 들여다볼 수 있다면 거기에 축제가 있다. 끊어질 듯한 전통이 축제를 통해 복원되고, 발굴되고, 기록된다. 할머니의 레시피가 먹거리가 되고, 잊혀가던 마을 놀이가 프로그램으로 되살아난다. 축제는 맛으로 기억된다고 하지 않던가. 그 동네 주민들만 알던 한 그릇의 이야기가 축제를 통해 세상 밖으로 나오고, 다음 세대로 전해질 가능성을 연다. 지역 문화의 계승은 결국 사람을 통해 이루어지고, 축제는 그 사람들을 한자리에 모으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이다.
인구는 줄고, 마을은 사라지고, 전통은 끊기고 있다. 이 모든 위기의 교차점에 작은 축제가 서 있다. 공동체를 잇고, 정주 의식을 높이고, 문화를 계승하는 가장 작지만 가장 확실한 출발점. 우리에게 필요한 건 수십억을 들인 거대한 무대가 아니다. 이웃과 눈을 맞추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작은 마당 하나, 그리고 그 마당에서 시작되는 첫 번째 축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