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곁에 ‘오래 가는 친구’ 하나 만들자는 이야기
나는 왜 축제지원센터를 10년 넘게 이야기하고 있는가.
축제를 만들어 본 사람들은 안다. 한 해의 축제가 끝나고 나면 무엇이 남는가. 정산 서류 한 뭉치, 다 쓴 명함, 그리고 내년에는 또 처음부터 시작해야 한다는 막막함. 우리는 매년 같은 자리에서 같은 고민을 반복한다. 좋은 무대 업체를 어디서 찾아야 할지, 자원활동가는 어떻게 모아야 할지, 작년에 쌓은 노하우는 담당자가 바뀌면서 어디로 사라졌는지. 축제는 분명히 늘어나는데, 축제를 만드는 일은 좀처럼 쉬워지지 않는다.
이유는 단순하다. 축제는 ‘예산’만으로 만들어지지 않기 때문이다. 콘텐츠, 인력, 장소, 마케팅, 기술, 안전, 법령, 관객 — 축제를 떠받치는 기둥은 한두 개가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모든 것을 3개월에서 길어야 6개월짜리 한시적 조직 하나에 몰아넣고 ‘알아서 잘해보라’고 한다. 사업비 예산을 따내기 위해 모든 에너지를 쓰고 나면, 정작 축제의 질을 좌우하는 나머지 영역은 ‘여력이 없는 영역’으로 방치된다. 이것이 우리가 매년 같은 자리를 맴도는 진짜 이유다.
지난 30년 동안 한국 축제는 양적으로 폭발했지만, 그 곁에 ‘축제들의 곁에서 길게 함께 가 줄 누군가’가 없었다. 평가는 지원 배제와 서열화에 치우쳐 있고, 검증된 무대·음향·조명 업체 정보는 각자도생으로 모은다. 30~40대 ‘허리 인력’은 처우 문제로 빠져나가고, 기업 후원으로 가는 길은 막혀 있고, 공공 예산은 해마다 줄어든다. 마을공동체 축제는 빠르게 늘어나는데, 이들에게 필요한 장소 협조나 안전 매뉴얼 하나 변변히 없다. 이 모든 빈 자리는 한 축제 조직이 메울 수 없고, 행정 단독으로도 메워지지 않는다. 행정은 정권과 단체장이 바뀔 때마다 흔들리고, 담당 공무원은 2년이면 자리를 옮긴다. 우리 곁에 정말 필요한 것은, 정치적 변동과 무관하게 10년 20년 같은 자리를 지키며 우리 사정을 잘 아는 ‘민간의, 비영리의, 축제를 잘 아는 오래 가는 친구’다.
해외는 이미 그렇게 가고 있다. 캐나다 온타리오의 FEO, 케벡의 EAQ, 오타와 페스티벌, 영국 에든버러의 페스티벌 에든버러, 호주의 페스티벌 시티 애들레이드, 아일랜드의 AOIFE, 유럽의 EFA, 일본의 ANJ, 브라질의 ABRAFIN, 칠레의 REDFECI까지 — 축제 선진 국가의 도시들은 예외 없이 ‘민간 비영리 중간조직’을 두고 있다.
이들은 축제를 직접 운영하지 않는다. 대신 검증된 우수 업체 디렉토리를 만들고, 평가 결과를 컨설팅으로 환류하고, 통합 홍보 채널을 운영하고, 자원활동가 풀을 공유하고, 정부에 정책을 제안하고, 국제 네트워크를 잇는다. 한 축제가 만들 수 없으나 모든 축제가 필요로 하는 ‘공동의 도서관’ 역할을 30~50년씩 묵묵히 해내고 있는 것이다.
‘한국축제지원센터’는 바로 그 빈 자리를 채우자는 제안이다. 평가가 아니라 성장형 컨설팅, 일방 통보가 아니라 소통, 한 해 행사가 아니라 10년 가는 인프라. 검증된 업체 정보, 신진 기획자 양성, 청년 일자리 매칭, 통합 홍보 플랫폼, 기업 후원 통로, 국제교류 창구 — 우리가 매년 “이게 있으면 좋을 텐데” 하면서도 누구도 책임지지 못했던 일들을, 정치적 독립성을 가진 비영리 조직 하나가 책임지고 쌓아 가자는 것이다. 그리고 그 곁에는 광역 단위에서 더 가까이 우리를 지원할 광역축제지원센터가 함께 서야 한다. 축제는 본질적으로 장소 기반의 일이고, 서울의 사정과 부산의 사정과 광주의 사정이 같을 수 없다. 전국 단위가 표준과 연구를 책임진다면, 광역 단위는 우리 동네 축제를 가장 가까이서 알아주는 친구가 되어야 한다.
오해는 하지 말자. 이건 ‘새로운 옥상옥을 하나 더 짓자’는 말이 아니다. 오히려 그 반대다. 지금까지 흩어져서 중복으로 낭비되던 평가, 홍보, 교육, 인력 양성의 비용을 한곳에 모아 더 적은 돈으로 더 큰 효과를 내자는 이야기다. 그리고 무엇보다, 매년 처음부터 다시 시작해야 했던 우리의 막막함을, 이제는 누군가의 어깨에 기대어 풀어 보자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를 10년을 해왔고, 서울시 조례에 ‘서울축제지원센터’를 넣게 했지만 결과적으로는 축제팀에 담당 전문인력 1명을 뽑아 놓고 축제팀 일을 시키는 것 외에는 아무 변화도 없었다. 결국 담당자가 수시로 바뀌는 공공에서는 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그래서, 우리가 직접 만드는 게 빠르겠구나, 다른 나라도 하는데 우리라고 못할 게 뭔가 하고 생각했던 것이다.
축제는 결국 사람이 사람에게 건네는 선물이다. 그 선물을 더 잘 만들기 위해서, 우리에게도 우리를 잘 아는 친구 하나쯤 있어야 하지 않겠는가. 한국축제지원센터는 화려한 사업이 아니라, 그 친구의 이름이다. 우리 곁에 그 친구를 만드는 일에, 동료 여러분의 손을 함께 보태 주시기를 부탁드린다. 이 일은 혼자서는 할 수 없는 일이기도 하고 혼자 해서도 안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