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는 인스턴트가 아니다
시간이 키우는 살아 있는 문화 유기체.
지난 주말, 내일의 축제감독이 될 청년들과 축제기획 워크숍을 했다. 축제를 개발하는 순서를 몇 번이고 강조했다. 대상지를 분석하고, 테마를 잡고, 지역의 욕구와 개발 목적을 먼저 정리하라고. 그 다음 전략과 추진체계, 사람과 재원을 짜고, 프로그램은 다음 차수 워크숍 때 해도 된다고. 그런데도 몇 팀은 프로그램부터 만들고 있었다.
이게 가장 흔한 함정이다. ‘콘텐츠 중심 사고’. 전문가도, 지자체도, 용역을 맡기는 쪽도 쉽게 빠진다. 재미있는 프로그램부터 떠올리고 싶은 마음은 이해한다. 하지만 순서가 틀리면 모든 게 어긋난다.
하나의 축제를 만드는 길은 멀다. 개발의 동기와 목표를 세우고, 지역의 비전과 알맞은 개최 장소를 찾는다. 인구를 조사하고 지역자원을 분석한다. 지역의 역사, 전통, 문화유산, 스토리, 사람, 환경, 생태까지 전부 축제자원이 된다.
주민을 인터뷰하고, 기존 행사를 조사하고, 수요를 설문한다. 지역 예술인과 전문가의 의견도 듣는다. 그 위에 전략과 추진체계, 인력 양성, 재원 조달이 얹힌다. 프로그램은 그 한참 뒤에 온다. 정리하고 제시할 것이 산더미다.
순서를 뒤집으면 어떻게 될까. 다 만들어 놓은 콘텐츠에 분석을 끼워 맞추게 된다. 그러면 지역이 원하지 않는 축제가 나온다. 시장·군수만 원하는 축제가 나올 수 있다. 오래 못 가거나, 어디서나 본 듯한 축제가 만들어진다. 지역과 무관한 축제가 나온다. 아주 작은 마을 축제도 마찬가지다. 분석 기간이 짧을 뿐, 거쳐야 할 과정은 똑같다.
기존 축제를 바꿔달라는 축제 리뉴얼 연구는 더 어렵다. 새로 만드는 것보다 힘들다. 지역 축제는 ‘지역 정치의 축소판’이라 부른다. 이해관계가 겹겹이 얽혀 있다. 연구보고서 한 건만으로는 절대 바뀌지 않는다. 그동안의 이해관계를 설득하고 조정하는 데 긴 시간이 든다. 그 사이 쏟아지는 민원을 행정이 감당하지 못한다. 참여자들이 함께 새로운 축제를 만들어가는 방식으로 연구를 바꿔도 결코 쉽지 않다.
지금도 한국에선 매년 200여 개의 축제가 사라지고 또 생긴다. 특히 지자체장 선거가 끝나면 한 무더기가 사라진다. 올해 지방선거로 미뤄둔 축제 중엔 영영 못 열리는 축제가 수도 없이 많을 것이다. 그리고 새 단체장의 한마디로 또 새 축제가 만들어진다.
하지만 축제는 그렇게 다룰 수 있는 게 아니다. 예산권을 쥐었다고 함부로 만들고 없애도 되는 상품이 아니다. 축제는 지역의 가장 공적인 문화자산이며 문화브랜드다. 인류가 만들어 온 가장 오래된 문화 제도이기도 하다. 인스턴트 음식 찍어내듯 만드는 건 지역에 도움이 될 수 없다.
축제는 살아 있는 문화유기체다. 종갓집 어머니들이 옹기에 장을 담가 오래 묵혀 최고의 음식을 만들어내듯, 축제도 익는 시간이 필요하다. 처음엔 아기를 키우듯 조심스럽게 돌봐야 한다. 잘 자란 축제 하나가 마을을, 지역 전체를 살린다. 그렇게 지역의 보물이 된다.
해외를 보면 답이 보인다. 스페인 부뇰의 ‘라 토마티나’는 1945년 어느 축제날 우연히 시작됐다. 청년들이 장난처럼 토마토를 던진 게 출발이었다. 한때 금지도 당했지만 주민들이 끝까지 지켜냈다. 80년이 흐른 지금, 인구 9천의 작은 마을이 세계인이 찾는 축제를 품었다. 독일 뮌헨의 옥토버페스트는 1810년 왕실 결혼 잔치에서 출발했다. 200년 넘게 천천히 자라, 이제는 도시의 정체성이자 650만 명이 찾는 세계 최대 축제가 됐다. 영국 에든버러 프린지는 1947년 초청받지 못한 공연팀 여덟이 변두리에서 연 무대였다. 그 작은 시작이 세계 최대 공연예술 축제로 컸다. 공통점은 하나, 오랜 시간과 정성이다.
우리는 결과만 본다. 거기까지 부어진 세월은 보지 않는다. 연구보고서엔 축제 개발이 단계별 표로 깔끔히 정리되어 있다. 하지만 진짜 축제는 그 표 안에서 살지 않는다. 지역에 뿌리내리고 살아가려면 시간과 정성이 든다. 그러니 함부로 바꾸지도, 함부로 만들지도 말자. 축제는 인스턴트 식품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