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감독의 축제이야기

우리는 모두 뒷것이다

무대 뒤에서 사람을 키운다는 것.

‘뒷것’이라는 말이 있다. 故 김민기 선생이 스스로를 그렇게 불렀다. 학전이라는 작은 무대에서 수많은 배우와 공연 전문가를 길러내고도, 정작 자신은 좀처럼 앞에 나서지 않았다. 무대 위 화려한 빛은 배우의 몫으로 두고, 그는 기꺼이 뒤에 섰다. 축제를 만드는 감독도, 기획자도, 스태프도 모두 그 뒷것이다.

나 역시 뒷것이고, 평생을 뒷것 키우는 일에 걸었다. 2000년 한겨레문화기획학교에서 문화기획자를 가르치기 시작했다. 대학과 대학원 강단에서도 십수 년을 보냈다. 한국문화기획학교라는 지붕 아래서 청년과 시민, 마을 축제 리더와 축제 인력을 키운 지 어느새 20년째다. 축제를 만드는 데 들인 시간만큼 사람을 키우는 일에 시간을 썼다. 그것이 내 일이었다.

그중 가장 잘한 일을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하나를 든다. ‘한강축제 청년 코디네이터’다. 한강몽땅을 이끈 7년 가운데 6년 동안, 해마다 30~40명의 청년을 뽑았다. 서울시의 지원으로 이들에게 월급을 주며 여덟 달, 길게는 열 달을 함께했다. 처음 88만 원이던 급여를 차츰 생활임금 수준까지 올렸다.

가르침은 강의로 그치지 않았다. 200시간이 넘는 수업에 기획 워크숍과 멘토링, 그리고 한강몽땅을 포함 서울의 대표 축제 네 개가 실제 축제의 현장 실습장이 되었다. 이 과정에 해마다 3~4대 1의 경쟁을 뚫어야 들어올 수 있었다. 6년간 203명의 청년이 이 과정을 수료했다. 코디 한 사람을 키우는 데 평균 3천만 원이 들어갔다.

결과는 사람으로 남았다. 수료생의 절반 가까이가 지금 문화재단과 축제조직, 기획 현장에서 일한다. 이들은 기수별로 지금도 모인다. 나는 해마다 한강 나이트워크에서 이 청년들과 15킬로미터를 함께 걷는다. 네 시간을 나란히 걸으며 청년들의 삶과 성장을 듣는다. 수료가 끝이 아니라, 평생 이어지는 약속이다. 이 한강몽땅과 코디네이터 과정이 나를 ‘몽감독’으로 만들었다. 총감독이라는 말보다 내가 몽감독이라는 호칭을 더 좋아하는 이유이다.

왜 이렇게까지 하느냐 묻는다면, 답은 분명하다. 축제도 문화기획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노하우도, 쓰라린 실패의 경험도 모두 사람에게 쌓인다. 건물도 예산도 사라지지만, 사람에게 새겨진 것은 사라지지 않는다. 사람이 가장 큰 자산이다.

그래서 지금도 멈추지 않는다. 감독들이 십시일반 자비를 모아 ‘내일의 축제감독 양성과정’을 열었다. 전국에서 서른 안팎의 청년 감독 20명을 4대 1 경쟁으로 뽑았다. 감독회의 감독 전원이 강사와 멘토로 나서고, 다섯 달 120시간 동안 자신의 경험과 비법을 숨김없이 건넨다. 감독들이 세상에서 받은 것을 다음 세대로 흘려보내는 일이다.

세계도 같은 길을 간다. 유럽축제협회가 만든 ‘페스티벌 아카데미’를 보자. 거장 감독들이 차세대 축제 매니저 수십 명을 이레 동안 1대 1로 이끈다. 성공담만이 아니라 실패까지 솔직하게 나눈다. 2015년에는 그 과정이 우리 광주에서도 열렸다. 사람을 잇는 일에, 세계는 이미 투자하고 있다.

그런데 우리 현실은 어떤가. 지역 문화재단이 스무 시간 남짓 강의 몇 개를 묶어 놓고 인력을 키웠다고 말한다. 그렇게는 사람이 자라지 않는다. 공들인 시간과 그 밀도만큼 사람은 성장한다. 그리고 이 일은 행정과 공공에만 맡길 수 없다. 사람의 능력은 숫자로 쉽게 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이 교육과정을 이끌고 있는 (사)한국문화기획학교가 몇 년 후 축제전문대학원이 되어 인력양성의 전통을 미래로 더 힘있게 이어가기를 바란다. 민간의 힘만으로는 벅찬 꿈이다. 그래도 멈추지 않는다. 내일의 감독학교도 이 과정의 하나이다.

김민기 선생이 그러했듯, 뒷것은 사람을 남긴다. 무대 위 박수가 잦아들고 조명이 꺼져도, 사람은 남는다. 그것이 축제가 끝내 남기는, 단 하나의 진짜 유산이다.

윤성진 드림 · 축제감독 · 문화학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