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 시대, 왜 '진짜 축제'가 더 중요해지는가
며칠 전 구글 딥마인드 연구진이 「From AGI to ASI」라는 보고서를 냈다. 인간 수준의 인공지능을 넘어 인류 전체의 지력을 능가하는 초지능으로 가는 길을 짚은 글이다. 그런데 이 첨단의 보고서를 읽으며 내가 떠올린 것은, 그 반대편에 있는 것처럼 보이는 가장 아날로그적인 문화활동이자 가장 오래된 문화적 제도인 축제였다.
보고서가 짚은 디지털 지능의 본질은 '무한 복제'다. AI는 콘텐츠를 인간이 미처 소비하지 못할 속도로 무한히 찍어낸다. 여기에 가장 단순한 경제 원리가 작동한다. 무한히 공급되는 것의 값은 0으로 수렴하게 된다. AI콘텐츠의 가치는 사라지지 않고 이동한다. 복제 가능한 것의 값이 점점 떨어질수록, 복제할 수 없는 것의 값은 점점 올라갈 것이다.
축제의 본질은 온통 복제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 사람들과, 그 장소에서, 그 한 번뿐인 시간에 일어난다는 사실. 화면 너머가 아니라 같은 공간에서 함께 숨 쉰다는 현장성. 정보의 전달이 아니라 정서의 교감을 전제로 한 직접적 경험. 디지털이 '같은 것을 무한히'라면, 축제는 '단 한 번, 여기서만'이다. 둘은 정확히 반대편에 서 있다.
축제의 특별함은 다른 예술체험과 견주어도 분명하다. 음악, 미술, 연극 같은 단일 장르는 대개 창작자가 만든 작품을 수용자가 관람하는 일방향 구조다. 닫힌 공연장에서 무대와 객석은 분리되어 있고, 관객은 어둠 속에서 완성된 작품을 감상한다. 콘서트의 감동이 크더라도 그 본질은 받아들이는 행위다. 그러나 축제에서 시민은 객석에 앉아 관람만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자리에 있음으로써 축제를 함께 만드는 사람이다. 물론, 공연도 관객이 있음으로 완성되는 것이지만, 관객 없는 연주도 녹음으로 남길 수 있는 창작물이 될 수 있다면, 사람 없는 축제는 아예 성립할 수가 없다. 축제에서 시민은 구경꾼이 아니라 공동 창작자가 된다. 주인의식과 주체성, 수요자 주도성이란 바로 이 구조를 말한다.
여기에 축제만의 또 다른 힘, 일탈이 있다. 축제는 사회적으로 허용된 일탈로 정의될 수 있다. 일상의 질서와 역할이 잠시 멈추는 문턱의 시간이다. 위계와 규범이 풀리고 사람들이 평등하게 뒤섞인다. 공연장이 일상의 예절을 강화한다면, 축제는 일상을 잠시 풀어놓는다. 더 놀라운 것은 불변성이다. 음악은 악보에서 음반으로, 다시 디지털 스트리밍으로 존재 방식을 바꿔 왔고 미술도 동굴벽화에서 캔버스를 거쳐 디지털 NFC까지 그 형식을 갈아탔다. 그러나 사람들이 한 곳에 모여 일상을 멈추고 함께 무언가를 기리며 자신의 몸으로 참여한다는 축제의 기본 요소는, 원시의 모닥불 마당에서부터 오늘의 광장까지 단 한 번도 바뀌지 않았다. 매체가 아무리 바뀌어도 직접적 참여라는 본질이 변하지 않은 유일한 문화경험. 이것이 축제가 가장 오래된 '원본'인 이유다.
인간의 소통은 늘 압축을 거친다. SNS와 미디어가 매개하는 경험은 현장을 영상으로 한 번, 화면으로 다시 한 번, 두 번 압축한다. 그 사이 많은 것이 떨어져 나간다. 그러나 현장의 대면 경험은 압축되지 않은 원본이다. 함성의 진동, 군중의 밀도, 눈맞춤, 팀이 되어 함께 차오르는 호흡—언어로 옮겨지지 않는 이 경험들이 통째로 몸에 새겨진다. 복제된 콘텐츠가 결코 주지 못하는 깊은 각인이 여기서 온다. 이 원본성이 인류가 원시사회로부터 한 번도 멈추지 않고 축제를 이어온 이유다.
그래서 나는 AI 시대에 축제의 가치가 떨어지기는커녕 오히려 높아진다고 확신한다. 무한 복제의 세계에서 축제는 복제 불가능한 희소성을 지키고, 원본의 경험으로 깊은 각인을 만들며, 일이 더는 삶의 의미를 채워주지 못하는 시대에 의미와 공동체를 경험하며 인간으로서 존재감을 확인하는 가장 오래된 인프라로 그 지위를 유지할 것이고 더욱 주목받을 것이다.
다만 결정적인 단서가 있다. 이 가치는 오직 '진짜 축제'에만 성립한다. 행정이 정치적 필요에 떠밀려 인스턴트 음식 찍어내듯 단기간에 대행사에 맡겨 양산하는 축제가 있다. 그 빠른 속도, 어디서나 똑같은 복제성, 동원된 주민의 무감각한 참여, 해마다 나아지지 못하고 평준화되는 축제, 축적되지 않는 노하우. 이런 축제는 자기 강점을 버리고 AI가 압도하는 복제의 게임판으로 제 발로 걸어 들어가는 것이다. 원본이어야 할 축제가 복제품을 흉내 내는 순간, 살아남을 자격을 잃는다.
그러므로 진짜 축제가 중요한 시대가 되었다. 무엇이 진짜인지 가려내는 시민들의 분별력, 예술의 가치와 문화의 결을 이해하고 그 진짜를 빚어내는 기획자와 예술가들의 안목, 그리고 시민이 동원의 대상이 아니라 자율적이고 능동적인 주체로 참여하는 과정. 이 세 가지에 새로운 주목이 필요하다. 축제의 힘은 무대 위 스펙터클의 크기가 아니라, 시민이 그 시간의 주인이 되는 깊이에서 나온다.
결국 이 시대 축제기획자와 문화정책 전문가, 문화행정가와 예술감독들이 함께 고민할 일은 분명하다. 진짜 축제가 자라날 구조를 설계하고, 그 제도를 훼손하지 않는 추진체계를 바로 세우는 것이다. AI가 모든 것을 복제하는 시대일수록, 우리는 가장 원시적이고 가장 인간적인 그 한 번뿐인 경험을 더 정성껏 지켜야 한다.
가장 오래된 것이 가장 미래적인 것이 되는 역설. 진짜 축제는 그 한가운데 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