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에는 매년 개최지가 바뀌는 국가 축제가 있다. 대만 등불축제는 교통부 산하 관광서(Tourism Administration)가 주관하는 연례 국가 행사로, 정월대보름 등불 풍습을 1990년에 대형 관광 이벤트로 키운 것이 시작이다. 2001년부터는 이름을 '대만 등불축제'로 바꾸고 매년 다른 지방자치단체가 돌아가며 개최지를 맡는 방식으로 운영해 왔다.
한국 축제 종사자에게 이 사례가 흥미로운 이유는 등불이 예뻐서가 아니다. 하나의 브랜드를 여러 지역이 나눠 쓰는 구조가 어떻게 30년 넘게 굴러가는지, 그리고 그 구조가 성공했을 때 어떤 종류의 실패가 따라오는지를 같은 해에 함께 보여주기 때문이다.
브랜드는 중앙이 쌓고, 무대는 지역이 돌아가며 맡는다
대만 등불축제의 운영 골격은 단순하다. 브랜드·예산·총괄은 중앙(관광서)이 쥐고, 개최지는 매년 공모·선정을 통해 지자체가 유치한다. 개최지가 정해지면 그 지역의 자연·산업·문화가 그해 축제의 주제가 된다.
| 회차 | 개최지 | 특징 |
|---|---|---|
| 2025 | 타오위안시 | 직전 회차 — 2026년 자이현이 경제효과에서 이를 넘어선 것으로 집계 |
| 2026 | 자이현 (타이바오) | 3월 3~15일, 13일간. 세 번째 유치(2007·2018·2026) |
| 2027 | 먀오리현 | 2월 20일~3월 7일 예정, 주제는 '느린 하카(客家)의 삶' |
2026년 메인 등의 제목은 "알리산, 빛 안개에 감싸이다"였다. 자이현의 대표 산지인 알리산을 그해의 얼굴로 삼은 것이다. 2027년 먀오리현은 하카 문화를 주제로 잡았다. 브랜드 이름은 30년째 같지만, 콘텐츠는 매년 그 지역의 것으로 갈아 끼운다.
이 방식의 장점은 뚜렷하다. 첫째, 개별 지자체가 단독으로는 만들 수 없는 국제적 인지도를 축제 이름 하나로 빌려 쓴다. 2026년 자이현에는 해외 언론·인플루언서 200명 이상이 다녀갔다. 둘째, 대형 행사 운영 경험이 전국으로 이전된다 — 순회 개최를 시작할 때 대만 정부가 내건 명분이 정확히 이것이었다.
한국 축제 현장에 주는 함의 — 우리는 지자체마다 '우리 축제'를 새로 만드는 데 익숙하다. 그래서 이름이 1,200개 넘게 생기고, 그중 국제적으로 아는 이름은 손에 꼽힌다. 대만 모델은 반대 방향이다 — 이름 하나를 국가가 30년 키우고, 지역은 그 이름을 3년에 한 번 빌려 쓴다. 문체부가 '글로벌축제'를 정점에 두고 인접 지역· 동일 주제를 묶어 지원하기로 한 최근 방향과 겹쳐 읽을 만하다. 당장 순회 개최를 도입하기 어렵더라도, 광역 단위에서 '돌아가며 여는 대표 축제' 하나를 설계해 브랜드는 광역이 쌓고 개최는 기초가 나눠 맡는 방식은 지금도 시도할 수 있다. 매년 원점에서 시작하는 축제와, 30년째 이름값이 쌓이는 축제의 격차는 결국 누가 브랜드의 주인인가에서 갈린다.
숫자 — 13일에 1,000만 명, 그리고 기대치와의 거리
관광서 발표에 따르면 2026년 자이현 회차는 13일간 1,000만 명 이상이 다녀갔다. 개최 전 현지 보도는 2,000만 명까지 내다봤으니, 최종 집계는 사전 기대치의 절반 수준이었던 셈이다. 그럼에도 규모는 압도적이다.
| 항목 | 수치 |
|---|---|
| 총 방문객 | 1,000만 명 이상 (관광서 발표) |
| 개최 기간 | 13일 (2026.3.3~3.15) |
| 경제효과 | 270억 대만달러(약 8억 2,800만 달러) 기대 — 주최 측 추산 |
| 해외 미디어·인플루언서 | 200명 이상 |
| 첫 주말 하루 방문객 | 200만 명 이상(추산) |
개최 기간 중 한국·일본·호주·인도 등에서 방문객이 몰리며 대한항공·캐세이퍼시픽· 중화항공 노선이 매진되고 자이현 숙박은 사실상 만실이 됐다는 보도가 나왔다. 겨울 비수기에 열리는 축제가 국제선 수요를 직접 만들어낸다는 점이 이 축제의 가장 큰 자산이다.
주목할 것은 기대치와 실적의 간극을 대만 관광서가 굳이 감추지 않았다는 점이다. 발표는 '1,000만 명 이상'이라는 실제 집계를 그대로 냈다. 부풀린 사전 목표가 아니라 집계된 실적으로 다음 회차를 설득하는 편이 결국 축제 브랜드를 오래 지킨다.
성공의 청구서 — 셔틀 대기 1만 명
2026년 3월 8일 토요일, 자이 고속철도역에는 셔틀버스를 기다리는 줄에 1만 명 가까이가 늘어섰다. 주최 측이 놀고 있었던 것이 아니다. 그날 투입된 자원은 이랬다.
- 셔틀버스 50대 이상
- 현장 운영 인력 1,286명
- 주차면 1만 2,000면 — 전량 만석
그럼에도 하루 200만 명 규모의 인파 앞에서 수송 능력이 병목이 됐다. 인기 테마존 (슈퍼마리오 존 등)과 굿즈 판매대는 25분 이상 대기가 예사였다. 결국 자이현 현장인 웡창량 현수가 페이스북을 통해 "다른 날짜에 와 달라"고 직접 호소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폐막 발표에서 관광서가 "철도·고속버스 사업자 간 조율로 관광객이 안전하게 귀가할 수 있도록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가 협력했다"는 점을 굳이 성과로 강조한 것도 이 맥락에서 읽힌다. 13일 내내 가장 어려웠던 과제가 '보여주기'가 아니라 '실어 나르기'였다는 자백에 가깝다.
한국 축제 현장에 주는 함의 — 이 대목은 우리에게 가장 실무적인 교훈이다. 축제의 실질 수용력은 행사장 면적이 아니라 '들어오고 나가는 능력'으로 결정된다. 셔틀 50대와 주차 1만 2,000면을 갖추고도 무너졌다면, 계산해야 할 것은 총량이 아니라 피크 시간대의 시간당 처리량이다. ① 최대 혼잡 2~3시간 동안 역·주차장에서 행사장까지 시간당 몇 명을 옮길 수 있는지 먼저 계산하고, ② 그 숫자를 넘는 인파가 예상되면 입장 분산(요일·시간대별 프로그램 배치, 사전 예약, 실시간 혼잡도 공개) 으로 수요 자체를 흩어야 한다. 마침 행정안전부도 올여름 축제·행사 25곳을 다중운집 인파 중점관리 대상으로 지정하고 인파밀집 사전조사 → 안전관리계획 → 사전점검 → 현장 모니터링의 4단계 체계를 점검했다. 대만의 사례는 그 체계가 왜 '사전조사'에서 시작하는지를 보여준다 — 성공한 홍보가 만든 인파를, 준비되지 않은 수송이 사고로 바꾼다. 그리고 마지막 안전판은 자이현이 보여준 것처럼 주최 측이 "오늘은 오지 마세요"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다.
출처
- Tourism Administration, MOTC (Taiwan) — The 2026 Taiwan Lantern Festival Concludes Successfully, Drawing More than 10 Million Visitors
- Taiwan News — Chiayi Lantern Festival overwhelmed by crowds as nearly 10,000 line up for shuttles (2026.3.8)
- Taipei Times — National lantern festival to start tonight (2026.3.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