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 꺼진 극장의 붉은 객석
※ 실제 행사 사진이 아니라 주제를 환기하는 대표 이미지입니다.

미국 유타의 작은 스키 마을 파크시티. 상주 인구가 8천 명 남짓한 이 도시가 매년 1월이면 세계 독립영화의 수도가 된다. 선댄스 영화제는 배우 로버트 레드포드가 세운 비영리 선댄스 인스티튜트가 1985년부터 운영해 온 독립영화 축제로, 무명 감독의 데뷔작이 이곳에서 상영된 뒤 세계로 나가는 관문 역할을 40년간 해 왔다.

그런데 선댄스가 축제 운영자에게 주는 교훈은 '유명한 영화제'라는 사실에 있지 않다. 비수기 소도시에 어떻게 세계적 경제효과를 만들었는가, 열흘짜리 행사를 어떻게 1년 내내 도는 조직으로 만들었는가, 그리고 지금 왜 40년 살던 도시를 떠나는가에 있다.

숫자로 보는 선댄스 — 겨울 비수기에 만든 2억 달러

선댄스의 위력은 '규모'가 아니라 '밀도'다. 스키 시즌이라 원래도 붐비는 때가 아니라, 1월 하순의 짧은 열흘에 관객·업계·미디어를 응축시킨다.

항목수치
2025년 경제효과1억 9,600만 달러(역대 최고, 분석기관 집계)
2025년 현장 관객8만 5,000명 이상
2024년 총지출1억 3,830만 달러 (숙박 3,870만 · 레크리에이션/엔터 3,790만)

인구 8천 명 도시에 한 행사가 2억 달러에 육박하는 지출을 끌어온다는 것은, 축제가 지역경제의 계절 하나를 통째로 책임진다는 뜻이다. 숙박이 지출의 가장 큰 몫이라는 점도 눈여겨볼 대목이다 — 사람을 '오게' 하는 것보다 '자게' 하는 것이 지역에 돈을 남긴다.

축제가 아니라 '상시 인큐베이터' — 비영리 인스티튜트 모델

선댄스가 오래 버틴 핵심은 운영 주체가 한 해짜리 이벤트 조직이 아니라 상시 비영리 기관이라는 데 있다. 선댄스 인스티튜트는 영화제가 열리지 않는 나머지 열한 달 동안 감독·각본가를 위한 랩(lab)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신인 창작자를 몇 달에 걸쳐 멘토링해 작품을 키우고, 그 작품이 이듬해 영화제 무대에 오른다.

즉 영화제는 1년짜리 파이프라인의 마지막 열흘일 뿐이다. 축제가 콘텐츠를 '섭외'하는 것이 아니라 직접 길러내는 구조이기 때문에, 매년 프로그램의 고유성과 화제성이 조직 내부에서 재생산된다. 이것이 상업 영화제와 선댄스를 가르는 지점이다.

한국 축제 현장에 주는 함의 — 우리 축제 대부분은 '섭외형'이다. 매년 예산으로 라인업을 사 오고, 행사가 끝나면 조직도 흩어진다. 선댄스가 보여주는 것은 축제를 상시 기관이 운영할 때 생기는 복리 효과다. 연중 랩·아카이브·창작지원 같은 '축제 바깥의 열한 달'을 하나라도 쥐고 있으면, 축제는 매년 원점에서 시작하지 않는다. 지역 창작자를 길러 그 결과물을 무대에 올리는 작은 인큐베이터 하나가, 10년 뒤 '남의 라인업'이 아니라 '우리만의 라인업'을 만든다.

40년 만의 이별 — 개최지 이전이 남긴 교훈

2027년, 선댄스는 40여 년을 함께한 파크시티를 떠나 콜로라도 볼더로 옮겨간다. 10년 계약이며, 2026년 1월 22일~2월 1일 개최분이 파크시티의 마지막 회차다. 볼더는 파크시티보다 도시 규모가 약 10배 크고 극장·공연장이 많아, 그동안 소도시가 감당하기 버거웠던 관객 수용력 문제를 풀 수 있는 곳으로 꼽혔다. 볼더 쪽은 10년간 약 3,400만 달러 규모의 세액공제 등 유치 인센티브를 제시했다.

파크시티로서는 매년 겨울 들어오던 수천만 달러가 사라지는 일이다. 지역 언론은 상실을 인정하면서도 "무언가가 선댄스의 자리를 대체할 것"이라고 전했다. 이 이별이 던지는 질문은 두 가지다. 하나는 한 축제에 지역경제가 과의존할 때의 리스크, 다른 하나는 성공한 축제일수록 개최지에 대해 갖게 되는 협상력이다. 선댄스는 관객 수용력이라는 운영 한계를 이유로 더 큰 도시를 택했고, 도시들은 돈을 걸고 유치 경쟁을 벌였다.

한국 축제 현장에 주는 함의 — 이 사례는 개최지(지자체)와 축제 모두에게 거울이다. 지자체 입장에서는 '우리 지역의 대표 축제 하나'에 관광·숙박 경제를 몰아두는 것이 얼마나 취약한 구조인가를 묻게 한다. 축제가 떠나거나 규모가 꺾이면 대체재가 없다. 반대로 축제 조직 입장에서는, 관객이 늘수록 베뉴·숙박·교통 같은 수용력이 곧 협상 카드가 된다는 점이다. 선댄스가 도시를 옮길 수 있었던 힘은 브랜드가 아니라 '어디서든 유치하고 싶어 하는 수요'였다. 우리 축제가 성장한다면, 개최지와의 관계를 호혜적 파트너십(수용력 투자 ↔ 장기 개최 약정)으로 문서화해 두는 편이 양쪽 모두를 지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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