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를 새로 만들 때 가장 먼저 드는 비용은 대개 무대다. 구조물을 세우고, 조명을 걸고, 행사가 끝나면 해체한다. 사흘을 위해 지은 것이 사흘 만에 사라진다.
서울라이트 DDP는 그 순서를 뒤집었다. 무대를 짓는 대신, 2014년부터 그 자리에 서 있던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의 곡면 외벽을 그대로 화면으로 썼다. 자하 하디드가 설계한 이 비정형 건축물의 파사드는 폭 222m. 서울시와 서울디자인재단은 이 면 하나를 '세계 최대 비정형 건축물 3D 맵핑 디스플레이'로 기네스 세계기록에 올렸고, iF·레드닷·IDEA 등 이른바 세계 3대 디자인 어워드도 받았다.
그리고 2025년, 이 벽 한 장에 192만 명이 모였다. 전년 138만 명 대비 약 40% 증가한 역대 최다다.
한 번 지은 것을 세 번 쓴다
서울라이트 DDP는 2019년 겨울 한 차례로 시작했다. 이후 가을·겨울 연 2회로 늘었고, 2024년부터는 여름·가을·겨울 연 3회 체제로 자리 잡았다. 2025년 시즌별 관객은 여름 약 51만 명, 가을 약 61만 명, 겨울 약 80만 명 — 합쳐 192만 명이다.
주목할 점은 회차를 늘리는 데 새로운 하드웨어가 거의 들지 않았다는 것이다. 프로젝터와 제어 시스템, 그리고 벽은 그대로다. 바뀌는 것은 위에 트는 영상뿐이다. 같은 인프라의 감가상각을 세 회차로 나누는 순간, 회당 고정비는 3분의 1이 된다.
| 구분 | 통상적 축제 | 서울라이트 DDP |
|---|---|---|
| 무대 | 회차마다 가설·해체 | 기존 건축물 외벽(상설) |
| 회차 | 연 1회, 2~3일 | 연 3회, 각 11~14일 |
| 교체 대상 | 무대·동선·시설 전반 | 상영 콘텐츠만 |
| 입장 | 유료 티켓 중심 | 전면 무료 |
콘텐츠는 만들지 않고 데려온다
두 번째 설계는 제작을 외부화한 것이다. 2025년 가을 편 'EVERFLOW : 움직이는 장(場)' (8월 28일~9월 7일, 매일 20:00~22:00, 무료)에는 프랑스 작가 로랑 그라소가 우주 데이터와 역사 이미지를 결합한 대형 미디어파사드 작품을, 대만 작가 아카 창이 레이저 인스톨레이션을, 국내 스튜디오 디스트릭트가 몰입형 시리즈를 올렸다. 협찬사로는 오픈AI가 참여해 협업 작품이 함께 걸렸다.
12월의 겨울 편 'EVERGLOW : 영원히 빛나는 장(場)'(12월 18~31일)에서는 방식이 또 달라졌다. 서울시 캐릭터 해치와 라인프렌즈 같은 기존 IP를 끌어와 6개 작품과 크리스마스 타운· 루미나리에로 확장했다. 축제가 직접 창작한 것이 아니라, 이미 사랑받는 자산을 빌려 온 것이다.
작가 커미션, 기업 협찬, IP 협업 — 세 경로 모두 사무국이 콘텐츠를 처음부터 만들지 않는 방식이다. 사무국이 하는 일은 벽을 제공하고 조율하는 것에 가깝다.
무료로 열고, 상권에서 회수한다
서울라이트 DDP는 입장료가 없다. 그렇다면 무엇으로 성과를 증명하는가.
서울시가 내놓은 답은 야간 유동인구였다. 행사 기간 DDP 인근 상권의 야간 유동인구는 동시간대 평균 대비 559.2% 증가했다. 12월 31일 카운트다운 행사 하루에만 약 8만 7천 명이 모였다. 관객은 표를 사지 않았지만, 밤 8시에 동대문에 있었고 그 시간에 무언가를 먹고 샀다.
이 숫자는 예산 심의에서 티켓 매출을 대신하는 근거가 된다. 무료 개방은 수익을 포기한 결정이 아니라, 회수 지점을 티켓에서 상권으로 옮긴 설계다. 다만 그 이동이 성립하려면 효과를 측정할 수 있어야 한다 — 유동인구 데이터가 그 자리를 채웠다.
현장 밖의 관객까지 센다
마지막 층은 중계다. 서울라이트 DDP는 유튜브 라이브로 전 세계에 송출됐고, 미국·일본· 태국 등 6개국 4천만 명에게 알림이 발송됐다. 뉴욕 타임스스퀘어에는 광고가 걸렸다. 현장에 온 192만 명과 별개로, 오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도달한 것이다.
미디어파사드는 이 점에서 유리하다. 결과물이 애초에 영상이기 때문에, 그대로 온라인 콘텐츠가 된다. 무대 공연은 중계하면 절반이 사라지지만, 빛으로 그린 그림은 화면에서도 거의 그대로 남는다.
한국 축제 현장에 주는 함의 — 서울라이트 DDP의 교훈은 "우리도 프로젝터를 사자"가 아니다. 네 가지를 순서대로 보라. 첫째, 이미 있는 면(面)을 찾으라. 시청사·문화예술회관 벽면, 읍성 성벽, 저수지 제방, 폐산업시설 외벽 — 무대를 세우지 않아도 되는 자리가 지역마다 있다. 자산을 새로 만들 것이 아니라, 놀고 있는 자산에 콘텐츠를 얹는 발상이다. 둘째, 한 번 들인 것을 여러 번 쓰라. 연 1회 사흘짜리 행사는 장비 단가가 가장 비싼 구조다. 같은 설비를 계절마다 다른 콘텐츠로 돌리면 회당 고정비가 내려가고, 관객에게는 '가끔 열리는 행사'가 아니라 '언제 가도 뭔가 있는 곳'이 된다. 셋째, 콘텐츠를 직접 만들지 말고 데려오라. 작가 커미션·기업 협찬·기존 IP 협업은 모두 제작비를 밖으로 내보내는 통로다. 사무국의 역할은 창작자가 아니라 편성자에 가까워진다. 넷째, 무료로 열 거라면 대신 잴 것을 정해두라. 티켓 매출이 없으면 성과를 증명할 숫자도 없다. 유동인구·체류시간·인근 카드 매출처럼 사후에 확보 가능한 지표를 사전에 정하고 측정 설계를 미리 해두는 것이, 무료 개방을 지속시키는 유일한 방법이다.
출처
- 국제 축제로 성장한 서울라이트 DDP, 2025년 192만명 찾았다 (경향신문) — 2025년 총 192만 명(전년 138만), 겨울 80만 명, 카운트다운 8만 7천 명, 222m 파사드, 유튜브 중계·6개국 4천만 명
- 기네스북 오른 서울라이트 DDP⋯192만 명 마음 사로잡았다 (이투데이) — 야간 유동인구 559.2% 증가, 기네스 세계기록('세계 최대 비정형 건축물 3D 맵핑 디스플레이'), iF·레드닷·IDEA 수상
- 서울라이트 DDP 2025 가을 (서울특별시 내 손안에 서울) — 'EVERFLOW' 주제·기간(8/28~9/7)·무료 관람, 로랑 그라소·아카 창·디스트릭트 참여, 오픈AI 협찬
- 서울라이트 DDP 2025 겨울(서울윈터페스타) (서울특별시 내 손안에 서울) — 'EVERGLOW' 주제·기간(12/18~31)·무료, 해치·라인프렌즈 IP 협업, 222m 세계 최대 비정형 미디어파사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