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스페인 부뇰에서 라 토마티나가 열린다. 매년 8월 마지막 수요일, 2026년은 바로 오늘 8월 26일이다. 한 시간 동안 100톤이 넘는 토마토가 좁은 골목에 뿌려지고, 정오의 신호와 함께 시작해 한 시간 뒤 신호와 함께 끝난다.
한국에서 이 축제는 대개 '기이한 놀이'로 소개된다. 그러나 축제 실무자가 봐야 할 대목은 토마토가 아니라 2013년에 이 축제가 내린 결정이다. 그해 부뇰은 68년 동안 공짜였던 축제에 표를 붙였다. 이유는 돈이 아니라 사람이었다.
인구 9천 명 마을에 5만 명이 왔다
부뇰은 발렌시아에서 서쪽으로 40분 거리에 있는 인구 약 9,000명의 소도시다. 축제의 시작은 1945년의 우발적인 사건이었다. 마을 행진 중 젊은이들이 서로에게 토마토를 던진 것이 전부였고, 이듬해 몇몇이 집에서 토마토를 가져와 같은 일을 되풀이하면서 관행이 됐다. 1950년대 초 프랑코 정권이 금지했지만, 1957년 주민들이 '토마토 장례식'을 치르는 시위를 벌인 끝에 공식 축제로 되살아났다. 2002년에는 스페인 관광당국이 국제관광축제(Fiesta de Interés Turístico Internacional)로 지정했다.
문제는 그 다음에 생겼다. 저비용 항공과 소셜미디어를 타고 참가자가 급격히 늘어 2012년 무렵에는 5만 명 이상이 같은 시간, 같은 골목에 들어찼다. 인구의 다섯 배가 넘는 인파가 폭 몇 미터짜리 구시가 골목을 채운 것이다. 축제가 커졌다기보다 마을이 감당할 수 있는 한계를 넘은 것에 가까웠다.
2013년 — 68년 만에 표를 팔기 시작했다
부뇰이 택한 해법은 세 가지 중 하나였다. 축제를 줄이거나, 안전 인력을 늘리거나, 들어오는 사람 수 자체를 잠그거나. 마을은 세 번째를 택했다.
2013년부터 라 토마티나는 유료 입장·정원제로 바뀌었다. 정원은 약 2만 명으로 고정됐고, 표가 없으면 전투 구역에 들어갈 수 없다. 2026년 기준 기본 입장권은 15유로대부터 시작하고, 발렌시아 출발 버스를 묶은 패키지는 50유로, 바르셀로나·마드리드·알리칸테 등 원거리 출발 패키지는 105~110유로 선이다. 사물함·파에야·애프터파티 같은 선택 항목이 그 위에 붙는다.
이 결정이 실무적으로 만들어낸 변화는 티켓 수입보다 분모의 확정에 있다.
| 구분 | 2012년 이전 | 2013년 이후 |
|---|---|---|
| 입장 | 무료·무제한 | 유료·정원제 |
| 참가 인원 | 5만 명 이상(추정) | 약 2만 명 상한 |
| 인원 예측 | 불가능 | 티켓 판매량으로 사전 확정 |
| 안전 계획 | 사후 대응 | 확정 인원 기준 사전 설계 |
| 재원 | 마을 예산 | 티켓 수입 + 마을 예산 |
인원이 확정되면 화장실 개수도, 의료진 배치도, 셔틀 대수도, 청소 인력도 전부 계산할 수 있는 값이 된다. 유료화는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계산을 가능하게 만드는 장치였다.
2025년 80주년 행사에는 50개국 이상에서 2만 2천여 명이 참가해 약 120톤의 토마토를 던졌다. 정원제를 도입한 지 12년이 지나도록 축제의 국제적 위상은 줄지 않았다.
한 시간을 위해 설계된 규칙
라 토마티나의 안전 관리는 장비보다 규칙의 단순함에 기대고 있다. 부뇰 시의회가 공지하는 수칙은 아홉 항목 안팎이고, 핵심은 외우기 쉬운 몇 줄로 정리된다.
- 토마토는 반드시 으깨서 던진다 — 단단한 상태로 던지면 부상 위험이 커진다.
- 병·단단한 물체를 반입하거나 던지지 않는다.
- 다른 사람의 옷을 찢지 않는다.
- 토마토를 싣고 들어오는 운반 차량과 거리를 둔다.
- 종료 신호가 울리면 즉시 던지기를 멈춘다.
- 미끄럼에 견디는 발을 덮는 신발을 신고, 물건은 최소한만 가져온다.
시작과 끝을 알리는 신호가 명확하고, 전투 시간은 정오부터 한 시간으로 못 박혀 있다. 축제의 위험 구간이 '하루'가 아니라 '한 시간'으로 압축돼 있다는 점이 이 축제 운영의 뼈대다.
던지는 토마토는 '버릴 토마토'다
2012년부터 주최 측은 상품성이 없어 유통되지 못하는 토마토를 엑스트레마두라 지역에서 들여와 쓴다. 먹을 수 있는 농산물을 던져 버린다는 오랜 비판에 대한 답이자, 농가에는 폐기 비용이 드는 잉여 농산물의 출구가 됐다. 축제가 소비하는 100톤 남짓의 토마토는 '낭비된 식량'이 아니라 이미 시장에서 탈락한 물량이라는 뜻이다.
청소도 축제의 일부로 설계돼 있다. 종료 신호 직후 소방차와 시 청소 인력이 호스로 거리를 씻어내고, 토마토의 산 성분이 석재 바닥의 때를 함께 벗겨낸다. 축제가 끝난 뒤 한 시간 남짓이면 골목이 원래 상태로 돌아온다는 것이 이 축제가 80년 동안 주민의 동의를 유지해 온 실질적인 근거다.
9천 명 마을이 갖게 된 세계 브랜드
라 토마티나는 스페인 관광 홍보물의 단골 이미지이자, 인도·중국·미국 등에서 유사 행사를 낳은 원형이 됐다. 여행 매체들은 이 축제의 경제 효과를 연 300만 유로 이상 으로 추산한다(추산치이므로 확정 수치로 쓰기에는 조심할 필요가 있다). 확실한 것은 따로 있다 — 인구 9천 명의 마을이 연 1회, 한 시간짜리 프로그램 하나로 세계 50개국 참가자와 국제 미디어를 끌어오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축제가 파는 것은 토마토도, 볼거리도 아니다. '여기서만, 이 한 시간 동안만 허용되는 경험'이다. 그리고 그 희소성은 정원 2만 명이라는 상한이 만들어 준다. 누구나 아무 때나 할 수 있는 일이었다면 15유로를 내고 유럽 반대편에서 날아올 이유가 없다.
한국 축제 현장에 주는 함의 — 한국에서 '지역축제 유료화'는 거의 매번 같은 벽에 부딪힌다. "세금으로 하는 축제에서 돈을 받아도 되느냐." 부뇰의 사례가 뒤집는 것은 이 질문의 순서다. 이 마을은 돈을 벌려고 표를 판 것이 아니라, 사람 수를 확정하려고 표를 팔았다. 실무적으로 남는 것은 셋이다. ① 유료화의 첫 번째 효용은 수입이 아니라 '분모'다. 우리 축제의 안전관리 계획서에 적히는 예상 인원은 대개 작년 추정치의 반복이다. 예약제·정원제를 일부 구역에만 도입해도 그 구역만큼은 인원이 사전에 확정된 값이 되고, 화장실·의료·셔틀·청소 산정의 근거가 생긴다. 전면 유료화가 어렵다면 위험도가 가장 높은 한 개 프로그램(야간 공연, 체험존, 좁은 골목 구간)부터 정원제로 잠그는 것이 현실적인 시작점이다. ② 위험 구간을 '하루'가 아니라 '한 시간'으로 압축할 수 있는지 보라. 라 토마티나가 2만 명을 안전하게 소화하는 이유의 절반은 시작·종료 신호가 분명하고 그 사이가 한 시간이라는 점이다. 우리 축제의 인파 위험이 사흘 내내 균질하게 깔려 있다면 관리 비용은 사흘치로 들지만, 위험이 특정 시간대에 몰려 있다면 그 시간대만 정원·동선·신호를 따로 설계하면 된다. 먼저 할 일은 시간대별 인파 곡선을 그리는 것이고, 여기에는 예산이 들지 않는다. ③ '끝난 뒤 한 시간'을 프로그램에 포함시켜라. 부뇰이 80년 동안 주민 동의를 유지한 근거는 축제의 화려함이 아니라 원상복구의 속도였다. 한국 지역축제의 민원 대부분도 소음과 쓰레기, 즉 축제가 끝난 뒤에 남는 것에서 나온다. 결과보고서에 '청소 완료 시각'과 '원상복구 소요 시간'을 성과 지표로 넣어 두면, 그것이 다음 해 개최 동의를 받아내는 가장 싼 근거가 된다. ④ 하나 더 — 던질 것을 어디서 구하는지도 이야기가 된다. 2012년부터 상품성 없는 토마토만 쓰기로 한 결정은 '음식 낭비' 비판을 정면으로 해소했다. 농산물을 소재로 쓰는 국내 축제(머드·눈·꽃·과일)라면, 그 재료의 출처와 처리 경로를 공식 문서에 한 줄로 적어 두는 것만으로 매년 반복되는 비판의 절반이 사라진다.
출처
- Wikipedia — La Tomatina
- Las Vegas Sun (AP) — La Tomatina Festival: The world's largest food fight observes its 80th year (2025.8.27)
- idealista — La Tomatina 2026 in Buñol: dates, tickets, prices and tips (2026.8.18)
- Smithsonian Magazine — How a Spontaneous Food Fight Became La Tomatina
- La Tomatina 공식 티켓 사이트 (tomatina.e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