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니가타현 유자와정, 겨울이면 스키장인 나에바(苗場)의 산비탈에서 매년 7월 말 사흘간 열리는 축제가 있다. 후지록 페스티벌은 2026년 7월 24~26일(전야제 7월 23일) 스물아홉 번째 회차를 치렀고, 나흘 누적 12만 3,500명을 모았다. 직전 5년 중 가장 많은 숫자다.
한국 축제 종사자에게 이 사례가 중요한 이유는 라인업이 화려해서가 아니다. 후지록은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페스티벌"이라는 별명을 스스로 목표로 내걸고, 그 목표를 감성 구호가 아니라 분리 배출 7가지와 자원순환 경로라는 운영 설계로 바꿔 놓은 축제다. 그리고 그 설계는 첫 회의 실패에서 시작됐다.
시작은 태풍이었다 — 첫 회 이틀째를 통째로 취소한 축제
후지록의 첫 회는 1997년 7월, 야마나시현 후지텐진야마 스키장에서 열렸다. 후지산 기슭이어서 '후지'록이다. 그런데 태풍이 정면으로 들이닥쳤다. 폭우와 강풍 속에 첫날 헤드라이너 레드 핫 칠리 페퍼스가 무대에 올랐고, 이틀 예정이던 행사의 둘째 날은 통째로 취소됐다.
이후 개최지가 두 번 바뀐다. 1998년 두 번째 회차는 도쿄 도요스의 실내형 부지에서 열렸고, 1999년 세 번째 회차부터 지금의 나에바 스키장에 자리 잡았다. 이름에 남은 '후지'만 그대로다.
| 회차 | 연도 | 개최지 |
|---|---|---|
| 1회 | 1997 | 야마나시 후지텐진야마 스키장 — 태풍으로 2일차 취소 |
| 2회 | 1998 | 도쿄 도요스 |
| 3회~ | 1999~ | 니가타 유자와 나에바 스키장 (현재까지) |
산속 스키장은 편한 부지가 아니다. 관객은 숲길과 보드워크를 몇 킬로미터씩 걸어 무대 사이를 이동하고, 소나기와 진창은 기본값이다. 그런데 이 불편한 조건이 후지록의 정체성이 됐다. "숲과 함께 있는 축제"라는 문장이 마케팅 카피가 아니라 운영 규칙이 된 것이다. 첫 회에 자연 앞에서 한 번 무너져 본 축제가, 그 다음부터 자연을 상수로 놓고 설계했다.
한국 축제 현장에 주는 함의 — 우리 축제도 태풍·폭우로 취소·축소를 겪는다. 다른 점은 그 사고를 조직의 자산으로 바꿨는가다. 후지록은 첫 회의 실패를 부지 이전과 운영 원칙 재설계로 옮겼고, 30년째 그 원칙을 브랜드로 쓴다. 반면 우리는 취소 사유를 보고서에 한 줄 적고 다음 해에 같은 계획서를 낸다. 실무적으로 권할 것은 하나다 — 기상으로 프로그램을 줄이거나 접은 해에는, 반드시 그해 안에 '무엇을 바꿀 것인가'를 문서로 남길 것. 부지 배치인지, 개최 시기인지, 우천 대체 동선인지. 그 문서가 없으면 사고는 매년 처음 겪는 일이 된다.
숫자 — 나흘 12만 3,500명, 코로나 이후 최다
2026년 회차의 집계는 이렇다.
| 구분 | 인원 |
|---|---|
| 7월 23일(목) 전야제 | 1만 6,000명 |
| 7월 24일(금) | 3만 4,000명 |
| 7월 25일(토) | 3만 8,000명 |
| 7월 26일(일) | 3만 5,500명 |
| 누적 | 12만 3,500명 |
전년보다 1,500명 늘었고, 최근 5년 중 최다다. 코로나 이전인 2019년의 누적 13만 명과의 격차는 6,500명까지 좁혀졌다. 출연진은 180팀이 넘었고,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와 트위치를 통해 무료 생중계가 병행됐다.
주목할 것은 폐막 직후의 발표 방식이다. 후지록은 집계와 함께 다음 해 일정 (2027년 7월 23~25일)을 그 자리에서 공개했다. 관객이 아직 축제의 여운 속에 있을 때 내년 달력을 먼저 잡게 하는 것이다.
한국 축제 현장에 주는 함의 — 두 가지가 눈에 띈다. 첫째, 무료 생중계가 현장 관객을 갉아먹지 않았다. 오히려 관객 수는 5년 내 최다였다. 온라인 송출을 '유료 관객을 뺏기는 일'로 보는 시각은 이제 근거가 약하다 — 중계는 다음 해의 잠재 관객을 모으는 예고편에 가깝다. 둘째, 폐막일에 다음 해 날짜를 발표하는 습관은 돈이 들지 않으면서 효과가 확실한 조치다. 우리 축제는 대개 이듬해 봄에야 일정이 확정되고, 그 사이 여행사·숙박·버스 코스는 이미 짜인다. 폐막 기자회견에 '내년 개최 일자' 한 줄을 넣는 것만으로 유치·모객의 출발선이 반년 앞당겨진다.
'세계에서 가장 깨끗한 페스티벌'을 만드는 실제 방법 — 7분별과 회장 내 순환
후지록의 별명은 저절로 생긴 것이 아니다. 1998년부터 이어진 '고미제로 내비게이션(ごみゼロナビゲーション)'이라는 환경 자원봉사 프로그램이 그 실체다. 현재는 NPO법인 아이플레지(iPledge)가 운영하고, 그 전신인 시민단체 A SEED JAPAN은 태풍이 몰아친 1997년 첫 회부터 관여했다. 즉 이 축제는 쓰레기 대책과 함께 태어났다.
운영 골격은 단순하고 집요하다.
- 행사장 안팎 20곳 이상에 '고미제로 스테이션'(쓰레기 스테이션)을 설치
- 쓰레기는 7가지로 분별
- 각 스테이션에 자원봉사 스태프가 상주 — 다만 역할은 '대신 치우기'가 아니라 '분별을 안내하기'다. 그래서 이름이 '내비게이터'다
- 입장 게이트에서 전 관객에게 쓰레기봉투를 나눠 준다 (쌀 유래 바이오매스 소재인 라이스레진 봉투를 채택한 해도 있다)
- 아침 청소·심야 대응까지 시간대별로 배치, 퀴즈 형식의 '에코 액션 캠페인' 병행
핵심은 그다음이다. 분별된 자원이 바깥으로 나가는 대신 그 축제 안으로 되돌아온다.
| 분별 항목 | 재활용 경로 |
|---|---|
| 페트병 | 다음 해 입장 게이트에서 나눠주는 쓰레기봉투 |
| 종이컵 | 행사장 가설 화장실의 화장지 |
| 나무젓가락·대나무 꼬치·목재 커틀러리 | 건축 자재 |
행사 기간 중 쓰이는 나무젓가락은 17만 켤레 규모인데, 이는 전량 행사장 주변 숲의 간벌재로 만든다. 숲에서 나온 나무가 젓가락이 되고, 쓰인 젓가락이 건축 자재로 돌아가는 셈이다. 이 밖에도 유자와산 삼나무 100%를 쓴 젓가락과 간벌재로 만든 '후지록 페이퍼', 사용한 튀김기름을 재활용한 바이오디젤과 태양광으로 운영하는 무대 구역(NEW POWER GEAR Field·AVALON), 환경·사회 이슈 단체가 부스를 여는 NGO 빌리지가 함께 굴러간다.
한국 축제 현장에 주는 함의 — 우리 축제의 '친환경'은 대개 다회용기 도입 한 가지에서 멈춘다. 후지록이 보여주는 차이는 세 가지다. ① 분별을 관객에게 시키되, 혼자 두지 않는다 — 20곳 이상의 거점과 상주 안내자가 있어야 7분별이 실제로 작동한다. 분리수거함만 늘리는 것은 분별이 아니라 방치다. ② '우리 축제 안에서 도는 순환' 한 줄을 만든다 — 종이컵이 그 화장실의 화장지가 되고 젓가락이 자재가 된다는 서사는, 배출량 감축 수치보다 관객을 훨씬 강하게 움직인다. 우리 축제라면 지역 자원 한 가지(간벌재, 폐현수막, 농산 부산물)를 골라 '들어온 곳으로 돌아가는' 경로 하나만 설계해도 충분하다. ③ 자원봉사를 청소 인력이 아니라 안내 인력으로 정의한다 — 이 정의 하나가 봉사자의 자부심과 지속 참여를 만든다. 실제 후지록의 봉사자는 고교생·대학생이 주축이고, 매년 다시 온다. 인력난에 시달리는 지역축제에 이 설계는 예산보다 값지다.
마지막으로 — '깨끗함'은 관객이 만든 브랜드다
후지록의 자원순환에서 정작 비용이 가장 적게 드는 부분은 관객의 습관이다. 그리고 그 습관은 캠페인 문구가 아니라 매년 같은 자리에 같은 방식으로 서 있는 스테이션이 만들었다. 28년째 반복된 동일한 운영이 관객에게 "여기서는 이렇게 한다"를 학습시킨 것이다.
우리 축제가 매년 대행사와 콘셉트를 바꾸는 동안, 후지록은 바꾸지 않는 것을 정해 두고 그것을 브랜드로 삼았다. 산속에서 열리고, 걸어서 이동하고, 쓰레기는 일곱 가지로 나눈다 — 이 세 문장이 30년 가까이 그대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