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불을 붙인 링을 돌리는 거리 공연자
※ 실제 행사 사진이 아니라 주제를 환기하는 대표 이미지입니다.

예술가가 만든 조직이 37년을 버텼다

춘천마임축제는 1989년 한국마임페스티발이라는 이름으로 출발했다. 마임(무언 광대극)이라는, 당시 국내에서는 관객층조차 두텁지 않던 장르를 붙잡은 축제였다. 1995년 해외 마임팀을 초청하며 지금의 이름으로 바뀌었고, 2000년대 들어 규모가 빠르게 커졌다. 현재는 사단법인 춘천마임축제가 주최하고 축제 운영위원회가 실무를 맡는다. 프랑스 미모스 마임축제, 영국 런던 마임축제와 함께 '세계 3대 마임축제'로 소개될 만큼 장르 안에서는 확고한 자리를 잡았다.

주목할 점은 이 축제의 뼈대가 지자체 조직이 아니라 예술가들이 만든 민간 법인이라는 것이다. 지자체·공공기관은 예산과 안전·행정을 뒷받침하고, 프로그램의 방향과 실행은 예술가 조직이 쥔다. 축제 담당 공무원이 2~3년마다 바뀌어도 축제의 정체성이 흔들리지 않는 구조다.

좁은 장르를 여는 장치 — '도깨비난장'

마임은 그 자체로는 대중 동원력이 약한 장르다. 춘천마임축제가 이 한계를 푼 방식은 장르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형식을 여는 것이었다.

도깨비난장은 1998년부터 이어져 온 대표 프로그램으로, 한국 전통의 대동제를 현대적 난장 형식으로 풀어낸 밤샘 행사다. 저녁에 시작해 다음 날 새벽까지 공연·불 퍼포먼스·설치미술· 관객 참여 프로그램이 끊이지 않고 이어진다. 새벽 5시 예술감독의 '닫는 마임'이 해 뜨는 풍경과 함께 축제를 닫는다.

2026년 축제는 5월 24일부터 31일까지 8일간 '몸풍경'을 주제로 열렸다. 개막난장 '아!水라장'에 3만 2천 명, 마지막 밤 레고랜드 주차장에서 열린 도깨비난장에 4만 6천 명이 모였고, 축제 전체 참여 인원은 10만 2,028명으로 집계됐다. 8일 중 이틀 남짓한 두 개의 '난장'이 전체 참여의 절반 이상을 만들어낸 셈이다. 올해는 공연·설치예술·참여형 콘텐츠를 결합한 실험형 프로그램 '예술난장 X'도 처음 선보였다.

구분내용
기간2026. 5. 24 ~ 5. 31 (8일)
주제몸풍경
총 참여102,028명
개막난장 '아!水라장'32,000명
도깨비난장46,000명
주요 무대중앙로, 축제극장 몸짓, 석사천 산책로, 우두공원, 커먼즈필드 춘천, 레고랜드 주차장

시민은 관객이 아니라 운영 주체다

축제는 자원활동가를 '깨비'라 부르고, 청년축제학교 '깨비짱'은 두 달에 걸쳐 축제 기획과 운영을 함께 배우고 실제 프로그램에 투입된다. 시민과 예술가가 함께 광장에서 몸을 쓰는 '대동(大同): 광장이 춤춘다', 몸짓 워크숍처럼 관객과 공연자의 경계를 지우는 프로그램이 라인업의 한 축을 이룬다.

2026년에는 춘천시공연예술창업지원센터, 근화동396, 춘천시1인창조기업지원센터 등 지역 창작·창업 기반 기관이 함께 붙어 예술과 지역 일상을 잇는 구성을 시도했다. 밤샘 행사가 도시 전역에서 벌어지는 만큼 안전 부담도 크지만, 행정안전부·강원특별자치도· 춘천시가 합동점검에 나섰고 큰 안전사고 없이 폐막했다.

한국 축제 현장에 주는 함의 — 많은 지역축제가 "장르가 좁아서", "동원이 안 돼서"를 이유로 콘셉트를 흐린다. 춘천마임축제는 반대로 갔다. 장르는 그대로 두고 한 해에 한두 번, 밤을 새우는 '난장'이라는 형식을 만들어 진입 장벽을 낮췄다 — 마임을 모르는 사람도 밤새 노는 자리에는 온다. 프로그램을 늘리기 전에 "우리 축제에서 사람이 몰리는 그 한 장면은 무엇인가"를 먼저 정하는 편이 낫다. 또 하나, 운영 주체를 민간 예술 조직으로 두고 지자체가 예산·안전을 받치는 분업은 담당자 교체마다 정체성이 흔들리는 국내 축제의 고질적 문제에 대한 실효적인 답이다. 자원활동가를 '동원 인력'이 아니라 교육 과정('깨비짱')을 거친 운영 주체로 키우면, 그 인력이 다음 해 축제의 자산으로 남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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