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제 사무국의 1년은 대개 이렇게 흐른다. 봄에 예산을 따고, 여름에 준비하고, 가을 사흘을 치르고, 겨울에 정산한다. 그리고 이듬해 봄, 다시 처음부터 시작한다. 축적되는 것은 정산서뿐이다.
아르스 일렉트로니카는 그 구조를 정면으로 거부한 사례다. 1979년 오스트리아 린츠에서 시작한 이 미디어아트 축제는 지금도 9월에 5일간 열린다. 달라진 것은 나머지 360일이다. 축제 옆에 공모전을 붙이고, 박물관을 세우고, 연구소를 만들고, 그것들을 린츠 시가 소유한 회사 하나로 묶었다. 47년이 지난 지금 축제는 여전히 5일이지만, 그 5일을 떠받치는 조직은 1년 내내 돌아간다.
철강 도시가 미디어아트를 고른 이유
린츠는 인구 20만 명 남짓한 오스트리아 제3의 도시다. 오랫동안 철강·화학 공업도시였고, 공해 도시라는 이름이 더 익숙했다. 1979년 이 도시가 고른 것은 지역 특산물도, 역사 인물도 아닌 '예술과 기술'이라는, 당시로선 아무도 소유권을 주장하지 않던 주제였다.
이 선택의 결과는 도시의 정체성 자체가 됐다. 린츠는 2009년 유럽 문화수도로 선정됐고, 유네스코 창의도시 네트워크의 미디어아트 창의도시가 됐다. 축제가 도시를 홍보한 게 아니라, 축제가 도시의 산업 분류를 바꾼 쪽에 가깝다.
축제 하나가 아니라 다섯 부문이다
핵심은 조직 구조다. 아르스 일렉트로니카 린츠 GmbH & Co KG는 1995년 유한회사로 법인화된 린츠 시의 회사다. 그 아래에 다음 부문이 나란히 있다.
| 부문 | 하는 일 | 주기 |
|---|---|---|
| Festival | 9월 5일간의 본 축제 | 연 1회 |
| Prix Ars Electronica | 국제 미디어아트 공모전 | 연 1회 공모·상시 심사 |
| Center(미래의 박물관) | 상설 전시·교육 시설 | 연중 개관 |
| Futurelab | 기업·기관과의 연구개발 연구소 | 상시 프로젝트 |
| Solutions / Export | 전시 제작 수주·해외 순회 | 상시 수주 |
읽는 순서를 바꾸면 이해가 빠르다. 축제가 콘텐츠와 사람을 모으고, 공모전이 그것을 아카이브와 네트워크로 축적하고, 박물관이 이를 연중 관람 상품으로 바꾸고, 연구소와 수주 부문이 바깥에 팔아 돈을 벌어 온다. 사무국이 축제를 끝내고 해산하는 대신, 같은 인력과 같은 자산이 다음 계절의 다른 부문으로 이동한다.
숫자로 본 2025년
2025년 축제(9월 3~7일, 주제 'PANIC – yes/no')는 역대 최다 기록을 썼다. 그러나 더 눈여겨볼 것은 축제 바깥의 숫자다.
| 항목 | 2025년 실적 |
|---|---|
| 축제 방문 | 12만 2,000회 이상(역대 최다) |
| 축제 참여자 | 83개국 1,472명(작가·과학자·개발자·활동가) |
| 축제 전시작 / 프로그램 | 379점 / 684건 |
| 축제 운영 | 공동 큐레이터 51명, 스태프 398명, 협력 파트너 440곳 |
| Center 방문 | 약 16만 명(학교 단체 36,414명 포함) |
| Futurelab 프로젝트 | 국제 기관·기업과 60건 이상 |
| Export | 5개 전시·31개 행사, 33개국, 작가·연구자 90명 |
| Solutions 수주 | 63건(그중 39건은 오스트리아 밖) |
| EU 프로젝트 / 유럽 파트너 | 16건 / 120곳 이상 |
축제 방문객(12만)보다 박물관 방문객(16만)이 더 많다. 그리고 축제와 무관해 보이는 수주 사업이 63건 돌아간다. 독일 오버하우젠 가스탱크에 설치한 'The Wave'는 2025년 말까지 누적 150만 명이 봤다. 축제에서 검증한 연출 역량이 그대로 상품이 된 것이다.
공모전이 만드는 것은 상이 아니라 명단이다
Prix Ars Electronica는 1987년 시작된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미디어아트 공모전이다. 2026년에는 106개국에서 4,329건이 접수됐고, 함께 운영하는 유럽연합 S+T+ARTS Prize에는 110개국 2,719건이 들어왔다.
여기서 중요한 건 수상작이 아니라 응모작 전체가 남는다는 점이다. 4천 건이 넘는 작품과 그 작가의 연락처, 소속, 관심 주제가 매년 축적된다. 이듬해 축제의 초청 대상은 이 명단에서 나온다. 축제가 섭외를 위해 매년 새로 시장을 뒤지지 않아도 되는 이유다. 공모전은 상금을 쓰는 비용 항목이 아니라, 섭외 비용을 매년 깎아주는 자산이다.
여기에 Campus 전시가 붙는다. 2026년에는 전 세계 45개 대학이 참여한다. 학교가 학생 작업을 들고 제 발로 오는 구조 — 신진 작가 발굴을 사무국이 혼자 하지 않는다.
2026년 축제 — 도시 전체를 세 개의 허브로
2026년 축제는 9월 9~13일(9월 8일 프리오프닝 워크), 주제는 'NEGOTIATING HUMANITY (인간다움을 협상하다)'다. 인공지능과 생태 위기 속에서 '인간다움'을 누가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를 묻는다.
주목할 것은 공간 운영 방식이다. 단일 행사장을 쓰지 않는다. 린츠 도심을 OK QUARTER · DANUBE TRIANGLE · MED CAMPUS 세 개의 허브로 묶고, 그 사이 여러 장소에 프로그램을 분산한다. 관객은 도시를 걸어 이동하며 전시·공연·심포지엄·워크숍·타운홀 미팅을 만난다. 행사장을 짓는 대신 도시를 행사장으로 쓰는 방식이다.
한편 2026년은 Center와 Futurelab이 나란히 30주년을 맞는 해다. 축제(1979)보다 16년 늦게 생긴 두 상설 조직이, 이제는 축제만큼 오래된 기관이 됐다.
한국 축제 현장에 주는 함의 — 첫째, "축제 이후"를 조직도에 그려라. 아르스 일렉트로니카의 진짜 발명은 작품이 아니라 부문 구조다. 축제(연 1회) 옆에 공모전(아카이브)· 상설 공간(연중 수입)·수주 사업(외부 매출)을 붙였다. 우리 축제 대부분은 '사무국'이라는 한 칸짜리 조직도로 1년을 산다. 최소한 아카이브 담당 1명만이라도 상시로 두는 것이 시작이다 — 올해 참여 작가·업체·자원봉사자 명단이 내년 섭외 비용을 결정한다. 둘째, 공모전을 상 주는 행사로 보지 말고 명단 만드는 장치로 보라. 4,329건이 매년 제 발로 들어오는 구조는 심사비가 아니라 네트워크 투자다. 지역 축제라면 전국 규모가 아니어도 된다. "우리 지역 주제로 학생·신진 작가 공모"를 3년만 돌려도, 4년 차부터는 섭외할 사람이 파일에 쌓여 있다. 셋째, 축제에서 검증된 연출 역량은 팔 수 있는 물건이다. Solutions 부문은 축제 밖에서 63건을 수주했고, 그중 39건이 해외였다. 우리 축제도 매년 무대·미디어·동선 연출 노하우를 쌓지만 그것을 용역 상품으로 정리해 둔 사무국은 드물다. 보조금 삭감에 대비하는 가장 현실적인 방법은 후원사 확대가 아니라, 이미 잘하는 일을 밖에 파는 것이다. 넷째, 상설 공간이 있으면 축제는 5일이 아니라 365일이 된다. 축제 방문객보다 박물관 방문객이 더 많다는 사실을 곱씹을 필요가 있다. 폐교·유휴 창고·시청 로비 한 칸이라도 좋다. 축제가 끝난 뒤 그 콘텐츠를 계속 볼 수 있는 곳이 있느냐가, 다음 해 예산 심의에서 "작년에 무엇이 남았나"에 답할 수 있는지를 가른다. 다섯째, 도시를 행사장으로 쓰는 계산을 해보라. 2026년 축제는 도심에 허브 세 개를 두고 관객을 걷게 한다. 가설 무대비가 줄고 체류 시간과 상권 접점이 늘어난다. 다만 전제 조건이 있다 — 도보 동선의 안전과 안내가 확보되지 않으면 분산은 그냥 방치가 된다.
출처
- NEGOTIATING HUMANITY: Festival for Art, Technology and Society (Ars Electronica Mediaservice, 2026.8.31) — 2026년 축제 일정(9.9~13, 프리오프닝 9.8)·주제·세 개 허브(OK QUARTER·DANUBE TRIANGLE·MED CAMPUS), Prix 106개국 4,329건, S+T+ARTS 110개국 2,719건, Campus 45개 대학, Center·Futurelab 30주년
- Ars Electronica 2025 draws more than 122,000 visits (Ars Electronica Mediaservice, 2025.9.8) — 2025년 축제(9.3~7, 'PANIC – yes/no') 방문 12만 2천 회 이상, 83개국 1,472명, 전시작 379점·프로그램 684건, 공동 큐레이터 51명·스태프 398명·파트너 440곳
- Ars Electronica Reviews a Successful 2025 (Ars Electronica Mediaservice, 2026.1.15) — Center 약 16만 명(학교 단체 36,414명), Futurelab 60건 이상, Export 5개 전시·31개 행사·33개국·90명, Solutions 63건(해외 39건)·'The Wave' 누적 150만 명, EU 프로젝트 16건·유럽 파트너 120곳 이상
- Organization – About Ars Electronica — 린츠 시 소유 회사(1995년 법인화)와 Center·Festival/Prix/Exhibitions·Futurelab·Solutions 부문 구조
- Ars Electronica 2026: Future Begins (LINZ – UNESCO City of Media Arts) — 린츠의 유네스코 미디어아트 창의도시 지위와 1979년 이래 축제의 도시 내 위상
